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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Dec 30. 2016

꿈과 현실의 그 사이에서

눈 내리던 겨울 그리고 <꽃피는 봄이 오면>, 류장하, 2004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실은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대상입니다. 꿈과 현실의 양립. 이것은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결국 그 양립이란 건 현실과의 타협과 절충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 타협이 결코 쉽진 않습니다. 삶을 버텨내기 위해 현실을 수용하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한 꿈의 공간을 어느 정도 내놓아야 할 상황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건 현실 감각에 충실하고 보편타당한 것이지만, 꿈을 가진 사람에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해 현실에 굴복하고 마는구나’ 생각하며, 꿈을 향하는 삶의 동력이 위태로워지기도 하죠. 그리고 주변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현우는 트럼펫을 연주합니다. 물론 마땅히 연주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가 정확히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또렷한 꿈은 교향악단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고집스럽게 그 목표를 놓지 않고 달려온 듯합니다. 그러나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는 중이죠. 게다가 현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는 현실에 부단히 저항하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는 구청에서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관악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죠. 일단 돈은 벌어야 먹고 사니까요. 그건 그의 꿈과 완전히 엇나가는 것일뿐더러, 재미도 보람도 없습니다. 그는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누굴 가르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에 순응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꿈과 부조화하는 그런 ‘짓거리’들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죠. 그런 현우에게 낮엔 번듯이 학원을 운영하고, 밤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까지 하는 경수라는 친구는 거의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돈독이 올랐다고 흉을 봅니다.


 그를 움켜 쥔 현실은 돈뿐이 아닙니다. 헤어졌던 연인 연희는 대뜸 찾아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전 애인의 고백에 현우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짐짓 웃다가도 자신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린 과속 카메라를 향해 돌을 던지며 공연히 분풀이를 할 뿐입니다. 그녀가 현우를 일부러 찾아와 그런 말을 꺼낸 건, 단순한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연희는 적어도 아직 현우에게 마음이 있어 보여요. 아마 자신을 잡아달라는 에두른 표현이겠죠. 하나 이전의 이별이 그랬듯이 고집 센 현우는 자신이 친 꿈의 울타리 안에서 그녀를 애써 밀어냅니다.

 그해 여지없이 치른 오디션에서도 그의 고집은 드러납니다. 심사위원은 ‘원래 오디션 볼 때 그렇게 입고 다니’냐며, 그의 허름한 옷차림을 지적하죠. 오디션을 한 두 해 본 것이 아닐 텐데, 그는 적합한 옷차림이 있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요. 더군다나 한 심사위원은 전에도 그가 오디션을 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싸늘한 심사위원의 시선 앞에서 현우의 표정은 머쓱하게 굳어집니다. 분위기를 보니 올해도 오디션 합격은 요원한 듯합니다.


 설상가상 연희에게선 이듬해 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를 둘러쌓던 현실 하나가 이제 떠나가려 합니다. 통화를 마친 현우는 마른 잎 하나 붙어있지 않은 헐벗은 나무만 어루만집니다. 그러다 우연히 ‘도계’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의 중학교에서 관악부 임시교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죠. 그는 문득 그곳으로 향합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건 끔찍하게 싫어했던 그가 갑자기 그런 마음을 먹은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단순히 현실과의 타협에 따른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도피’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꿈을 가렵게 하던 현실의 한 조각이 사라졌을 때, 그는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을 느꼈나 봅니다. 그 섭섭함은 자신의 꿈에 그녀를 포섭하지 못한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꿈에 대한 고집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 도피로써 돌출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가 도계중 관악부의 임시교사로서 부임하면서 그 갈등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됩니다.


 삼척시에 위치한 도계는 탄광촌입니다. 지역 주민들은 탄광이 숨어 있는 산을 ‘검은 산’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 시커먼 막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 동네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 철없는 이야기입니다. 도계중의 관악부는 애물단지 취급받습니다. 새로 부임한 현우를 소개하는 교사는 노골적으로 관악부 아이들을 ‘딴따라’라고 비하합니다. 곧 열리는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하면 관악부는 해체될 겁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모습들은 현우와도 많이 닮아있지요. 모난 시선 속에서도 좋아하는 음악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은 현우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특히나 관악부엔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는 속 깊은 재일이. 그리고 광부 아버지를 둔 삐딱한 반항아 용석이. 그 아이들은 현수의 다른 두 가지 면을 빼다 닮았습니다. 재일이처럼 현우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뿐입니다. 현우는 꼭 사춘기 남자애처럼 어머니와 티격태격하곤 하지만, 그에게 가족으로서 유일한 버팀목이 되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재일이 할머니처럼 어머니도 덧없이 늙어가는 중이죠. 그런가 하면 용석이는 상고에 가서 돈을 벌라는 아버지의 반대도 무릅쓰고 색소폰을 붑니다. ‘케니 지’처럼 유명한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지요.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에도 용석이는 자신의 고집을 쉽게 꺾지 않습니다. 그런 면이 또 현우와도 닮아있네요.    


