椰林晴雨[야림청우] (2)

야자수 숲에서 빗소리를 듣다

by 온다

2.

이곳 후해는 중국의 가장 최남단인 하이난 성에 위치해 있다. 하이난은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쯤 되는 작은 휴양지이다. 중국 본토에 비해 작다는 이야기지 물리적으로 작은 크기는 아니다. 후해는 그중에서도 남쪽의 작은 동네여서 한 블록 밖에 안 되는 먹자골목에 관광객이 붐비는 일도 드문 곳이다.


내가 기약 없이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로 충분했다. 게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 나는 늘 ‘객’, 사람 사이의 평행이 좋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유일한 가족인 언니와 평행으로 가로누운 이층 침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핑에 빠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바다 위에서 보드끼리는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위험하니까.


후해는 바다가 C자를 그리며 육지로 쏙 들어가 있는 해만지역이다. 주머니처럼 물을 담는 모양이라 포켓이라고 불리는데 파도가 잘 만들어지는 지형이기도 하다. 삼면이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는 야자나무숲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야자나무 숲 쪽으로 갈수록 해저 지형이 변화하면서 리프 포인트가 시작된다. 바다의 바닥이 암초로 되어 있어 더 힘차고 깔끔한 빗면을 이루는 파도가 생긴다. 그런 파도를 찾아다니는 서퍼들에게 후해의 리프포인트는 말 그대로 낙원이다. 하지만 유속이 꽤 빠른 탓에 초보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전해 볼 만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한쪽 하늘엔 빛을 잃어 하얘진 해가, 다른 한쪽엔 창백하게 오르는 낮달이 함께 뜨는 신비한 기류가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침 서핑을 끝마치고 나올 때 빗방울은 또다시 굵어졌다. 나는 리프 포인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카페에 들어섰다. 나는 전날 밤부터 미뤄둔 샤워도 제쳐두고 야외에 놓인 선베드에 몸을 뉘었다. 축축한 슈트를 입은 채로. 글쎄― 난하이나 다른 서퍼들만큼 아침을 즐기지 못한 탓에 기분이 더 추졌기 때문이었다.


말린 장미색 보드를 탄 서퍼가 돌아 나온 길 너머 리프 포인트 쪽으로 기다란 야자나무 숲이 보였다. 달무리처럼 눅은 대기와 암석에 부딪혀 높이 튀어 오르는 파도 때문에 야자나무 숲이 꼭 신기루처럼 보였다. 분명히 거기에 있는데도. 빗줄기가 꼭 번개처럼, 야자나무 열매에 내리 꽂힐 때마다 딸깍딸깍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애가 닳아 검어진 언니를 이층에서 내려다보던 일곱 살의, 열 살의, 열한 살의, 열세 살의 내가 보였다. 그대로 굴러 떨어져 언니를 포개고 싶던 수많은 밤들이 날카로운 야자수 잎 사이로 드리워졌다.


*


언젠가 우박처럼 큰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여름 방학의 끝자락에 나는 밀린 방학숙제들을 쌓아놓고 이층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빗물이 만드는 굴곡진 유리창 너머 골목길에 언니가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아래층에서 인기척을 느꼈는데 갑자기 언니가 창밖에 서 있는 게 나는 꼭 영화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언니도 역시 짐 가방을 들고 있었다. 짐꾸러미는 언니가 카세트 테잎에 욱여넣은 밤들처럼 차곡차곡하지 않게 싼 게 분명해 보였다. 언니의 앞머리가 내 마음처럼 늘어졌다.


