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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oker Jun 07. 2018

<쥬라기 월드:폴른 킹덤> 전설 계승의 확연한 실패

이제 CG공룡은 그만

개봉 당일인 2018년 6월 6일 오늘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최단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을 봤습니다.

아마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명성 덕을 톡톡히 본 게 아닐까 하는데요.

하지만 사실 상 그 내용물은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고 있는 아파토사우르스로는 놀라지 않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CG공룡 말고 무엇인가가 더 필요합니다.

오늘은 <폴른 킹덤>이 왜 이렇게 빈약한지 하나하나 따져볼까 합니다.

그전에 필자가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에 썼던 <쥬라기 월드>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폴른 킹덤>의 리뷰 역시 <쥬라기 월드>1편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평면적인 캐릭터

<폴른 킹덤>의 등장인물들은 클리셰덩어리입니다.

동물을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로 보호하려고 하는 수의사, 불평 많고 영화 내에서 유머를 담당하는 흑인 남자,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여자 주인공, 그러한 여자 주인공과 트러블이 있는 싸움 잘하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과 대립하는 그저 돈 때문에 생명을 사고팔려는 이기적인 사람들.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인물들만을 모아놓고 영화를 진행하다 보니 영화의 진행자체도 굉장히 판에 박혀 있습니다.

1편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인간들과 이에 반하는 이타적인 세력의 대립을 통해서 권선징악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등장인물들은 엄청나게 평면적인데 착한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고 악한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합니다.

문제는 이 착하다 나쁘다의 기준이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공룡을 살리려고 하면 착한 사람, 공룡을 팔려고 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식인데

이들이 왜 공룡을 살리려고 하는지 저들은 왜 공룡을 팔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그 이분법이 마치 어린이 만화 영화에 나오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2. 공룡의 시각적 소비

<쥬라기 월드>의 메인은 당연히 공룡입니다.

하지만 그 메인이 되는 공룡들이 이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시각적 눈요깃거리로만 제시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예로 두 가지 장면을 들 수 있는데요.

첫 번째 장면은 아파토사우르스의 등장입니다.

오웬(크리스 프랫) 일행이 폐허가 된 쥬라기 월드에 진입하자마자 땅이 울리며 아파토사우르스가 하고 많은 풀들을 뒤로하고 오웬 일행 앞에 있는 나무의 풀을 뜯으러 옵니다.

공룡들도 짐승이고 본능이라는 것이 있는데 낯선 자들이 그렇게 많은 곳에 풀을 뜯으러 올까요?

이 장면은 <쥬라기 공원>에 대한 오마주이자 시각적 웅장함을 주기 위해서 너무나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위의 스틸 컷에 있는 티렉스의 등장입니다.

이는 화산이 폭발하고 공룡들이 살기 위해서 도망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공룡 이름은 잘 모르지만) 트리케라톱스와 같이 생긴 공룡과 육식 공룡이 싸우고 있는 장면에서 갑자기 티렉스가 등장해서 싸우고 있던 육식 공룡을 잡아먹고 웅장하게 울부짖는 장면이죠.

화산이 폭발해서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 공룡들끼리 싸우고 거기다 한 공룡이 다른 공룡을 이유 없이 해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멋지게 울부짖는 티렉스.

이것 역시 오로지 티렉스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장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두 장면 모두 개연성을 제쳐 두고 오로지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소비적인 장면에 불과합니다.


3. 영화를 관통하는 개똥철학

이 영화는 한 가지 흥미로운 논쟁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논쟁은 영화의 결말 부분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 논쟁이란 인위적으로 탄생한 동물인 공룡들을 멸종위기종으로 여겨 보호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화 자체가 이 논쟁에 좀 더 집중을 해서 찬반을 주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의견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더라면 영화가 깊이와 재미를 갖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공룡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를 두고 그것이 마치 정의로운 것인 듯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영화 내에서 공룡을 죽도록 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근거는 딱 한번 특별위원회 의원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의원의 입에서 나온 그 근거라는 것은 다름아닌 '신의 뜻'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공룡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신의 뜻' 이라니.

그렇다면 공룡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의 논리는 공룡이 '살아있기' 때문에 단지 그것 하나입니다.

영화 내에서는 관객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찬반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대사로 보여줍니다.

문제는 그 대사들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가령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의원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클레어는 의원에게 "자녀들이 공룡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 그 공룡들이 멸종하게 생겼다."라고 말하면서 의원을 설득하고 면담 약속을 잡습니다.

대체 의원은 클레어의 저 대 어느 부분에서 공룡을 보호하자는 의견이 그럴듯하다고 느낀 걸까요.

영화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 들어가는 말콤의 연설은 더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대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그의 말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의 대사는 그저 영화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장식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밖에 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이러한 개똥철학이 집약된 총체적 난국입니다.

메이즈 록우드(이사벨라 서먼)는 클레어가 열기를 주저한 셔터를 열어 공룡들을 모두 바깥 세계로 방생시켜버립니다.

셔터를 열어버린 그녀의 논리는 단 하나 "그들도 나와 같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인도렉스는 죽어마땅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공룡들의 가치는 인정해줘야한다는 내로남불식의 논리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됐든 셔터를 여는 버튼을 누른 그녀의 손짓 하나로 이제 전 세계 인류는 상위 포식자인 공룡과 함께 살아가야 하게 생겼습니다.

이는 분명히 엄청난 수의 피해자를 낳을 겁니다.

그러한 중요한 결정을 단지 미래 세대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꼬마 여자아이가 멋대로 판단해서 내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관객들은 그러한 그녀의 결정에 설득당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합니다.

그래 놓고 말콤의 입을 빌려 "Welcome to Jurassic World."라고 멋지게 끝내버리는 감독.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보호받아야 마땅한 것인가? 그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를 물어봐놓고

참 쉽게 이분법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믿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개똥철학이 영화 자체를 관통하며 참으로 당혹스러운 결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당혹스러움은 쿠키영상까지 이어집니다.)



4. 이제 CG공룡으로는 부족하다니까

<쥬라기 공원> 시리즈가 만들어질 때까지만 해도 CG 기술은 그렇게 크게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쥬라기 공원>이 영화사에 길이 남는 것은 그러한 시절에 자연스러운 CG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사람들은 아파토사우르스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보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CG로 만들어진 로봇, 슈퍼 히어로와 악당들이 그들만의 논리와 개성을 가지고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 2018년 지금의 영화계입니다.

우리가 마블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단지 현실에서 불가능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CG를 넘어서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토니 스타크에게는 비꼬는 말들 뒤에 숨어있는 그의 아픔과 매력이 있고 관객들은 이러한 토니를 사랑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진부한 캐릭터들과 클리셰 그리고 성공한 전편의 명성만을 가지고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가 없게 됐습니다.

<쥬라기 월드>는 마치 폐허가 된 영화 속 쥬라기 월드처럼 이제는 지나버린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 대한 허망한 오마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영화가 됐습니다.

후속 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이 엄청난 결말을 어찌 바로잡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나온다면 부디 관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들고 나오길 바랍니다.

물론 킬링 타임용 영화에게 무엇을 바라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의 후속편이 이렇게 시각적 소비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참 안타깝기에 글을 써 보았습니다.

킬링 타임이라 할 지언정 작품성을 이리도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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