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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an 29. 2018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9) 아픔(생존 보고서)

에피소드(1) 나홀로 병치레


액땜한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2018년 무술년의 새해를 맞이한지 일주일이 지난 8일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점심에 먹은 새우까스와 야채샐러드를 좀 급하게 먹은 것 같더라니 '체함'을 나름의 병명으로 설정하고 나서 오늘의 운동은 건너뛰기로 했다. 이렇게 몸이 안 좋은 날은 운동을 안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인지, 아니면 운동을 하기 싫음을 합리화 시키는 건지 늘 아리송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걸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부모님에 대한 반발로 난 힘들 땐 쉬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운동은 건너뛰고 사우나만 했다. 뜨뜻한 물에 들어가 있을 때는 좋았는데 나와서 샤워를 할 때 즈음엔 머리의 두통이 더 심해지더니 집에가는 버스에서는 집에 가서 빨리 눕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2018년 첫 아픔이 나에게 찾아왔다. 


나는 잘 아프지 않는 체질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라 그런지 엔간해서는 잘 아프지 않는다. 그럼에도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잘 가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반대급부로 조금만 아파도 병원은 꼬박꼬박 잘 가는데 이번엔 약만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사우나를 하기 전 약을 사 먹었다. 새끼 손톱만한 알약 3개와 새끼 손톱 반만한 알약 20개쯤 그리고 화한 느낌의 맛이 나는 쌍화탕 비스무리한 액체약까지! 한 입에 털어놓고 용감무쌍하게 사우나를 한 게 잘못이었을까. 집에 무사히 도착한 나는 옷만 겨우 갈아입고 전기장판의 온도를 1(어찌된 전기장판이 온도 설정이 7까지 되어있는데 1로만 설정해도 후끈함에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꺼버린다)로 맞췄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으니까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니 팔과 다리를 꼼짝 못하겠는 것이 커다란 누에고치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2시간쯤 잤더니 증세가 더 악화됐다. 울렁거림의 정도가 심해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비위가 약한 사람은 건너뛰길 바랍니다) 그냥 메슥거리기만 하는 거 아냐? 토를 하면 좀 나아지려나? 몸도 아파 죽겠는데 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조차 메슥거림으로 채워질 때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가 먹은 걸 생각하면 3번으로도 끝나지 않을 걸 알았어야 했는데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위느님아, 제발 토해달라고 애원했다. 토를 하고나면 속이 편해졌다. 그렇게 끙끙대면서 눈을 좀 붙이고 나면 또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 과정을 6번 반복했다. 새벽은 생각보다 길었고 방은 따뜻한데 살갗에는 온갖 차가운 공기만 달라붙는 듯 으슬으슬했다. 더워서 나는 땀인지 아파서 나는 땀인지 알 수 없는 축축함도 지속됐다. 그렇게 메롱한 상태로 꼬박 하루를 더 보냈고 1박 2일 후 아픔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꽤 건강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떤 아픔이 와도 잘 견딜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립한 후 첫 병(이것도 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치레여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혼자 아팠던 게 처음이었다. 혼자 아프니까 등을 두드려서 좀 더 잘? 토하고 싶은데 등에 손이 안 닿아서 책을 사용한 점도 그렇고, 혼자일 때는 아프면 죽을 스스로 끓여먹어야 하는구나라는 점(아파 죽겠는데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아파 죽기 전에 아사할 것 같아서 <= 배고픔이 느껴질 정도면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임)도 그렇고, 위로받고 싶으면 손꾸락이라도 움직여서 카톡으로 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결국 나를 챙기는 건 나여야하는데 몸이 아프니까 느껴지는 쓸쓸함이 있더라. 그게 혼자해버릇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을 거고, 처음 느끼는 혼자결핍감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아무래도 혼자 토하려고 입에 손가락을 넣으면서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리는 그림보다는 누군가가 등을 두드려주는 그림이 덜 처량하니까 이래서 다들 결혼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죄송)


