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치 카터>
실화를 영화화한 대표적인 스포츠 영화 중 하나.
이 영화의 감독은 <코치 카터>와 맥락이 비슷한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151경기>(When the Game Stands Tall)을 연출한 토마스 카터다. 주인공으로는 코치 켄 카터 역할의 사무엘 L. 잭슨, 카터의 아들 다미엔 카터 역에 로버트 리카드 외 다수가 출연했다.
이 영화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논픽션이 기반이며 "농구"에 관한 이야기로 엮었다. 영화의 흐름은 기존 스포츠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뻔한 스토리이자 결론에 이르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다.
하지만 내겐 의미가 남다른 있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10년 넘게 농구선수로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처지였고, 이후 농구를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은 지 10년 동안 농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지도한 교사로서 주인공인 코치 카터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자로서 카터는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교육적 신념과 의지가 지도한 학생들을 포함하여 학부모, 주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과 그의 진정성은 결국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교사로서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제 영화 <코치 카터>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코치 카터는 리치먼드 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명한 농구선수였다. 그 사실은 체육관 천장에 걸려 있는 그의 유니폼이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은퇴 후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교에게 농구팀의 코치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심사숙고 끝에 그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리치먼드 고등학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당연히 실력은 형편없는 데다가 학생들의 태도는 불성실하고 불손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자존심만 센 실력 없는 팀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학교는 빈민가에 위치한 곳이었기에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고 부모의 돌봄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마약, 음주 등등 각종 일탈을 일삼으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이곳의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카터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리치몬드 고등학교 진학을 만류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 다미엔은 아버지에게 농구를 배우고 싶은 열망이 컸기에 결국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리치몬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오버랩된다. 우리의 학부모들은 대개 교육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여기서 교육환경이라 함은 사교육 즉, 학원들이 즐비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강남의 대치동을 포함한 목동, 평촌, 분당, 용인 수지, 수원 광교 등등 수도권에서도 학원가들이 들어선 지역들의 부동산 가격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교육적 수요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이 옳다). 반면, 주택가, 빌라촌 등등 아파트 단지가 아닌 지역은 상대적으로 선호하지 않거나 심한 경우 천대하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사실 교사도 이 같은 곳들에 대해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는 편이다. 학업은 둘째치고 각종 문제(학교폭력, 일탈행위, 교권침해 행위 등등)가 산적해있고 그것들에 본인도 피해를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눈으로, 귀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선들로 인해 이곳들의 학생들은 마치 낙인이론과 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몇몇 학생의 행동을 그 지역 전체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괄시하며 자신들을 기피한다는 주변의 사실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것이다. 어쩌면 선량한 학생들은 이 같은 외부의 시선에 상처 받고 그에 대한 반동 심리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닐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속 리치몬드 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경제적 여건과 교육적 혜택(돈 있는 사람만이 마음껏 학원을 보내고 선행학습이 가능하고 이 경험이 학벌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이 권력이 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는 이것은 특혜이지 않나)의 정비례 관계 속에서 리치몬드 고등학생들은 진작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게토(getto)처럼 본인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인 카터가 아들의 리치몬드 고등학교 진학을 만류했었던, 아니 반대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깨트리기엔 쉽지 않음을 알기에. 어쩌면 우리나라의 과열된 교육열의 시작도 이 지점에서부터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드디어 학생들과의 첫 대면. 하지만 코치 카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학생들은 그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카터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설명했을 때에는 그를 무시하는 발언까지 일삼았다. 카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계약서를 주었다. 계약서의 내용을 이랬다.
1. 성적에 신경 쓸 것.
2. 수업 중 맨 앞자리에 앉을 것.
3.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정장을 갖춰 입을 것.
4. 상대방을 존중할 것.
이 과정에서 극 중 인물인 티모 크루즈는 카터의 행동을 따라 하며 조롱했고 다른 이들은 동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 상황에서 카터는 이들의 실력에 대해서 거침없이 팩트 폭행을 가한다. 자존심이 상한 티모는 카터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도리어 제압당했고 분에 못 이겨 농구 코트를 떠난다. 계약서를 위시한 팀의 변화를 거부하는 몇몇 학생들도 티모의 행동에 동참한다. 이처럼 영화는 극 초반부터 카터와 리치몬드 고등학교 농구팀 간의 갈등을 고조시킨다.
인간은 관성에 젖게 되어 있는 법이다.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이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뒤흔드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학교도 “변화”와는 거리가 다소 먼 조직이자 장소다. 학생 문화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익숙한 것을 추구하지 새로움에 대해서는 심적 부담감을 갖는다. 수업 목표와 방식의 변화에도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 결국 제자리만 맴도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는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우선 저지르고 본다. 계획했던 수업에 대해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수정하며 설득의 과정을 함께 진행하곤 한다. 어쩌면 코치 카터도 내가 마주했던 상황과 대동소이했던 것 같다. 변화를 추구하는 카터와 현재에 안주하려는, 어차피 세상과 나는 변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대한 무력함을 안고 있는 선수들 간에 갈등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진진하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면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티모를 포함하여 몇몇의 선수가 빠진 상황 속에서 카터와 남아 있는 선수들은 농구 훈련과 학업을 병행해나간다. 먼저, 농구 실력에서부터 점차 변화가 시작된다. 오합지졸 농구팀이었던 리치몬드 고등학교는 점차 기술적, 전술적으로 팀워크가 높아졌고 매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한다. 학교생활 면에서도 안정을 찾고 있었다. 코치와의 약속을 이행하면서 스스로도 만족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했던 티모 크루즈가 농구 코트를 다시 찾아온다.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방황했던 정대만이 안 감독님을 찾아와서 농구를 하고 싶다는 고백을 하듯. 그런 티모를 카터는 외면했으나 간절한 그의 모습에 재합류의 기준을 제시했다. 팔 굽혀 펴기, 왕복 달리기 등등의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과 짧은 완료기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티모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완료기간에 다 완수하지 못했다. 그때, 팀원들의 팀워크가 빛이 났다. 한 명, 두 명 티모의 부족한 과제 분량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닌가 결국 티모는 팀원들의 배려로 팀에 재합류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카터는 제 발로 팀을 이탈한 티모의 행동에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진정성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팀 스포츠인 농구에서 팀원의 행동 하나하나는 팀 자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훈련 분위기에서부터 팀원 간, 코치와 팀원 간의 관계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팀원들에게는 책임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카터는 티모에게 불가능한 과제를 제시했을 것이다. 사실, 리치몬드 고등학교는 최근 실력이 상승가도를 달리는 팀이기에 그의 등장은 불안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에 카터 입장에서는 티모의 재합류가 반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이번 사건이 팀을 더욱 결집시키는 호재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카터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 티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고 팀원들의 도움에 큰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은 개별적 존재일 때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일 때 더욱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누구든지 “외톨이”, “혼자”보다 “함께”라는 단어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작은 사회”라는 격언처럼 팀 스포츠인 농구에서 팀원들의 존재와 관계 맺음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된다. 영화 <코치 카터>는 말해주고 있었다.
