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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Aug 09. 2015

“나 연대 나온 남자야~”

쓸모없는 작업의 정석 

(대문 사진 출처 :adkfarmerdan/Flickr CC BY-NC-SA)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홍대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저녁을 먹고 다음 코스를 고민하다 가끔 찾았던 와인바로 향했다. 


선선한 저녁 바람도 불어와 우리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안 쪽 자리에는 조금 취한 듯한 남자 두 명이 가게 안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지만 우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그들은 일행이 한 명 더 오자 사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인석 자리에 옆 테이블을 끌어당기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곧 조용해지겠지 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제가 연세대를 나왔는데요.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분은 50살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러더니 본인이 너무 아끼는 괜찮은 후배가 내 친구를 마음에  들어한다며 소개시켜 주겠다는 게 아닌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10년 넘게 만나는 동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꽃다운 20대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린 어떤 식의 좋은 호의도 그냥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후배가 마음에  들어한다는 친구는 우리 중 유일한 애기 엄마였다.


일이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우리는 “이 친구 애기 엄마예요.” 하며, 그만 물러가시라는 뜻을 돌려 전했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이 잘못됐던 걸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애기 아빠예요.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그 와중에 연대 나오신 어르신은 애기 아빠라는 후배를 친구 옆으로 앉히면서 연대 박사 출신이라고 소개했고, 뒤에 있던 다른 한 분은 예전 00 공사 사장이었다며 지금은 교수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후 후배의 발언은 선배님 못지 않은 무개념을 발휘하며 우리를 더욱 귀찮게 했다. 

남 : 혹시 근처 학교 나오셨어요? 연대나, 이대나, 홍대나.
우리 : 아니요. 저희 그냥 놀러 왔어요. 
남 : 골프 칠 줄 아세요?
우리 : 저희 촌스러워서 골프 같은 거 못 쳐요. 
남: 그쵸. 요즘 누가 촌스럽게 골프 치나요. 제가 양주 한 병 사고 싶은데요.
...

결국 사장님이 등장해 손님을 혼내는 상황이 벌어졌고, 5분만 앉아 있겠다던 후배는 대기업 부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는 자신감까지 선 보이며 우리 테이블을 떠났다. 그러고도 아쉬웠는지 가게를 나갈 때까지 꼭 연락하시라는 말을 몇 번이고 남겼다. 


그들이 떠난 뒤 우린 이런 결론을 내렸다. 


1.    연대라고 하면서 이러고 많이 다니신 분들인가 보다.

2.    어르신 두 분이 후배에게 우리를 꼬셔 오라고 시킨 것 같다.

3.    그 후배는 애기 아빠가 아니지만, 우리가 애기 엄마라고 하자 민망해서 자기도 애기 아빠라고 했을 거다.             (이건 2번의 경우라 하고, 우리가 그를 안타까워해 나온 결론이다.)

4.    그 선배에 그 후배다. 


처음부터 그들을 마음에 안  들어했던 사장님은 너무 미안하다며 연거푸 우리에게 대신 사과를 했다. 


소위 명문대라는 학벌의 사람들이 학교를 이용해 얼마나 무례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니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살면서 한번도 학벌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게 된 걸까. 학벌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자부심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의 평범한 남편들이 하는 일반적인 외도의 시작일까. 


그들이 내세운 매력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다.


1. 연세대

2. 박사

3. 대기업

4. 양주

5. 골프


우리에게 던진 첫 작업 멘트는 “연세대 나왔다”였고, 이어지는 질문도 “연대, 이대, 홍대 나왔냐”였다. “그쪽이 마음에 드는데 술 한 잔 같이 하겠냐”가 아니라 출신 대학부터 내밀다니. 자신을 뽐내려는 매력 포인트로 학벌이나 내세우는 남자가 어찌 매력적일 수 있을까.


그들이 명문대라는 타이틀이라면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을 하고 사람들일 수도 있고, 간통죄도 없어진 마당에 이런 게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명함을 놓고 갈 정도의 뻔뻔함을 장착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친구는 남편한테 자랑한다며 명함을 챙겨 돌아갔고, ‘너는 왜 명함을 받지 못했니’라는 내 남편의 질문에 나는 뒤통수가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내 남편도 밖에서 이러고 다니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친구에게 결혼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생겼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지 남자라는 성별 때문이기 보다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문제겠지만 말이다.  


남자들이여, 당신이 미혼이든 기혼이든 작업 걸 때 대학이나 회사를 내세우지 말라. 그건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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