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병도 주고 약도 주었다
사람들은 ‘암 투병기 극복한 저자의 도서 혹은 토크쇼’에 진부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필자는 그랬다. 마냥 남의 이야기라 무관심했고 모두가 같은 ‘위기와 극복’의 서사를 말한다고 어쭙잖게 치부했다. 그러다 주말 낮, 카페에서 이 책을 꺼냈다. 웅성웅성 시끄러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은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보게끔 하였다. 어쩌면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다. 이 도서의 저자(김은섭)는 하루아침에 대장암 3기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온전히 그가 느끼는 고독, 외로움이 ‘발병-입원-통원치료-회복의 순간- 항암종료’의 카테고리 내에 담아낸다. 도서 평론가이자 자칭 글쟁이인 그는 병의 버팀목으로서 글을 읽고 또 글을 쓴다. 책을 읽으며 울고 웃고 이해하며 이 모든 것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실 암 투병기를 겪는 사람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고 또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순 없다. 이 말이 ‘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공감하면서 볼 수 있을 거야’라는 게 아니다. 사실 병 특히 암이라는 건 독한 독이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상상하기조차 꺼림칙한 단어가 아니던가. 그보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에 고독한 병이 들어왔을 때 환기할 수 있고 주위 사람들 혹은 그냥저냥 지인의 일이 되었을 때 자칫 무례할 수 있는 무관심을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래서 후회했다. 내가 진작에 읽었다면 좋았을걸. 지금은 떠난 내 할아버지이자 동시에 암 환자였던 그가 생각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주인공이 의사로부터 이런 진단을 들으면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 비틀거리더니, 순간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의사 멱살을 잡고 “당신 거짓말하지 마. 내가 왜 암이야!”라며 소리치고 하던데. 난 그냥 멍하니 의사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기분이 더러울 만큼 담담했다] 우리 가족들도 그의 암 진단을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침묵 속에서 들었다. 그 누구도 놀란 기색 없이 정말 가만히 있었다. 부정하지도 되묻지도 울지도 않고. 이 소식을 안고 그에게 갈 때까지도 조용했다. 어떻게 전 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적당한 말일지 아니 그런 말이 존재하긴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복잡할 뿐이었다. 작가의 말이 맞다. 암 환자가 되는 건 예고가 없었다.
[발병의 슬픔에는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5단계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마지막까지 특별한 이유는 수용의 단계를 넘어선 희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 말하는 희망과 아픈 사람이 말하는 희망의 크기는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희망을 갈구하는 정도의 차이가 다르다. 후자가 크기는 더 작을지라도 꾹꾹 밀도 있게 담겨있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함을 더 잘 찾기 때문이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한다. 우리는 반복되는 삶에 녹아있는 작은 디테일들을 찾는 방법을 잊고 있지 않은 지 되돌아보게 한다. [신기하게도 환자가 되면 큰바람도 없어진다. 그저 아프지 말고 예전 아프지 않을 때처럼 활기차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 그거 하나뿐이다. 그래서 지금 괴롭고 아픈 건 역설적으로 작은 행복의 원인이 된다] 할아버지의 병실은 6인실이었고 모두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병간호하는 가족들과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저마다의 사람들. 뒤늦게 들은 말로는 할아버지는 혼자 등을 돌리고 누워있다가 울었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왈칵했던 건지 책을 보고 가늠했다. 마치 문이 없는 방에 갇힌듯한 외로움이었다.
책에서는 그의 이야기뿐 아니라 중간중간 작가가 읽은 다양한 도서들의 목소리도 빌려온다. 그래서 더욱이 지루하지 않다. 지루할 틈이 없다. 그중 아래는 가장 인상 깊은 인용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정의에 견줄 수 있는 가장 명쾌한 해답인 듯하다.
[개는 단순 무식한 게 아니라 순간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다. 세계적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도 자신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많이 듣는 말이 떠오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지만 살아가면서 건강에 익숙해지고 또 다른 것을 쫓는다. 아프면 아픈 순간에만 집중하고 잠시 다짐할 뿐이다. 참 간사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 뒤에는 배움이 있는데 이를 놓치기 쉽다. “지금 내가 건강을 회복했으니 앞으로 바람직하고 소중하게 살아야지” 얄밉게도 이 뒷말이 병이 남겨주는 교훈이다.
하루하루의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 나답게 사는 것. 마냥 입에 발린 말처럼 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고 그처럼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사소하게 와이파이가 불편해 무제한 데이터를 결제하고 입고 싶은 정장을 사는 것. 이런 잔잔한 일들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변화시켰다. 그래서 이 도서는 후회와 감사를 남겨주었다. 앞서 말했듯 개인적인 기억과 밀접하게 닿아있기에 타인에게 건네고 싶은 도서이자 일상을 꼬집는 가장 묵직한 지침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