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던 아이에서, 누군가의 글쓰기를 안내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필사적으로 가르치시려
매일 내 이름을 불러일으키셨고,
나는 그때마다 초록 칠판 앞에서 무력과 수치를
경험해야 했다.
눈동자는 흔들렸고,
입은 굳어 있었고,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웃음들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지금 떠올려도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숙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친구들은 알림장을 보고 자연스럽게 준비해 왔지만
나는 글자를 모르니
알림장조차 쓸 수 없었기에
나에게 숙제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때의 내 짝은 또 왜 그렇게 짓궂고 못됐던지,
내가 글씨를 재빨리 따라 쓰지 못해
짝의 알림장을 좀 보려 하면 얼른 팔꿈치로
가리며 나를 밀쳐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아이도 어렸으니 친구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았겠구나 싶다.
어쩌면 자신의 글씨를 나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을지도.
‘나는 왜 이럴까’
고작 여덟 살인 나는 매일 이렇게
작지만 작지 않은 절망을 삼켜야만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셨다.
바쁘고 고된 삶 속에서
내 어려움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어린 나였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님의 무거운 어깨에
나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차라리 내가 혼자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판을 읽어보려 애쓰고,
교과서 글자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읽고,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한 글자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4학년이 되자, 숙제이기도 했지만,
나는 매일 일기 쓰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말로는 끝내 설명되지 않던 내 마음이
종이 위에서 처음으로 형태를 갖추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기록은 멈춘 적이 거의 없다.
늘 홀로 있어야 했던 외로운 유년 시절,
사춘기의 혼란,
관계의 상처,
엄마로 살아가며 생긴 고단함,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했던 수많은 마음들까지
모두 글로 쓰고 정리하며 중심을 잡아 왔다.
글은 나를 지탱했고,
흩어진 내 마음을 모아주었고,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혼자 글자를 깨우쳤던 그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가르칠 때마다
늘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읽지 못해 움츠러들던 그 아이.
부끄러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배우고 싶었던 그 마음.
그 작은 마음 하나가
평생을 이어온 기록의 씨앗이 되었기에,
지금의 나는 사람들이 글쓰기로 자신을 다시 만나는 순간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또 한껏 응원한다.
흔들리던 마음이 정리되고,
잊고 있던 자기다움이 선명해지고,
삶의 방향이 조용히 돌아오는 그 장면들을 말이다.
아마도 내가 이 길 위에 서 있는 이유는,
그 작은 아이가 혼자서 읽어 내려가던
그 첫 글자들 속에
이미 오래전부터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글이 나를 살렸고,
기록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은 내가 누군가의 묵직한 첫 문장을
힘 있게 열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이 브런치를 통해,
어린 날의 결핍에서 시작된 기록들이
어른이 된 나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
그리고 그 기록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데
작은 힘이 되어왔는지,
그 모든 여정을 생생하게 담아보려 한다.
나의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글쓰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