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은 더 강해진다.
나르시시스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내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 전까지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약했던 시간이다. 내가 견뎌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여러 각도에서 무척 괴롭다.
무엇보다 잘못된 세뇌로 사회생활 중 겪어야했던 인지 왜곡현상들과, 그로 인해 놓쳤던 인간관계, 삶에서 놓친 비전에 대해 회한이 많이 남는다.
아버지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삶은 다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부터는 내가 받았던 교육의 일정부분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마치 중독적인 종교에서 빠져나오듯 그제서야 무엇이 어디가 잘못됐는지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꼭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르시시즘 생존이 나에게 극강의 멘탈 트레이닝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물론 극강의 멘탈 트레이닝을 위해 일부러 나르시시스트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르시시스트가 가족이라거나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굴레 안에서 이미 오랫동안 내가 희생되었을 때 그것을 잘 연소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나의 멘탈이 훈련되었다는 긍정회로다.
내가 괴로웠던 요소들은 매우 많지만 직관적으로 떠올려보자면 대략적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행했던 폭력이 괴로웠고, 두번째로 아버지가 나를 도구삼아 사람들에게 뽐내는 그 느낌들이 괴로웠다. 자녀는 철저하게 그의 트로피였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전리품으로 기능해야만 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거둔 좋은 성적을 비롯한 소정의 성과들을 자랑하곤 했는데(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닥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며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타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안과 밖에서의 그 온도차가 싫었다.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 앞에서 "내 아내를 위해서는 조국도 버릴 수 있다"는 이중적 말을 하곤 했는데 그 느낌이 아주 소스라칠 정도로 싫었다.
어린 시절은 사회생활의 경험치가 무척 낮기 때문에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내리기엔 부족한 시절이다. 누구에게나.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어린 나에게 "모든 사람은 다 저런가?" 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온전히 자립하면서부터 부딪쳤던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삐걱대면서 맞춰가야했던 관계의 어려움들 또한 거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상황을 똑바로 인지하자고 마음 먹고, 성찰해나가면서 왜곡된 사실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는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내가 느꼈던 나 자신에 대한 모순은, 아버지를 너무 싫어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나르시시스트라기보다는 나르시시스트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타인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나를 도구화했기 때문에 타인들도 당연히 나를 도구화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나에게 무언가 얻을 것이 있어서 내 곁에 있다는 생각.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은 더이상 나에게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생각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당연히 좋은 사람과 연애할 수도 없고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도구적인 측면을 배제해야 나올 수 있음에도 그 관계의 중심을 온통 도구화 해놓는 매우 위험한 발상인데 만일 이러한 생각에서 평생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아마 나 또한 타인을 도구화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왜곡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나 또한 나르시시스트로 변해가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강력한 성찰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눈물 겨운 나르시시스트 생존기는 나 자신을 깊게 성찰하는 시간이었고, 때론 타인의 깊고 얕음이, 나 자신의 얕음의 정도나 얕은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매일 성찰한다. 매일 바뀐다. 그러므로 나이듦이 서럽지 않다. 나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으니까.
그 인고의 시간 뒤에 아주 투명한 안경 하나를 선물 받았다.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안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