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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Jan 17. 2023

요즘 핫이슈! 뮤지컬 베토벤 후기

베토벤은 로맨티스트였을까.

소문만 무성했던 뮤지컬 <베토벤> 초연을 드디어 보고 왔다.

엄청난 감동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치 (먹는) 고수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킁킁거렸다가 한 번 먹고 나중에 계속 찾게 되는 느낌이랄까.

(스포라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기 전부터 호/불호가 너무 명확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당연히 불호겠지 생각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극호'였고, 평소 첫 공을 보고 이래저래 흠을 잡던 내가 달라졌다며 '왜 이렇게 착해졌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근데 정말 나는 너무 좋았다. 이건 '재밌었다'는 아니고, 정말 감정적으로 '좋았다'는 것.


사람들이 불만이라고 얘기하는 몇 가지 것들이 나는 조금 이해가 안 갔다. (관계자로 오해할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팩트를 중시하는 T의 입장에서 쓰는 후기일 뿐입니다.)


* 베토벤의 음악을 어떻게 이렇게 짜깁기를 해서 망쳐놓을 수 있나

이 평가에 대해 오히려 제작진이 너무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은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분명 지루한 타이밍이 온다. 그걸 익숙한 멜로디만 딱- 잘라서 뮤지컬 넘버를 만들었다. 창작극이기 때문에, 초연이기 때문에 이 선택은 더 탁월했다고 생각된다. 공연이 지루하다가도 '엇, 이 부분은 내가 아는 건데'하면서 아는 부분이 나오면 노래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흥행을 목적으로 했다면 대중적으로 똑똑하게 접근했다고 생각된다. 베토벤의 음악이 듣고 싶으면 클래식 연주 공연을 보러 가면 되는 거다. 왜 뮤지컬에서 클래식의 퀄리티를 찾는지 이해가 안 감.


킬링넘버가 없다는 것도 뭐라 하더라. <프랑켄슈타인>, <마타하리>는 킬링넘버가 있던가? 캐릭터 자체가 시원하게 감정을 터뜨리기보다는 억누르고 가는 설정이라 뭔가 터질만한 넘버가 나올 장면이 별로 없다. 그나마 여주가 행복 찾아가겠다는 부분 정도- 킬링넘버가 있다면 흥행이 더 잘 되겠지만 필수요소는 아니니까. 이건 관객이 화내기보다는 제작진이 아쉬워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 스토리가 기승전결이 없고, 갑자기 왜 장례식으로 끝나나

기승전결이 없지가 않은데. 안토니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하는데 둘이 주인공인 거 다 아는데 이 부분도 길면 억지스럽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도 엘리자벳과 요제프도 루돌프와 마리도 다 금사빠였다.), 불륜이니까 다시 헤어졌고, 성격이 괴팍해서 음악가 생활도 힘들었고, 귀가 점점 안 들려서 공연도 망치고, 그러다 결국 공연시간이 끝나가서 죽는 스토리. 너무나 기승전결이 명확한데 어디가 빈약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2막이 짧은 걸 생각하면 두 세 장면을 추가해서 엔딩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물론 있다. 잘생긴 동생 카스파의 비중이 너무 적다는 것과 고독한 음악가로서의 모습이 조금 더 있었다면 캐릭터가 좀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것 정도- 어쩌면 이 부분이 어떤 관객에겐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이나 영화를 보길 추천함.


* 티켓값이 비싼데 무대를 영상으로 때우는 거 아닌가

그동안의 EMK는 무대에 정말 진심이었다. <지킬 앤 하이드>가 연구실만 넣었다 뺐다 할 때도, <스위니 토드>에서 2층집만 주야장천 나올 때도 같은 티켓 값으로 화려한 무대와 의상에 엄청 힘을 줬었다. 그동안 이런 비교는 안 하던 사람들이 이번에 가격이 오르니 무대가 비었다며 욕을 엄청 하더라.


