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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른 채 브런치 겪어보기 1주일

by Moon

글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고, 소문이 무성했다. 업이 있을 땐 바빠서 관심만 가졌다가 예기치 않은 시간의 공백이 허락되어 관심을 행동으로 바꿨다. 그게 1주일 전이다. 글을 올렸다. 새로 쓴 것도 올리고 예전에 쓴 것들을 가다듬어 올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봤다.


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듣보잡’이 쓴 졸글에 세상이 반응한다면, 그게 더 웃긴 일이리라. 다만 몇몇 분들이 ‘라이킷’을 눌러 놓고 가셨는데, 그것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 분들은 어떻게 아시고 이 게시물에 들어오신 거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지인들의 닉인가 싶어서 추적해 봤지만 그렇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브런치 선배들일뿐이었다. 난 여전히 그분들의 유입 경로를 모른다.

그리고 떠오르는 질문은 ‘라이킷을 누른다는 게 무슨 의미지?’였다. 나를 전혀 모르는 분들의 라이킷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었다. 일일이 찾아가서 ‘라이킷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달아야 하나, 나도 그분들 글에 라이킷을 눌러야 하나, 그냥 ‘한 번 들려봤습니다’라는 제스처인데 혼자 ‘오버’하는 건가...


나는 여전히 이 ‘라이킷’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브런치 활동 1주일을 갓 넘긴 나는 ‘지금 이 게시글 잘 읽었습니다’라는 감사의 의미만을 담아 누르고 있다. 물물교환식으로 라이킷에 접근하는 건 브런치에 대한 혼자만의 로망을 깨트리는 일이라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브런치 연차가 늘어나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2. 나도 이쁜 그림 쓰고 싶다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는 거의 모든 게시글들에 예쁜 그림과 사진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부러웠다. 나는 사진에 있어서는 ‘꽝손’이다. 뭘 어떻게 찍어도 구도가 엉망이다. ‘구도가 엉망’인 것도 누가 말해주니 그런가 보다 하지, 나 스스로 판단이 안 된다. 그러니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잘 나온 것들을 가져다 써야 하는데, 그러면 저작권 문제에 걸릴까 두렵다. 다들 이미지 어디서 가져오시는 걸까? 스톡이미지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 거의 30개 정도 글을 올렸지만 이미지는 브런치북 표지 두 개 외 한 컷도 없다. 글씨 색이나 좀 이리저리 바꿔볼까 고민 중이다.


3. ‘글’의 장벽은 언제나 높기만 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좀 알아보고 싶은 일주일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불킥’을 많이 했던 때로 귀결됐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예전에 쓴 글들을 가다듬어 올리는 과정이 있었는데, 십수 년 전에 쓴 것들을 다시 읽는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창피했다. 말이 좋아 ‘가다듬는다’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아마, 또 십 년이 지나 이 글들을 다시 보아도 비슷한 느낌일 거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바로 이 창피함이 원동력이 되고 있다. ‘더 잘 쓰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동기라는 말이다. 어제 썼던 것보다 더 잘 쓰고 싶은 것, 소박하다면 소박한 소원인데 도무지 이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면 잘 쓴 글은 뭔가? 누가 판단해 주는가? 이것 역시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답을 알았다면 나중에 더 잘 쓰게 될까?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나에게 큰 모험이다. 매일 꾸준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볼까 봐 두려운 것들을 모아둔 장소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 계정으로의 글쓰기가 멈춘다면 그건 내가 죽었거나, 여기 쓴 것들이 너무 창피해져서 숨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까지 일단 한 번 계속 향상해 보려는 게 지금 이 브런치 활동의 목적이다. 이 역시 연차가 늘어나면 바뀔 수 있다.


4. 살아나라, 시심아

아무 일도 없었고, 뜬금 이미지 욕심만 생겼고, 1주일 내내 이블킥만 했다니, 브런치 사용의 단점만 쓴 것 같다. 장점도 있었다. 잃었던 ‘시 사랑’이 다시 살아나려 한다는 것이다.


3번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데, 한창 시를 쓰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동안 적었던 모든 것들이 창피해졌다. 아무런 계기도 없었다. 그냥 우연히 과거 글을 뒤적이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것뿐이다. 그날, 모든 글을 삭제하고 다시는 시를 쓰지 않았다. 아주 가끔 혼자 메모장에만 몇 줄 남기고 끝냈다. 시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게 한 1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1주일 아이 키우는 일이나 쓸 요량으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여러 분들의 글을 읽고 구독까지 진행했다. 문득 내가 구독한 분들을 보니 대부분 시를 쓰시는 분들이었다. 의도도, 계획도 아니었다. 새 플랫폼을 탐험한다면서, 진작에 버린 줄 알았던 시 읽기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고, 아직도 좋은 문장에 머무른다는 자신만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게 참 묘했다.


결국 시와 담쌓았던 지난 한 10년의 시간이 버려진 게 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쓰면서 연습했으면 지금 쓰는 것들에 대한 이불킥 강도가 줄어들 수 있었을 텐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래서 즐겁다. 중년이 돼서 갑자기 시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브런치 시인 분들이 새 글을 썼다고 알림이 오면 반갑다.


라이킷과 구독 신청에 담긴 의미를 아직도 모르는 1주일 차 브린이의 가장 큰 소득은 시심 회복을 바라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불킥이 되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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