첫째날은 너무 아파서 카톡이나 뭐나 확인할 겨를이 없었는데 카톡으로라도 신경 써주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나마 덜 쓸쓸했다. 가족들이랑 같이 살 때는 이렇게까지 다운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유독 심하게 아파서 그런지 몸이 아프니까 세상이 달라보였다. 어떤 것도 즐겁지 않았고, 체해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최애 프로그램인 맛있는 녀석들만 봐도 속이 메슥거렸다. 삼겹살 집을 지나갈 땐 코를 막아야했다. 새삼 내가 몸의 상태에 굉장히 영향을 잘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몸과 정신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지만 이번에 느낀 나의 정신은 몸의 껍질같은 얇디얇은 힘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몸에 영향을 많이 받는 멘탈이라니. 실망하기도 했지만(뭔가 나의 이상향은 몸이 아파도 유머를 날릴 수 있는 멘탈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극강의 멘탈인지 체험해보고 아는 나는 아직 어려도 한참 어린 듯하다) 몸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겐 몸 관리가 곧 멘탈 관리라는 깨달음을 주었으니 이번의 아픔에선 그거 하나 건진 듯하다. 아. 친구들과 가족들의 고마움도.


에피소드(2) 아프니까 쓸쓸하다.


번데기처럼 누워있는 그 순간 갑자기 '아픈 건 쓸쓸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엔 그냥 쓸쓸한 느낌이 들어 쓸쓸한 거라 생각했는데 몸이 좀 나아지고 나니 내가 느낀 건 '공허함과 상실감'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블로그를 한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데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하루, 이틀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알리는 각종 SNS(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와 플랫폼(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으니 못하니 오히려 글을 올리지 않음으로써 얻는 해방감이 있었다. 그러자 해방감은 곧 공허함이 되었다. 자유로운데 뭔가 의미없는 일을 계속 해왔던 것 같은 각성이 일었다. 아프니까 내가 아프지 않았을 때 했던 일들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되더라. 불필요한 일들을 조금 더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 포스팅을 조금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블로그 시작한 이후로 처음했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생존 본능이 살아있다면, 아플 때 자가 생존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 외에는 일체의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번데기가 되기 전 그나마 정신과 손가락이 살아 있을 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상황을 알렸다. 그들은 걱정해주었고 난 모바일 세상의 따뜻한 단어들을 모아 자가 생존 시스템의 에너지로 사용했다. 그렇게 1박 2일 아픔 코스를 거쳐 회복의 단계로 들어섰다. 멀쩡할 때는 쓸쓸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는데 일상을 채우던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니 그 공백에 쓸쓸함이 밀려왔다. 유튜브를 봐도, 팟캐스트를 들어도, 미드를 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면 쓸쓸했었나?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으로 그 공백을 메꿔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왔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상실했기 때문에 쓸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문득 쓸쓸함을 가리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아파서 쓸쓸함이 온 게 아니라 아프니까 자가 생존 시스템에 의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밑바닥에 있던 나의 감정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나는 나의 감정에 무딘 사람이라 내가 쓸쓸한 건지 어쩐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지만(쓸쓸해서 그렇게 동네 냥이한테 말 걸고, 비둘기랑 까치한테 말 걸고, 탄천 오리한테 말 걸고, 자기 전에 코천이(부모님 집에 있는 반려견) 사진을 보았을까) 그래도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독립하고 처음이니 이 감정을 조금은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자가 생존 시스템이 나에게 보내는 빨간불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너는 모르지만, 지금 니 감정 상태가 그래. 그러니까 조금 더 쓸쓸함에 대해서 진지해지라고'


* 나의 아픔을 달래주었던 BGM은 크루셜스타의 '혼자 이 밤을' https://www.youtube.com/watch?v=Zd9FJcVF6rA 

* 후에 가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아팠던 건 '노로 바이러스(feat. 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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