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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한 Oct 24. 2023

운 좋게 찾은 나만의 '여행의 이유'

ft.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 강화 나들길 11번 코스

오랜만에 나름 긴 여행을 왔다.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옛 기억들을 소록소록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와중에 여행에 따라오는 것이 있다. '글쓰기'와 '독서'다. 나는 여행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꼭 두 가지는 챙기는 편이다.


이번에 같이 동행을 한 책은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이다. 여행의 이유가 출판된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출판 당시에는 읽지 않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이 책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한 번은 3명이나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 술자리를 제안한 나는 아쉽게도 소외가 되었지만, 그날 저녁의 안주는 '여행의 이유'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을 하며, 4년이 지난 지금 강화도 여행에 동행했다.



빠르게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부터 2번째 챕터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2번째 챕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여행을 좋아하는 인물)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간극)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이 문구가 6시간가량 걸었던 둘레길(이하 강화 나들길) 끝에 먹었던 맥주 원샷만큼이나 강렬했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깊은 동질감을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나도 저 상상 속의 인물처럼 여행을 통해서 안정감을 찾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감을 찾는다는 것은 반대로 불안감이 있다는 뜻이 된다. 제법 자주 여행을 가는 편인 나는 그만큼 더 큰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 챕터를 읽었던 당시에는 답은 찾지 못했다.



4일 차에 강화 나들길을 걸으며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자그마치 16km 정도 되는 코스이기에, 그냥 걷기에는 너무 힘이 들 것 같았다. 육체의 힘듦을 정신으로 극복해보고자 했다. 


'나는 불안해서 여행을 다니는가?'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리무중이었다. 마치 강화 나들길 11코스처럼 말이다. 중간중간 코스 부분들이 소실되어 있었다. 또, 풀이 너무 우거져 빙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전에 제법 큰 뱀의 사체를 봐서 그런지, 수풀에서 소리가 들릴 때면 나의 거대한 몸이 거기에 반응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8km... 약 절반 정도를 걸었다. 자문자답하는 생각 속의 나는 온데간데 없어졌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채움을 하는 걸까?'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비움을 하는 걸까?'

...

'둘 다 아닌 어떤 중립의 상태로 찾아드는구나.'

'둘 다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는구나'


'이 중립의 상태가 나에게는 가장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사회에 있다 보면 어떤 방식이던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는 행위가 계속된다. 그런데 그 갈구가 너무 커지게 되면, 우리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또 다른 불안이 야기가 된다. 나 또한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트레스에서 도망가고 싶었고, 스스로를 항상 보살펴주고 싶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함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대신에 무언가 채워지지도, 스트레스가 비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불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걷기라는 보통의 행위가 특별해졌다. 그 순간만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며칠 전 빠니보틀님의 유튜브에서 한 스님이 나왔다. 빠니보틀님이 장난스럽게(개인적으로는 진심 같았다.) 너무 불안해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이 빠니보틀님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그러자 이렇게 물었다.


스님: 맞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빠니보틀: 아팠죠


스님: 불안했나요?

빠니보틀: 아니요


스님: 그렇죠. 



불교에서는 불안함을 번뇌라고 부른다. 그리고 스님들은 이런 번뇌가 한 번씩 찾아오면 부처님을 찾아가, 몸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절을 매우 많이 하거나, 면벽수행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강화 나들길을 걸었던 행위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자연스러운 우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것이 쉽지 않아 힘이 들었던 타이밍이었고, 그 순간 운이 좋게 아주 저렴한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순간 무이성적으로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그런데 16km라는 거리를 얕보았고, 너무나 고달픔 걸음의 시간을 우연하게 만났다. 또 다른 우연함이 있다면 이번 여행에 '여행의 이유'를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지며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운이 다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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