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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08. 2023

레터제너레이션의 종말

그때는 편지할게요,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나는 무언가 쓰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빨간 구두를 신어서 춤을 멈출 수 없게 되었던 동화 속 그 소녀의 두 발처럼. 무언가 쓰고 싶어서 손이 멈추질 않았다. 줄줄줄 계속 써 내려가야만 하는 증상은 중고등학교시절 내내 이어졌다. 쉬는 시간에 후루루 편지를 썼다. 수업시간에도 몰래 편지를 썼다. 연습장 한 장을 북 찢기도 하고 잡지에서 건진 여백이 많은 화보를 발견하면 작은 글씨로 수다가 이어졌다. 하이테크를 좋아했다. 0.3미리는 너무 얇고 0.4미리가 딱 좋았다. 하루에 대여섯 통에서 많으면 열 통. 그즈음 막 친해진 친구들에게도, 오랫동안 각별히 지내온 친구에게도. 닥치는 대로 편지를 보냈다. 아마도 시답잖은 내용 들이었겠지만 친구들은 편지를 받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라는 것이 그렇다. 누군가 '나'라는 세상 한 명뿐인 독자를 위해서 적어 내려 가는 글인 것이다. 나도 한 장 써주라, 하면 알겠어하면서 또 세상에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나는 편지를 썼다.


        더 어릴 때는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우편으로 편지를 부치고는 했다. 아, 이렇게 적다 보니 어쩌면 글쓰기의 기원은 그 편지부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멋들어진 필체가 기억이 난다. 갱지처럼 얇은 편지지에 가득 담겨 온 할아버지의 글은 사실 한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행서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배운 한글과는 차원이 다른 언어처럼 보였다. 한글인데도 한자 같았고 실제로 한자를 중간중간 섞어서 쓰시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편지는 예의와 형식이 잘 갖춰져 있었다. 나도 그 형식에 맞춰서 부르는 말, 첫인사,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마지막 안부와 인사말을 남기고 날짜와 보내는이 앞에 장황한 수식어를 붙여 편지를 마무리하곤 했다.


        대학생이 되던 해에 바야흐로 밀레니얼시대가 도래했다. 2000년. 그때는 다들 이메일주소를 주고받았다. 나는 또 신이 나서 손가락에 빨간 골무라도 낀 것처럼 키보드 위로 손가락이 날아다녀라 메일을 써 내려갔다. 이 친구 저 친구들에게 긴긴 이메일을 보냈다. 그에 대한 답장을 받는 것도 기뻤지만, 내가 보낸 메일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즐거워서 보낸 메일함을 닳도록 다시 읽어보곤 했다. 이런 것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인가. 아무튼 편지를 무지하게 써대면서 어른이 됐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 또한 수도 없이 많았다. 몰래 좋아했던 그 애에게 써 내려간 편지, 친구에게 쓴 편지. 하도 편지를 많이 써서 다 못 보내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울면서 쓴 편지들. 편지로 하는 몇 장의 술주정. 짝사랑을 하던 마음을 풀어낼 길이 없으면 편지를 써 내려갔다. 줄줄줄 써 내려간 편지는 다음날 아침 술이 깨면 다시 휴지통으로 들어가곤 했지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때는 술에 취하지 않는 날이 드물었고, 그만큼 취중 편지를 써 내려가는 날이 많았다.


        가끔씩 뜻밖의 편지가 우체통에 들어있을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유럽배낭여행 간 친구가 그곳에서 보낸 엽서라던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친구가 보낸 안부 편지라던가. 군대 간 친구들에게서 왔던 편지들. 우체통에는 그런 소식이나 안부가 담기는 기능이 있던 물건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우체통을 열어보지 않게 됐다. 우체통에는 주로 교통위반범칙금고지서 라든가 관리비청구서, 카드회사에서 보낸 청구서 같은 것이 들어있다. 소식이나 안부보다는 독촉이 담기는 장소가 된 것이 애석하다.


       카카오톡을 사용한 이후로부터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들과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다. 배터리만 방전되지 않으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은 카톡으로 그때그때 머뭇거리지 않고 짧고 신속하게 전할 수 있다. 내용의 절반이 ㅋㅋㅋㅋㅋ로 이뤄지긴 하지만 우린 그렇게 소통하고 지낸다.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혹시,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꾸준히 편지를 쓰면서 지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편지의 기원이 애초에 멀리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을까.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써 내려가던 편지. 말과는 다른 내용을 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매체지만 그게 예전처럼 다시 중요한 장르로 부각될 수 있으려나, 편지를 쓰면서 자란 레터제너레이션인 나에게 편지 없는 시대는 어쩐지 조금 허전하다. 업무이메일아 아니면 편지 쓸 일이 없는 요즘, 사실상 나의 첫 번째 펜팔 상대였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후라서. 조금 그리워해본다. 편지의 전성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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