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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Feb 06. 2017

부도덕을 쉽게 변호하는 생각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걸까, 사람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기사를 스크랩하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시 글을 읽었다. 대전역 청사에 설치된 사랑의 열매 모금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게시 글에는 성금보다는 영수증이 그득히 담긴 모금함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모금함의 가운데에는 ‘영수증을 넣지 말아 달라’는 글귀가 똑똑히 적혀 있었다. 글쓴이에 의하면 모금함의 불과 4, 5미터 떨어진 곳에 버젓이 쓰레기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곳에 영수증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왜 모금함에 ‘영수증을 모금’했는지는 알 수 없다. 모금함을 투기함으로 착각한 것인지, 일부러 짓궂은 마음에 그랬는지, 아니면 미처 쓰레기통을 보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그런 건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만약 그들에게 행위에 대한 근거와 책임을 묻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통감하고 반성할까, 아니면 갖은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것인가. 분명한 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모든 이들이 전자처럼 반응하지는 않을 거란 사실이다. 몇몇 내지 상당수는 아마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든 다른 곳에 던져 놓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일지 모른다. “나만 그랬어? 왜 나한테만 그래?”     




 이제 정말 마땅하고도, 이상적이며,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요즘 들어 내 머릿속에 자꾸 ‘도덕’이라는 익숙하고도 보편적인 가치가 물음표로 떠오르곤 한다. 덧붙여 ‘도덕적인 삶’을 지향하는 올바른 자세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도덕의 문제란 둘 이상의 도덕적 가치가 상충하며 비롯되는 딜레마를 포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부도덕’과 마주한다. 우리의 주변과 주변을 비추는 미디어를 통해서 다양한 부도덕적 사건들을 목격한다. 정의를 어기고, 공공 규범을 무시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부도덕을 쉽게 변호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다. ‘왜 나에게만 책임을 묻느냐, 내가 잘못을 일으킨 불가피한 요인은 없느’는 등의 언사로 도덕적 책임을 정당화하고 축소하려 한다. 결국 그런 말들은 대개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귀결된다. 도덕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공공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일단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으로서 도덕을 ‘다루려’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언사가 설사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을 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다. 사람은 도덕을 어길 수 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의 실리를 위해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언행을 노출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역사는 도덕을 탐구하고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면서도, 한편으론 도덕적 가치를 무시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추동되어왔다. (가령 그 옛날 이방원이 왕좌에 앉기 위해 형제들을 죽일 만큼 부도덕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이후의 역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유념해야 할 점은 부도덕을 논하면서 ‘사람이니 도덕을 어길 수도 있다’는 명제가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항상 앞서야 하는 것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불변의 가치다. 그들은 도덕적 책임을 먼저 시인하기보다는 그런 본말전도의 방식으로써 양심을 마비시키려 한다. 부도덕을 쉽게 변호하는 생각들이 자꾸 선행되다 보면, 결국엔 도덕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사회를 정의의 노선 위에서 삐걱대게 만든다. ‘그 입장에 서면 너는 안 그럴 것 같으냐’ 따위의 말들이 그런 현상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부도덕으로 평가되는 행위를 야기한 ‘그 입장’이 진실로 무엇일지,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감안해야 할지 따지는 것은 사실 부차적으로 헤아릴 문제다. 그런 생각을 선두에 내세우고 옹호하려 든다면, 이 세상에서 부도덕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역지사지는 어떤 자물쇠든 열 수 있는 만능키가 아니다.        




 나 또한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글을 함부로 쓰는 것이 못내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이 아닐 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도덕에 대해 이야기하며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성할 여지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명백한 잘못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면,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더라도 일단은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은 과오를 범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지만, 그것이 무턱대고 용납될 수는 없다.   

 

 글을 써놓고 읽어보니, 그저 지루한 도덕 교과서 같은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가슴과 머리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 마땅히 행동으로 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들 일지 모른다. 하나 우리는 대개 안타깝게도 교과서대로 살지 못한다. 그건 그것대로 인간다운 것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교과서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살면서 교과서 안에 담긴 가치를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 가치는 비록 지루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필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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