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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Dec 24. 2016

그렇게 어디서든

대륙, 홍콩, 뉴욕 그리고 <첨밀밀>, 진가신, 1997

※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글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대륙에서 홍콩으로

 오래도록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고도 두려운 일입니다. 어떤 일이, 또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 달려들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첨밀밀>은 ‘이상’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 또 머무르다 떠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가까스로 기차에서 내린 주인공 ‘여소군’은 마치 아기가 걸음을 놓듯 더듬더듬 플랫폼을 두리번댑니다. 그가 지상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에 설 때는 그저 하얗다고 표현해야 할 빛이 그의 몸을 집어삼키려 합니다. 흑백 화면에서 배경과 대비되는 빛은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그 빛은 얼핏 천국의 문이 열리며 뿜어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대에서 배우의 정면으로 쏟아지는 핀 조명 같기도 합니다.

 

 홍콩에서 둘로

 소군이 살던 ‘대륙’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홍콩 드림을 찾아 고향을 떠나옵니다. 소군도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 홍콩을 찾은 젊은이 중 한 명입니다. 고향에 사는 연인 소정을 불러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게 그의 이상이죠. 소군은 홍콩에 사는 고모의 도움을 받아 머무를 곳을 찾게 됩니다. 그가 몸을 눕히는 좁은 방엔 고모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의 매춘부들이 밤일을 준비하곤 합니다. 그래도 소군은 참 순박한 청년입니다. 그는 그의 방 안을 들락거리며 새벽에 토악질을 하는 여자들이 매춘부인 줄도 모르죠. 그러면서 홍콩 사람들은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놀러 다니기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고향인 무석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도 고모는 그가 타향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입니다. 소군이 대륙에서 쓰던 ‘표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홍콩에서는 대개 광둥 어와 영어가 쓰입니다. 하지만 광둥 어를 배워도 거리에선 알아듣지 못할 언어들이 ‘이물감’처럼 떠돌아다닙니다. 홍콩이라는 도시에는 이미 소군과 같은 수많은 이방인들이 ‘살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도시에 녹아들려 기꺼이 이방인의 얼굴을 감추려 합니다. 그렇게 낯선 도시였던 홍콩은 점점 소군에게도 ‘자신의 곳’이 되어 갑니다. 소정에게 쓰는 편지에서처럼 그에게도 눈에 훤히 밟히는 장소가 하나둘 생기게 되었죠.

 

 그리고 소군은 자신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소군처럼 대륙에서 건너온 ‘이교’입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돈을 모으기 위해 어디서든 악착같이 일합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부자가 되고 싶어 하죠. 그래서 대륙인의 신분을 벗고 당당하게 ‘홍콩인’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이상’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소군은 그저 어수룩한 대륙 촌놈일 뿐입니다. 이교는 처음부터 소군에게 자신의 출신지를 속입니다. 그건 그저 어리숭한 소군을 등쳐먹기 위한 속셈이었을까요. 혹은 촌스런 소군과 거리를 두고 싶었던 일종의 방어기제였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가까워지며 곧 알 수 없는 동질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상에 대한 갈망은 소군보다 높았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녀도 하릴없이 외로운 이방인이었나 봅니다.  

 

 홍콩에서 하나로 

 두 사람은 시나브로 미묘한 관계가 되어 갑니다. 연인처럼 이따금 관계를 갖고 서로가 갖고 있는 것들을 스스럼없이 보여줍니다. 소군은 그때부터 소정에게 써오던 편지의 문장을 좀처럼 잇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교는 그에게 각자의 이상을 이루어가는 동반자라고 말하며, 그들의 관계를 ‘우정’으로 한정 짓습니다. 소군도 언뜻 이에 동의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좋은 친구 사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속내는 달라 보입니다. 친구라고 말하지만 친구는 아닌 관계. 그런 미묘한 관계는 1987년 홍콩 주가 대폭락을 기점으로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교가 투자한 주식이 곤두박질치게 된 그 시점입니다.

 