리치몬드 고등학교는 연이은 승리에 도취된 채 초심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농구만을 염두에 둔 채 카터와의 약속 이행을 등한시하며 학교생활이 태만해진다. 덩달아 카터의 선수들의 학업 분석 파일 요구 등으로 인해 학교 교사들도 불만을 토로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카터는 결단을 내린다. 즉, 선수들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경기 거부. 연승가도를 달리는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그의 행동에 선수들을 비롯하여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는 일제히 그를 비난하게 된다. 심지어 지역 대중매체에서도 이 문제를 이슈화시켜 그의 행동을 문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지역사회에서는 카터의 경기 거부에 대한 시민참여 재판이 예정되었다. 카터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억지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찾아와서 자신이 왜 농구팀의 코치 제안을 수락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게 된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선 방황하는 리치몬드 학생들에게 “농구”가 새로운 삶의 매개가 되길 바랬던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시민참여 재판에서도 농구 경기 거부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며 현재의 안주가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수들의 계약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했다. 하지만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는 그의 신념을 외면했다. 실망한 그는 팀 코치 역할을 사임하고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책상에 앉은 채 학업에 열중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카터의 진정성이 학생들의 마음과 행동에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티모는 자신을 받아준 카터에게 본인의 마음을 전한다.
이 선수들에게 여러분이 보내는 메시지를 고려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가 프로 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같은데 그건 그들이 법 위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자기들의 인생을 알리고 선택권을 주는 훈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15,16,17살 소년들에게 농구 계약서의 간단한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면 선수들이 사회에 나가서 법을 어기는데 얼마나 걸릴 거라 생각하십니까?
전 30년 전에 리치먼드에서 농구를 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팀 동료 중 일부는 감옥에 갔습니다. 그중 일부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특별한 그룹의 젊은이들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맡은 것이었고 이것이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영화 [코치 카터] 중 카터가 법정에서 배심원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에서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우리의 가장 무서원 공포는 무력함이 아니다.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우리의 가장 무서운 공포는 측정할 수 없는 우리의 강함이다.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most frightens us.
우리의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이다. 그게 우리를 두렵게 한다.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소심한 행동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다른 사람들이 네 주위에서 불안하지 않도록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움츠리는 것은 전혀 현명한 것이 아니다.
We we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우리는 모두 빛을 발하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가 그렇듯이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s in everyone.
우리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그렇다.
And as we let our own light shine,
우리 자신의 빛을 발하게 할 때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permission to do the same.
우리 자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때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우리의 존재는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영화 [코치 카터] 중 사촌의 죽음으로 삶을 되돌아보고 농구팀에 복귀한 티모가 떠나려는 카터에게 보내는 대사에서
교사로서 자신의 사명감이나 철학적 신념을 온전히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교육적으로 옳다고 여겨져도 주변의 상황에 따라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비단 교사만은 아닐 것이다. 삶을 살아갈 때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여건들로 인해 내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 카터는 본인이 리치몬드 고등학교의 농구팀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학창 시절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현재의 제자들은 본인들 세대에서 범했던 우를 하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어떤가? 기성세대라고 하기엔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들은 과연 다음 세대에게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기득권에 편승하려고 애만 쓰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편, 진심은 언젠가 통하는 법이라고 했나? 카터의 진정성 있는 발언을 법정에서 직접 본 선수들은 카터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은 체육관에서 카터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한다. 이 모습을 본 카터는 분명 뿌듯했을 것이다. 그리고 티모는 자신의 철없는 행동을 이해하고 팀에 받아준 카터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할 때나 사과의 마음을 표현할 때 주춤거린다. 상대방이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기는 대단한 상황에서 발휘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할 때나 발휘해야 하는 엄청한 능력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근데, 용기란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발휘해야만 그 빛이 더욱 발한다. 이 같은 차원에서 티모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뉘우치기 위해 불안감과 쑥스러움을 이겨낸 것이다. 그의 대사에서처럼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뿜어내는 빛이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의 사소로운 행동이 타인에게는 삶의 영감을 주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을 허투루 살아가면 안 된다. 우리는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에 남과 관계를 맺고 어울리며 삶을 영위하기에 더욱더 말과 행동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영화 [코치 카터]는 단순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농구 영화가 아니다. “실화”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의미한다면 그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녹아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전해지는 “실화”는 이야기로서 우리네 삶을 성찰하도록 영감을 준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가 즐기는 문화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