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처음부터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나가는 시장 상인 이정은을 중심으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지게 풀어낸 드라마가 우리들의 블루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딸과 아들을 둔 두 동창의 이야기에서 재미가 정점을 찍은 후 점점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우선 김우빈과 한지민의 로맨스가 나는 별로 재미가 없고, 이병헌과 신민아의 스토리는 공감이 잘 안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병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신민아의 우울증에 대해 공감하고 이입하기보다는 이병헌의 샤우팅이 더 속시원했기 때문이다. 모든 드라마가 현실 고증이 잘 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우울증이 애는 방치해도 꾸미는 거엔 저렇게 부지런하기도 하나? 이런 1차원적인 궁금증만 자아낼 뿐, 드라마에 몰입이 잘 안되었다.
드라마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이정은과 엄정화의 이야기에서였다. 베스트 프랜드라고 하지만 각자의 삶이 있고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를 경우 아무리 서로를 잘 안다고 해도 부딪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엄정화가 이정은의 일기장을 본 것은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했던 것 같은데 책장에 꽂혀있는 일기장을 '친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분명 있을테지만) 본다는 설정은 나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엄정화는 이정은을 베스트 프랜드라고 생각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존중한다는 느낌이 잘 없다. 그래서 나중에 이정은이 엄정화의 직장에 찾아가서 마사지를 받으면서 울고불며 화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글쎄- 나의 이해의 폭이 아직 좁아서 그런지 억지로 짜맞춘 스토리 전개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두심과 김혜자는 왜 엄정화의 편을 드는 걸까? 불쌍하면 모든 걸 맞춰줘야 하나? 유난히 어른들은 '불쌍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강한 것 같다. 불쌍한 것은 약한 것과는 다르다.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으로 실제 약한 것과는 달리 약해 보이도록, 사람들이 나를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심리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심 이정은이 엄정화에게 찾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또 그러면 드라마가 되나? 찾아가서 화해를 해야 휴머니티를 원하는 세상에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하는 휴머니즘적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킬테니 말이다. 자기 가족은 만만하지 않으니, 너라도 만만해야지 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엄정화의 말이 '나한테는 너가 가족이야. 새끼야.'라고 말하는 게 아닌, 만만한 친구도 해주고 가족도 되어주라.라는 이기적인 변명처럼 느껴져 더욱 별로였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갈수록 재미없는데 반해 나의 해방일지는 갈수록 재미있어지고 있다. 친구는 구씨에게 빠져들었지만 나는 모든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만 빼고. 사실 14화를 보기 전에 친구한테 굉장한 반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게 뭔가 궁금해 하면서 드라마를 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이웃 블로거 중 누가 제목에 대문짝만하게 적어놔서 드라마를 보기 전 반전을 미리 알아 버렸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내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모두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즉 잘하지 못하고 뭐뭐만 하면, 뭐뭐만 하면, 이런 식으로 다짐을 미뤄간다. 미정이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어머니의 작은 한숨,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그렇게 빨리 가버렸을까? 자식들보다 가장 큰 잘못은 아빠다. 엄마가 죽고 창희는 그렇게 원하는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된다. 진작에 차를 샀더라면 엄마와 같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었을텐데.
나의 해방일지 속 캐릭터들은 솔직하다. 첫째 기정이도, 둘째 창희도, 셋째 미정이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못하는 건 못하는대로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대로 해나간다. 기정이가 애같고 너무 TMI(대표한테)라 저런 캐릭터가 실제로 있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매력에 이기우와 잘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창희는 오지랖 대마왕으로 구씨의 롤스로이스 차를 영접?했을 때 포텐이 터졌는데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작은 소망 하나씩을 갖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은 소망 하나로 현실의 척박함을 견디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 창희는 구씨로 인해 그 소망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롤스로이스 약빨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점을 (작가가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직장 동료의 대사에 녹여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건 뭘까? 롤스로이스 차가 긁힌 것을 구씨에게 말한 날 구씨와 창희는 있는 힘껏 달리기 시합을 했다. 도망가는 창희와 쫓아오는 구씨. 둘은 그렇게 죽을 듯이 달려서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죽을 듯이 달리면 정말 내가 왜 이렇게 달리고 있나. 묘수가 떠오를려나?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려나? 달리기로 인해 둘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하다. 미정이는 능력없는 팀장에게 갈굼을 당하지만 묵묵히 참아낸다. 엄마가 죽고 나서 기정이와 현아와의 통화에서 현아가 이런 말을 한다. '미정이는 [우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아이니까]' 와...나 이 말이 너무 뇌리에 박히더라. 우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나의 해방일지 속 캐릭터들은 내가 너 잘 알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해. 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걔를 잘 알지. 하면서 걔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 한 사람을 존중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구씨 집에 나뒹구는 소주병을 창희가 치워준다고 허락없이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 미정이는 구씨가 해달라고 했냐고 묻는다. 원하지 않는 친절은 친절이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침범이자 무례함이라고.
미정이도 자기만의 선이 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참는 자기만의 선.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참는 선. 그런데 최팀장과 내연녀가 선을 넘었다. 선을 넘었을 때는 참지 않는 것이 화병을 막고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비책이다. 그래서 미정이는 조용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이 다 듣도록 화살을 날린다. 현아는 미정이가 [우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아이]라고 했지만 미정이는 생각보다 강해 보인다. 그래서 구씨에게 추앙받을 수 있으며 구씨를 추앙할 줄도 안다. 그리고 구씨를 떨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엄마가 빨리 돌아가셔서 아쉽다. (솔직히 해방이 아니라는 입장에 더 가깝다). 작가가 보여주는 개개인의 삶(참, 이기우 첫째 누나랑 둘째 누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데 염가네 이야기하다 놓쳐버렸네)이 솔직하고 공감가고 신선해서 재미있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느끼는 의미가 다양해서 더 좋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삶은 계속된다. 엄마가 원하는 자식들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자식들은 독립(왜 진작 안 했죠?)을 했고 각자가 원하는 무언가(어떤 해방)를 이루기 위해 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