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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an 05. 2022

[서평단 리뷰] 엄마를 미워하면 나쁜 딸일까?

feat.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서평단 신청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기회로 비평 훈련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런데 역시 내돈내산이 아니라 그런지 막 심도있게 읽히지는 않네.


상담전문가가 쓴 책들은 정해진 구성이 있는 편이다. 앞에는 다양한 사례를 열거하고 뒤 쪽에는 어떻게 해야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처방을 내린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책의 앞부분의 50% 정도는 다양한 사례를 열거하고 뒤쪽에는 '나쁜 딸이 되는 연습'에 대해서 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늘었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스스로 묻도록 한다. 


억압?받아 온 딸이 자신을 억압해온 알(부모)을 깨고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알을 깨주는 책과 콘텐츠가 언제부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아마도 2016년에 출간한 '82년생 김지영'이 아닐까 하는데 그 이후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프레임(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아를 형성하지 않고 타인에 의해 형성된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에 갇혀 행동했던 여성들이 '나 다시 나로 돌아갈래!'를 시전하며 각성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이게 문제였구나'하는 깨달음. 두 가지가 맞물려 억압?받아 온 여성의 삶은 행동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그게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나 역시 부모와의 관계가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는데 독립 후 떨어져 살면서 동등(동등한 가족으로 생활해온 사람들에겐 와닿지 않겠지만 보수적인 집안에서는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에)한 어른으로 자립할 수 있었다고 본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에 내 생각이 있지만 부모 앞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조금씩 할 수 있었고 오히려 부모님에게 무관심할 때 부모님이 연락을 먼저? 해온다는 의외?의 발견도 하게 되었다. 


궁금하다. 책에도 적혀 있듯이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 건 알겠다. 그리고 오은영박사가 이야기하듯 자식들도 그걸 안다고.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서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른이 된 상황에서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른이 된 이상 부모와 형성된 관계 설정에서의 위치를 인정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 안의 어린이를 다독여주는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계속 사랑받기를 원하며 인정을 갈구한다. 부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희한한 건 편한 자식과 불편한 자식이 나뉘어져 있고 부모는 왜인지 모르지만 불편한 자식에게 더 손을 많이 내어준다. 책에도 나오지만 기대는 건 편한 자식에게, 내어주는 건 불편한 자식에게다. 


난 이것을 내 나름대로 정의했는데 이것 또한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방식같다. 내가 사랑받고 싶어하는 자식이 따로 있는데 무관심할 수록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심리. 부모에게 잘해왔던 자식은 부모가 관심을 갖던 말던 계속 잘할 것이기 때문에 이미 채워진 양동이 대신 구멍난 양동이에 물을 붓는 심리라고나 할까.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 또한 사람이고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에 따라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나타난다고 하니까 내 나름대로 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한 가설을 세워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에게 애정을 안 준 것은 아니고 보수적인 집 어디에나 나타나는 불평등의 분위기가 있었다고만 해두자. 


이 책은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이 쏘아올린 커다란 공을 심리상담 전문가가 책으로 정리해놓은 것과 같은 책이다. 아직도 부모에게서 정서 독립하지 못한 여성에게, 가족과의 관계 설정에서 힘든 여성에게, 엄마와 같이 있으면 자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여성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엄마와의 대화'라는 웹툰 에세이를 그리고 쓰면서 엄마와의 관계 설정에 유머라는 코드를 삽입해 현재는 엄마와 아주 잘 지내는 중이므로 책에서 큰 영감을 받은 것은 없다. 나는 '밥을 먹을 때나, 영화를 보고 나서나, 여행을 할 때나' 같이 하는 사람과 같이 하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 나와 딱 잘 맞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묵언수행하는 것처럼 여행을 갔다와서 또 여행 가자고 하는 그녀를 보면 '대체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다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여튼, 전에 인퓨처 컨설팅 유정식 대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딱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잘 지내고 싶다면 책에 쓰여진 대로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 때 나를 가두고 있는 알을 깨고 정서적으로 독립하여 날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뭐 거리를 두거나 절연(요즘은 꽤 권하기도)도 하나의 방법이다. 


책의 내용에서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나쁜 딸 되기 연습'이라는 실전 코너가 있는데 착한 딸을 뒤집어 표현한 것이라고는 하나 '나쁜'이라는 단어가 계속 걸린다. '나쁜 아들'은 없는데 왜 꼭 '나쁜 딸'이 되어야 하나. 현명하고 성숙한, 슬기로운이라는 단어를 괄호 안에 넣어 설명했으면 어떨까 하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작아지지 않고 대등한 자아로 양립하는 것이 '나쁜'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것이 좀 아쉬웠다. 여성들이 관계 속에서 상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 나를 가두지 않는 것, 그것은 성숙한 것이며 슬기로운 액션이며 현명해지기 위한 발걸음이다. 그러니 이 책의 다양한 사례 속의 주인공이라면 '나쁜 딸이 되지 말고, 성숙한 자식이 되자!'


그나저나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가족에서의 대우?는 달라졌겠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은 아마도......

이하 생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 서평단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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