애꿎은 글씨를 썼다 지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우개 똥을 꼭꼭 눌러 원래 크기만큼 만드는 동안 그 자리에서 가만히 젖어가는 것을. 머리가― 어깨가― 무릎이, 엉성한 짐들이 형체를 잃어가는 동안 언니는 더 멀리 더 감감한 곳을 내다보며 기다렸다. 창밖으로 보이던 언니가 사라지자 나는 더 납작하게 엎드렸다. 나는 창밖으로 떠내려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잠시 후, 집을 향해 돌아오는 언니의 발소리가 너무나 연약하게 들려 나도 모르게 태연한 숨소리를 냈다. 언니는 넘치는 슬픔을 찰랑거리며 들어와 현관문을 잠갔다. 나는 문틈 사이로 한참을, 가마득한 울음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젖은 보따리에서 물이 흘러 흥건하게 바닥을 덮었다. 언니의 절망이 범람하는 장면을 건넌방 티브이 속 스쳐가는 광경처럼 나는 멀뚱히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다음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두 귀를 닫아버렸던가, 문틈마저 막아버렸던가― 아무튼 언니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버려진 사람만이 버림받은 아픔을 잘 알겠지만. 나야말로 홀로 남겨질 뻔한 그날의 충격을 위로받고 싶었다.


밤새 나와 언니는 위로받지 못한 마음과 싸워야 했다. 미운 마음이 단단해질수록 빗소리는 거세졌다. 언니는 빗발의 아우성을 이겨내려는 듯 녹음된 라디오말소리를 틀고 볼륨을 높였다. 나는 한참을 소란한 상처와 쟁란한 소음을 견디며 언니가 잠들길 기다렸다. 창에 어린 뿌연 달빛마저 시야의 건너편으로 옮겨갈 즈음이 되자 언니의 숨소리는 저 세상으로 떠난 듯 깊어졌다. 따가운 빗소리에 찢어지는 라디오 소리까지 얹어져 진정되지 않았던 나는 언니의 머리맡으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불안은 늘 실수를 부른다. 조급한 만큼 부주의해진 나는 그날 정지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는 이불속으로 돌아와 누웠다.


찰나가 영원같이 지나갔다. 어떤 기척도 분간할 수 없는 빗소리가 미운 밤이었다. 나는 테잎이 감기는 동안 수 없는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갔다. 날카로운 침이 얇고 가녀린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쿡 찌를 때 간헐적으로 나는 소리는 칠판 긁는 소리와 비슷하게 아스라이 치가 떨리게 한다. 지금의 나는 가늠할 수 없이 그어진 수면에 베여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두 동강나버릴 것 같은 아스라한 순간들을 즐기지만 열여섯 살의 나는 음성 주파를 넘나드는 것만으로도 초매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가듯 조용히 중얼거린 언니의 목소리가 빗소리와 카세트 테잎이 감기는 소리 사이로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지 않았다. 언니는 영영 잠이 든 적 없던 사람처럼 청명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나야말로 너를 빨리 감아버리고 싶어.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언니의 복받치는 울음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그 말은 그렇게 절묘한 사이에 다른 소리들을 이긴 걸까. 그리도 어수선한 밤, 그 말은 어째서 어두운 내 귀에 콕 와서 박힌 걸까. 왜 나는 몰랐으면 좋았을 일들에는 밝은 걸까. 엄마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날 버리려 했던 쪽이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는 게 효란하고 비극적인 일이었다. 그 날, 우리 집 현관문에 걸려있던 ‘미혼모의 집‘ 이라는 현판의 ‘모’라는 글자가 엄마를 뜻한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저, 감각으로 깨달아버렸다.


그 후로도 짐 더미 위에 풀썩 쓰러지는 언니―, 아니 어머니의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하고 나서야 그녀는 마침내 사라졌다. 한동안 홍수가 난 사람처럼 슬픔에 차 있었던 건 내 쪽이었다. 내가 그녀의 아무런 내면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날부터 말이다.


*


물에 젖은 슈트가 무거워지자 흠뻑 적신 낮잠에서 깨어났다. 꿈이 생생하면 현실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마저도 싫어져 질퍽한 슈트를 벗어 두고 판초'를 뒤집어썼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식당가로 향했다. 물먹은 판초는 슈트보다 배로 무거워져 먹먹한 상처들을 저 밑으로 묵직하게 끌어내렸다.




'판초 : 천 중앙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내어 입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네이버 어학사전]. 보통 서핑 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으며, 물기를 흡수하기 좋은 소재로 되어 있고 후드 모자가 달려있다. 계절에 따라 두께도 다르며 바닷가에서 슈트를 갈아입을 때에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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