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남은 물처럼 지냈다. 그래도 어딘가로 흐른다. 메말라 소리조차 사라질 때까지 흐른다. 여름을 지나며 웃거나 울지 않았다. 기쁘고 슬프고 화날 때는 있었다. 반응하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드러내지 않으니 좋아 보인다.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었다. 심지어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꺼내지 않으니 쓰고 싶은 게 없다.
말뿐이었다. 죽을 것 같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11월 첫 화요일 밤 라페스타 반주에서 알았다. 석 잔쯤 마셨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구나. 비겁하거나 졸렬한 쪽에 가깝다. 미움이 없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경계선 안쪽에 있다. 홀로 행복해 우는 시늉을 한다.
군에 간 아들이 제대했다.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놈과 나의 시간은 비슷했겠지. 느리고 희미하고 위태롭다. 그래도 흐른다. 아침에 보낸 문자에 '군필이구만 이제' 라는 답이 왔다. 아들 냄새가 난다. 피식 웃음이 난다. 다시 볼 때 웃거나 울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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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잘 견뎌 대견하다.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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