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살게 한, 글쓰기의 힘
우리는 때로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날을 맞는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감정이 가라앉고,
평소와 같은 일상인데도 이상하게 무력하고
눈앞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음을 제대로 붙잡고 싶지만
생각은 제멋대로 흩어지고,
감정은 엉키고,
지금껏 살아온 모든 방식이
더 이상 나를 지탱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있다.
쓰는 일.
글쓰기는 마음의 구조를 다시 짜는 힘이 있다.
머릿속의 혼란을 종이 위로 꺼내는 순간
감정은 모양을 갖추고,
문장은 방향을 만들고,
혼란 속에서도 나만의 길이 조용히 드러난다.
나는 지난 수년간
삶의 여러 무게를 안고 찾아온 사람들의 글쓰기를 지켜봐 왔다.
자녀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으로 흔들리던 엄마들이
기록을 통해 “나는 괜찮은 엄마다”라는 사실에 도달하는 순간.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청소년들이
글 한 줄로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표정이 밝아지는 순간.
세월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이제야 내 인생이 이해된다”라고 말하던 한 어르신의 떨리는 목소리까지—
글쓰기가 한 사람을 다시 세우는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글만 쓰는데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 기적은 그 글로 인해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기적은 ‘쓰는 나’에게 일어난다.
쓰는 동안 우리는
내 감정의 진짜 이름을 붙이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바라보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알게 된다.
2019년 11월 29일 새벽 4시
그날따라 이상하게 잠이 깼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 노트를 펼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깼는지,
지금 내 마음의 눌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새벽의 기록은 이유를 모른 채 흘러나왔다.
겨우 눈을 붙이고 누운 순간,
핸드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친정 엄마라고 떠 있었다.
아직 새벽 다섯 시도 되지 않은 시각.
'이 시간에 전화를 할 리가 없는데...'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고막이 찢어질 듯하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아주 다급하고 숨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요.
곧 ○○병원 응급실로 이송됩니다.
빨리 오시기 바랍니다!”
“네? 우리 엄마 괜찮죠?”
내 물음에 경찰은 잠시 침묵하더니
짧게 말했다.
“… 빨리 오십시오.”
응급실로 뛰어들어갔을 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엄마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계속해도 의미가 없다면, 그만하셔도 됩니다.”
몇 년 동안 웰다잉 코칭을 받으며
‘억지스러운 연명치료’에 대해 공부해 왔기에
그 순간 필요한 판단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기도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오던 엄마는 하루아침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비록 넉넉치 않았지만 늘 화목했다.
부모님과 나와 남동생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고 같이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크고 작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때때로 옥신각신하셨지만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분들이었다.
엄마를 갑작스레 잃은 뒤
아버지는 모든 감정을 하나뿐인 딸이자 장녀인 나에게 쏟아냈고,
나는 세 아이를 돌보는 일상 위에
아버지의 정서적·육체적 쇠약까지 떠안아야 했다.
때때로 숨이 가빠오고,
밤에 자다 벌떡 일어나
심장을 움켜쥐던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오는 것이 지옥 같았다.
다시 하루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얼마 전까지 웃으며 이야기 나눴던 엄마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으로 그 빈자리를 내가 전부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난생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을 먹으면 겨우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잠에서 깬 후에 무력감이 너무 심했다.
오히려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되돌려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
아침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쏟아내던 모닝페이지였다.
약으로도, 그 어떤 이의 위로로도
치유되지 않았던 이유는,
순식간에 엄마를 잃은 '상실감'때문이었다.
애도의 시간을 차분히 보낼 틈 없이,
주변을 돌보고 조율하는 삶 속에
나는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께
그리고 글쓰기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그리고,
그 선택은
점차 나를 살리는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