<웃는 남자>처럼 정말 동화 같은 무대가 아니라면 난 오히려 이런 깔끔한 무대가 좋다. 작년 <데스노트> 무대를 보고 '조금 지나치지만 영상으로 때우는 것도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스노트> 도 정말 남주 빼고 조연들 재능낭비라고 생각될 정도로 배우들이 아깝고, 텅 빈 무대였지만 티켓값 비싸다고 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피아노 천장에 달린 건 너무 불안해서 그 부분은 좀 조정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긴 하다. 피아노 떨어질까 봐 공연에 집중이 안 됐다. 가끔 화질이 안 좋은 듯한 영상이 조금 있었는데, 그런 거 제외하면 연주회장이나 안토니의 집, 다리 등 여기저기 세트가 등장해서 나쁘지 않았다. <웃는 남자> 세트가 정말 예쁘긴 하지만 무대 전환이 가끔 흐름을 깨뜨릴 때도 있고, <맨오브라만차>처럼 정말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베토벤>은 적절히 조화로웠던 것 같다. 앞으로도 드르륵 넣었다 빼는 무대는 줄어들길!


뮤지컬 티켓값은 전체적으로 평단가가 비싼 거고-


* 이런 불륜스토리 만들 거면 왜 베토벤을 차용했나

로맨스 뮤지컬 주인공 중에 출생의 비밀, 신분의 극복, 어두운 과거, 극복하지 못한 역경 이런 거 하나 없는 사람 있나? '베토벤'이란 사람은 연극, 영화, 다큐 어떤 걸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독특한 인생사를 지닌 사람이다. 역사적 인물의 업적으로만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스핀오프도 나오는 거고-


공연 소개에도 나와 있다. '한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삶의 가치를 느끼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인간의 성장에 초점을 둔 뮤지컬'이라고. 그냥 사랑 얘기라고 다 써 놨는데 자신들이 기대했던 베토벤이 아니라고 화를 내고 있는 게 참 이상한 일이다.


<모차르트!>를 기대했다고 하기엔 너무 제목도 <베토벤 시크릿>이고, 줄거리 소개에도 사랑사랑하고, 여주인공도 옥주현, 조정은, 윤공주인데 말이다. 옥주현이 콘스탄체처럼 나오지는 않을 테니-



*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분이 좋아서 '극호'라고 했나

- 짧고, 빨라서 좋았다.

이것저것 안 넣어도 되는 장면 넣어서 러닝타임 길게 가는 것보다 짧고 굵어서 좋았다. 다만 욕조씬은 욕조를 빼던지, 자코포 씨가 편히 들어갈 수 있게 조금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카스파 보다 변호사가 비중이 높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과감히 빼도 좋을 듯.

송스루이기도 하고 빠른 음정에 가사를 욱여넣어 너무 많은 텍스트가 쏟아지긴 하지만 드라마도 영화도 넘겨보는 나로서는 빠른 전개를 선호한다. <모차르트!>의 아빠 솔로장면 같은 건 오히려 졸려하는 나이기에;;


- 음악의 익숙함이 좋았다.

클알못이라 베토벤의 훌륭한 음악들을 잘 모르지만 적당히 아는 부분이 나와서 낯설지 않았다. 창작곡과 원곡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후기들을 보니 거의 90%는 원곡에 가사를 입힌 듯. 하지만 나는 그걸 못 알아들으니 크게 연연하지 않을 뿐이다. 리프레이즈가 많다고 하나 1막에 몇 번이었던 것 같고, 장범준 노래처럼 이 노래가 저 노래인 듯 비슷한 건 인정!


그리고 듣다 보면 베토벤의 심리에 따라 음악이 달라짐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냥 이것저것 갖다 썼다기 보다는 감정에 따라 음악을 선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륜이지만 애절해서 좋았다. 

