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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May 24. 2018

사랑은 합당하지도 적당하지도 않아, <케이크메이커>

브런치 무비 패스 세 번째 이야기


연인이 죽었다. 가볍게 베이커리의 문을 밀고 들어와 아내를 위한 쿠키 상자와 스스로를 위한 케익 한 조각을 주문한 남자가 죽었다. 붉은 체리 조각을 얹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남김없이 먹던 남자, 케익을 삼키던 입으로 입맞추던 남자가 갔다. 응답받지 못한 음성 메시지를 휴대폰에 남겨둔 채 죽었다. 부고도 없이.



베를린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토마스는 예루살렘 출신 사업가 오렌의 동성 연인이다. 출장을 올 때마다 토마스가 만든 케익을 사 먹던 것이 인연이 되어 발전한 관계다. 문제는 오렌에게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데 있다. 한 달 후 돌아오겠다며 떠난 오렌의 연락이 두절된다. 오렌의 회사까지 직접 찾아가서야 토마스는 그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충분한 애도 없이는 누군가의 죽음이 한 사람 안에서 제대로 소화되기 어렵다. 부고를 받지도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한 토마스는 그런 면에서 연인이었던 오렌을 보내줄 기회를 잃었다. 둘의 관계에는 실체가 없었다. 증거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적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은 관계였다. 오렌은 어디에도 토마스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때문에 충분히 응답받지도, 애도의 기회를 얻지도 못했다. 알 수 없는 연인, 속을 다 헤아릴 수 없는 오렌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그의 이야기를 헤집어도 언제나 미끄러질 뿐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그를 소파 건너편에서 바라보며 묻던 장면을 복기해 보자. "아내와 마지막으로 언제 했어? …… 어디에서? ……… 어떻게?" 검질기게 연인의 입술이 삼킨 것들을 더듬던 토마스는, 연인이 죽고 나서 그의 세계로 훌쩍 뛰어 들어간다. 그는 오렌의 아내인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에 취직해서 케익을 만들고, 심지어는 아나트와 사랑을 나눈다.



크림이 충분히 들어간, 붉고 검은 블랙 포레스트 케익을 성적인 은유로 읽는 건 호들갑이 아니다. 오렌의 입에 들어가는 케익을 바라보던 토마스의 눈을 복기할 때 더욱 그렇다. 영화 초반, 토마스(의 시선으로 보이는 카메라)는 오렌에 의해 삼켜지던 블랙 포레스트 케익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토마스의 손에서 빚어진 케익이 오렌의 입 안으로 삼켜지는 순간은 충분히 섹슈얼하다. 베를린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오렌을 사랑 속에 빠뜨렸던 '케이크 메이커' 토마스는, 예루살렘에서도 케이크를 만들어 아나트를 매혹시킨다. 탁월한 맛을 내지만 코셔 인증을 받을 수 없는 이 독일 출신의 이방인 '케이크 메이커'는 정말이지 율법 바깥에 있다! 참으로 반유대적이지 않은가. (농담)


<케이크 메이커>는 당혹스러운 농담 같은 영화였다. 겉은 검고, 꽤 신사적으로 보이는 클래식한 블랙 포레스트 케익은 그 외양을 보곤 예상하지 못할 만큼 충분히 단 맛을 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엄격한 코셔, 유대 율법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배덕하다. 충실한 유대인이자 가장이었던 오렌은 타국에 동성 연인을 두었고, 코셔 인증을 받았다고 강조하던 아나트의 카페에선 이방인(토마스)가 오븐에 손을 댄다. (심지어 그들은 주방에서 섹스한다) 하누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언뜻 고요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율법의 세계는 그 속에서 벌어지는 정념과 사랑, 식욕과 사념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달콤한 케익에 끌리는 혀의 갈망이 적당할 수 없듯, 사랑 역시 합당함을 헤아리는 마음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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