 이교는 언제나처럼 소군과 함께 통장의 잔고를 확인합니다.  늘 소군의 탄성을 자아내던 그녀의 통장잔고가 이번엔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그녀의 이상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위기에 처합니다. 이교는 마사지 숍에 취직하며 다시 이상을 향해 전진하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혹 길 잃은 아이처럼 시무룩해 보입니다. 그런 그녀를 소군은 제대로 이해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그제야 이교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들의 묘한 관계 그리고 각자의 이상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 걸까요. 횡단보도에 선 두 사람은 그렇게 기로에 섭니다.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이교는 떨리는 눈빛으로 소군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 눈빛이 진실로 무엇을 바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망설이던 소군은 각자의 이상을 선택합니다. 결국 이교는 ‘여소군 동지’라고 일깨우듯 그를 호칭하며 홀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그렇게 그들의 두루뭉술한 관계는 종지부를 찍는 듯합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왔습니다. 홍콩 드림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은 이제 경제적 타격으로 살기 힘들어진 홍콩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타던 자전거에도 어느덧 녹이 슬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그처럼 무뎌졌지만, 각자의 이상은 이루게 됩니다. 소군은 소정을 홍콩으로 불러와 가정을 꾸렸고, 부를 쌓은 이교 또한 누구도 그녀를 대륙 출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도 새로운 사람이 있네요. 소군과 이교는 이로써 원하던 삶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행복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공허하게 서로의 주변을 헤맵니다. 그렇게 자전거의 녹이 벗겨지듯 서로의 감정도 다시 한 꺼풀씩 맨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끝내 성공의 이면에 내려앉은 공허를 채우기 위해 다시 서로를 갖습니다. 그 공허를 채운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 그들이 이상 대신 포기했던 진실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애초에 ‘각자’ 꿈꾸었던 이상은 이제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홍콩인이 되고 싶었던 이교는 다시금 소군을 ‘여소군 동지’라고 부르며 대륙인이었던 자신의 정수를 내보입니다. 소군도 자신의 감정을 더 속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공동’의 이상을 이루게 될까요.

 

 그러나 갑작스레 이교의 연인인 표형이 사고에 연루되면서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이교는 자신의 아픔을 기꺼이 나누어 받았던 표형에게 차마 이별을 말하지 못합니다. 먹구름이 세찬 비를 뿌립니다. 우산 아래 홀로 남은 소군은 표형과 이교를 태우고 떠나가는 밀항선을 바라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엇갈립니다. 소군은 이교와의 약속대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소정과 이별합니다. 이교가 떠난 소군에게 홍콩은 더는 이상의 도시가 아닙니다. 홍콩에 머물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갑니다. 단 한 번의 사랑을 오래도록 안고 살던 고모는 세상을 떠납니다. 주정뱅이 영어 강사 제레미도 연인인 개란과 함께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둘이 되어 뉴욕으로

 이제 무대는 바다 건너 뉴욕으로 옮겨갑니다. 뉴욕은 홍콩보다 더 화려하게 꿈틀댑니다. 또 한편으로는 더욱 낯선 도시이기도 하죠. 그리고 소군과 이교는 공교롭게도 같은 도시에 자리 잡게 됩니다. 소군은 홍콩에서 연을 맺었던 식당 주인의 밑에서 일하며 닭고기를 굽습니다. 이교는 표형과 수년간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시련을 함께해 왔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이상을 꿈꾸던 삶의 열기는 거의 식은 듯합니다. 뉴욕이 맘에 드냐는 표형의 물음에 이교는 '어떤 곳이나 다 똑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표형이 소군의 가게에서 사 온 요리를 만족스럽게 먹어치웁니다.  

 그러다 표형은 안타깝게도 불량배들과의 시비에 휘말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습니다. 설상가상, 홀로 남게 된 이교는 이민법에 의해 추방될 위기에 처하는데요. 추방되는 길에 우연히 소군의 모습을 본 이교는 그의 뒤를 쫓지만 그만 놓치고 맙니다.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교의 모습은 어쩐지 빗속에서 밀항선의 멀어지는 불빛을 바라보던 소군의 모습과도 겹쳐 보입니다.  


 뉴욕에서 다시 하나로

 시간은 흘러 홍콩에서 다른 나라로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본토로 돌아가려 합니다. 다시 새로운 꿈과 삶을 찾아 대륙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상을 향해 움직입니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던 이교도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올려다보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이 어딘지 의미심장합니다. 소군도 먼 곳에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네요. 

 그리고 이교가 드디어 대륙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등려군의 요절 소식과 맞물려 기적처럼 재회하게 됩니다. 실로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눈빛을 마주한 두 사람. 어쩐지 크게 놀라는 기색은 없네요. 오히려 말없이 활짝 웃어 보이는 얼굴이 더없이 순수해 보입니다. 그들이 처음 홍콩에서 각자의 이상을 향해 달리던 그 시절과는 또 다르군요. 또 한 번 이어진 기적 같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어디서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재회한 뉴욕일까요, 그들이 처음 만난 홍콩일까요. 둘 다 아니라면 그들이 최초로 떠나온 고향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디서든 그 시절처럼 그들의 삶에 이상과 희망이 충만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렇듯 <첨밀밀>은 여정과 이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비단 소군과 이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들을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동하고 스스로 이방인이 됩니다. 먼 데로 떠나와 꿈꾸는 이상이 그들의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겠죠. 우리 또한 종종 낯선 환경을 마주하고서 설렘과 두려움의 여행기를 쓰게 됩니다. 그 낯선 환경을 점차 자신의 장소로 가꾸어 가는 것, 그럼으로써 이상적인 삶을 완성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두 주인공의 운명적인 사랑뿐 아니라, <첨밀밀>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주제 의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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