 현우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격의 없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면서 고집스럽던 현우의 모습도 점점 변하게 되는데요.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지점이었습니다. 먼저 그는 밀린 카드 값을 갚기 위해 그토록 혐오했던 밤무대에 섭니다. 그리고 용석이에게 이를 들키지만 그는 그냥 ‘이럴 때도 있는 거라며’ 겸연쩍게 웃어 보입니다. 또 한 번은 연희에게 실수로 전화를 잘못 걸게 되는데, 그는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산다며 스스럼없이 근황을 이야기합니다. 전 같았으면 벌컥 짜증부터 내며 자존심을 상해했을 텐데 말이죠. 도계로 오기 전, 구청에서 아줌마들을 가르치는 걸 연희에게 들켰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는 꿈에 대한 자신의 고집을 꺾은 것일까요. 분명치는 않지만 그가 갈등하던 현실을 조금씩 끌어안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를 변화시킨 것이 도계와 그곳 사람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과 같이 꿈을 가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죠.     

 현우는 지금껏 주변 사람들의 말들은 깡그리 무시하며 자신의 꿈만 고집했습니다. 그저 ‘이상’만을 붙들고서 놓지 않는 것, 그것이 그를 아슬아슬 지탱하는 원동력이었죠. 하지만 그곳 사람들을 통해 현우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어릴 적 꿈도 ‘막장 인생’은 아니었다는 용석이 아버지. 동네 약사 수연을 사랑하며, 그녀가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카센터 직원 주호. 현우는 그들을 보며 자신의 고집에 밀려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퉁명스럽고 고집 센 아들을 항상 챙겨주려는 어머니, 사랑했지만 꿈을 위해 떠나보낸 연희, 돈독에 올랐다는 힐난에도 그를 찾아주는 경수. 그는 자신의 고집에도 늘 곁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재일이 할머니가 눈길에 미끄러져 안타까운 임종을 맞았을 때, 그의 깨달음은 고백으로서 터져 나옵니다. 재일이는 울면서 할머니에게 연주 한 번 못 해 드렸다고 말해요. 현우는 그 슬픈 고백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어머니에게 트럼펫 연주를 한 번이라도 들려드린 적이 있었을까요. 그날 혼자 술을 마시며 현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재일이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도하면서, 나이 드신 어머니의 죽음도 차츰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어머니에게 대뜸 ‘아픈 데는 없느냐’ 묻는 건 그런 의식과도 맞닿아 있겠지요. 그리곤 울면서 ‘뭐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고백해요. 그 고백은 ‘무엇이든’ 지금껏 돌보지 않았던 사람들과 현실에 대한 후회인 듯합니다. 철없는 아들에게 늘 향했던 모정에 보답할 기회도 나날이 줄어가고 있지 않은가요. 하나 어머니는 ‘넌 지금이 처음이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꼭 ‘지금부터 잘 하면 되는 거야’라고 들리는 것 같네요.


 현우와 도계중 관악부는 그해 전국 대회에 나가 멋지게 연주합니다. 그들의 우승 여부는 영화상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겠지요. 관악부가 강제 해산된다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음악을 연주할 테니까요.

 임시직이었던 현우는 대회를 끝으로 도계를 떠납니다. 그리고 그가 곧장 향하는 곳은 연희의 아파트 앞이네요. 현우는 연희와 무겁게 앉았던 벤치에 다시 앉아, 그녀에게 전화를 겁니다. 현우는 능청스럽게 좋은 트럼펫 강사가 있으니, 그녀의 학원에 소개해주겠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그는 현우 자신입니다. 연희와 웃음을 터뜨리는 현우의 곁에는 어느새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 흩날립니다. 겨우내 메말랐던 나무는 이제 솜사탕같이 풍성해져서 가지를 흔듭니다. 첫 계절 봄이 다시 찾아왔듯이, 현우도 다시 처음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그도 고집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꿈의 방식을 가꾸어 가겠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한창 겨울입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머지않아 각자의 봄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어떤 봄이든 따뜻하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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