예술가의 사랑에서 금지된 사랑은 흔한 거 아닌가. 불륜이 싫다면 연애하다 결혼으로 골인하는 작품을 선택하면 된다. <닥터 지바고>, <베르테르>도 불륜이다. <베토벤> 속 두 사람은 뒤늦게 사랑을 알게 된 남자와 여자일 뿐이다. 두 사람의 감정선이 좋았고, 헤어짐이 안타까웠고, 시누이가 짜증 났고(제발 시누이 팔 좀 묶어 줬으면), 남편이 그러니 바람이 날만 했다는 것도 이해됐다.

매정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지만 누가 죽는 장면에서는 무조건 눈물이 나는데, <베토벤> 은 죽지도 않았는데 처음 편지를 건네는 장면과 카스파에게 미안한다고 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실제로도 이렇게 절절히 사랑했다면 베토벤은 로맨티스트였겠지.


- 참신한 연출이 좋았다.

춤추는 혼령들. 와- 진짜 초 감동이었다. 처음 등장할 때 음표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첫 장면에 여섯 명은 너무 많지 않나, 좀 어수선한데'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이들의 움직임이 너무 멋있었다. 의상에 새겨진 악보가 보여주 듯 혼령들이 춤을 출 때마다 악보가 흔들리며 정말 음악 속 음표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팬텀>의 발레리나나 <엘리자벳>의 죽음의 천사들처럼 이런 요소를 잘 활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첫 장면은 마음에 안 들었음. <모차르트!>를 따라 하는 느낌이랄까. 첫 장면이 없어도 아니면 그 장면이 뒤에 붙어도 아무 영향이 없을 것 같다.


무대에서 계속 열일하는 피아노도 괜찮았고. 베토벤의 희로애락 속에 피아노가 항상 있는 느낌이랄까.


뚜껑 열린 OP석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극의 재미를 더해 준 것 같다. 베토벤이 지휘하는 장면을 진짜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출한 것도 신선했다. 공연 간간히 이런 포인트들이 조금 있음.


최고 좋았던 건 1막 엔딩! '멋지다'라는 표현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함.


- 그 무엇보다 배우가 좋았다.

믿고 보는 옥언니인데 이번에는 조금 실망, 아직 <엘리자벳>을 못 벗어난 느낌이었다. 첫 등장은 디즈니 공주처럼 너무 예뻤고 역시나 노래도 너무 잘 하지만 안토니는 너무 씩씩하기보다는 소프트한 성격이어야 할 것 같았다.


반면 은토벤은 반전 매력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그 자체여서 너무 멋있었고, <웃는 남자>는 너무 힘을 빼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 장면에서는 이렇게 하겠지'했던 추측이 무색하게 걸음걸이, 목소리톤, 애드리브 등이 내 기대와 다르게 표현돼서 놀라는 재미가 있었다. 노래야 뭐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고.


아직 못 본 박효신, 카이 모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다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다시 볼 수 있다면 박효신-조정은, 카이-윤공주로 봐야지.


결론적으로 나한테 이 공연이 좋았던 건 크게 거슬리는 게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1) 욕조 2) 시누이의 팔 춤 3) 가끔 너무 빨라서 잘 안 들린 앙상블의 노래(이건 공연장 음향 문제도 있는 듯) 4) 괜히 자주 나오는 변호사 5) 잘생긴 동생이 조금 나오는 것만 빼면 크게 싫은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번 발 잘못 들이면 못 빠져나올 공연이 될 것 같다.

결론은 極好


tip.

- 나는 남주팬이 아니라서 크게 상관은 없지만 좋아하는 남주가 있다면 OP석 또는 중앙자리 추천함. 커튼콜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 로비 포토월에 진짜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공연 끝나고 누가 쳤는데 엄청 멋있었음. 건반 좀 두드리는 분이라면 멋진 실력도 뽐내고, 많은 분들의 영상에 담길 수 있음



뮤지컬 <베토벤> 시츠프로브 하이라이트 (음질은 별로 좋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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