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회색돌 하나 넣고다니기
인간관계라는 게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언젠가 한번은 멈춰서 그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그랬다. 우린 많이 멈춰섰다. 잠시간 절연했던 적도 있고, 사생결단하고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절대 구부러지지 않는 쇳덩이처럼 아버지는 단 한번도 물러서 본 적이 없다.
관계를 회복하려면 결과적으로 내가 아버지에게 수긍하고 구부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가족관계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도 중요했다. 학대 피해자로서의 기억과 학대의 목격자로 살아낸 시간이 건져내지 못해 계속 우러나는 티백처럼 현생에도 늘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나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억지로, 거짓된 수긍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후회되는 것은 바로 진작부터 아버지에게 회색돌 기법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회색돌 기법(grey rock method)은 심리학적 용어로 관계를 끊어내기 어려운 지인, 특히 가족을 컬러가 없는(화이트도 블랙도 아닌) 회색돌처럼 대하는 태도를 뜻한다. 그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어떤 감정을 투영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을 쳐다보지만 내 눈빛은 공허하고, 그 사람의 말에 아무런 리액션이 없으며, 나를 공격하는 말들에도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보다 몇십년을 더 살았고, 내가 태어내기 이전에 분명 그의 곁에서 같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가족이 있었을텐데. 그 가족들은 괜찮았을까. 나르시시즘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닐텐데. 나의 경험상 아버지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므로... 실제로 먼 관계의 사람, 권력 관계에서 상위포식자,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자기투사(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실제로 자신의 열등감에서 비롯되므로)를 하는 대상은 주로 아내와 자식들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에, 그리고 나와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누가 있었을까. 아버지는 삼남매의 맏이였다. 아버지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다. 즉 나에게는 삼촌과 고모인 것이다.
얼핏 삼촌이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어릴 적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삼촌은 왜 아빠랑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라고. 심지어 삼촌이 아버지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부르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어머니는 "니 삼촌이 아버지를 질투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딱 봐도 모든 것을 갖춘, 질투할만한 이유가 없어보이는 삼촌이 왜 아버지를 질투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때는 그냥 고개를 갸우뚱 하고 넘어갔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질투한다"라는 표현은 아버지에게 나온 것이고,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상,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질투한다"라고 왜곡시켜버린다. 그리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어머니는 나에게 마치 자신의 생각인냥 그 말을 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이 삼촌이 아버지에게 쓰고 있던 방식이 바로 "회색돌 기법"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삼촌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리고 삼촌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힘들 진 않았는지, 삼촌은 언제부터 아버지를 적당히 멀게 대하며 관계를 유지해나갔는지에 대해 물었다. 삼촌이 회색돌 기법이라는 용어를 이론적으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방법을 찾았던 듯 보였다. 아버지의 성격이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했고 그 후로 가족 행사에서만 아버지를 보는 방식을 택했으며, 그곳에서도 그저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대했다고 했다.
나는 어땠는가? 나는 아버지가 뿜어대는 모든 화살에 다 맞았다. 그 반응도 거칠고 공격적이다보니 나르시시스트 입장에서는 내가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이고 자기투사를 잘 받아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반응이 공격적이었던 건, 오히려 재미를 줬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며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바라보는 삼촌은 어렵게 대했다. 말대답하고 따져드는 나는 더욱 쉬운 사람이 되었다.
정리해보면 아버지는 "당신 말에 수긍 못하겠다!"라고 하는 사람보다 "당신 말이 다 맞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더 두려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앞의 말은, "당신 말에 수긍 못하겠다. 우리 타협점을 찾아서 함께 살아가자" 였고, 뒤의 말은 "당신의 세계 속에서는 당신 말이 다 맞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세계에서 함께 살아갈 생각이 없다."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의 어려움이 있다면 주머니에 넣어둔 회색돌을 만지작거리면서 "당신 말이 다 맞다(이하 생략이지만)"이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