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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28.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8) 간식(의 추억)

에피소드(1) 구토유발음료

에피소드(1) 구토유발음료

엄마는 몰랐다. 그 음료가 딸 셋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소풍날 싸가지고 갈 음료와 과자를 스스로 고를 수 있게된 날, 간식의 주도권을 쥔 것보다 정신적/신체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더 컸다. 우리 세대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딸의 의견을 물어보기보다는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 위주로 소풍 가방을 싸줬다. 과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음료는 또렷이 기억한다. 롯데의 쌕쌕. 오렌지 알갱이가 살아있는 음료. 그래서 톡톡 터지는 맛이 과즙을 씹는 것과 똑같은 맛과 향을 선물한다고 광고했던 음료. 엄마가 그 음료를 직접 마시는 광경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 음료를 좋아했단다.(성인이 된 딸들이 엄마와 함께 옛날의 추억을 곱씹다 알게 된 사실이다) 엄마가 좋아하니 딸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고 엄마는 소풍날 매번 딸 셋에게 그 음료를 싸줬다. 우리는 왜 한 번도 그 음료의 영향력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할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 그 음료 토나와!'


그렇다. 그 음료는 우리에게 단지 구토유발음료일 뿐이었다. 소풍은 늘 버스를 타고 갔다. 그래서 그 시대의 초딩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1시간 전에 '이지롱'(메가울트라특급 기억력을 자랑하는 언니에게 그 시대의 마시는 멀미약 이름을 물어봤다)을 마셔야했는데 미스터리한 것은 멀미약이 제일 멀미나는 맛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멀미약을 안 마시는 것이 멀미를 안 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딸들은 버스를 타서 검은 봉다리에 멀미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멀미약의 효능을 의심않고 마셔야했다. 그래서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멀미할 맛이 나는 멀미약을 1차로 마시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2차로 알갱이가 살아있어 목넘김이 껄끄러운 쌕쌕을 마셔 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소풍가는 날은 늘 설레는 기분과 메슥거리는 속이 함께했다. 초딩 고학력이 되었을 때 키미테라는 혁신적인 붙이는 멀미패치가 나왔지만 난 한 번도 붙여본 적이 없다. 이지롱 내복액보다 비싸서 그랬을 거라 추측해본다. 


지금은 아주 다양한 맛과 용법의 멀미약이 나왔지만 그 시대는 이지롱 내복액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선택권이 없었다. 마시거나, 토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냥 토하는 결과만 남았다. 그게 이지롱 때문인지, 쌕쌕 때문인지 두 가지의 크로스파워 때문인지 알 길은 없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리 없는 제품은 공통 추억을 가지고 있는 딸 셋에게 좋은 대화거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셋 다 쌕쌕을 싫어했고, 멀미약은 멀미가 나는 맛이라 생각했으며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의견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 때 엄마한테 쌕쌕 맛 없다고, 그거 마시면 토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면, 엄마가 좋아하는 음료라는 것을 더욱 일찍 알았을까? 엄마는 물어보기 전까지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뭔지 먼저 이야기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아빠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는 자식들에게 해줄줄만 알았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장소 등 본인의 것을 공유하는 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시대의 영향이 크겠지만)다. 마찬가지로 엄마는 나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지만 나만이라도 일방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엄마의 일방성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아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엄마, 나 그 음료 싫어해요. 그리고 그 음료 마시면 토할 것 같아!

그런데 엄마, 엄마 쌕쌕 진짜 좋아해?"


에피소드(2) 간식의 추억? 가족의 추억!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이 하나 정도는 있더라.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가족끼리 게임을 해서 사먹었던 것이 아이스크림이다. 식구가 많았기 때문에 투게더(떠먹는 바닐라 통 아이스크림) 한 통은 기본으로 깔아주고, 그 다음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골랐다. 아빠는 팥으로 만들어진 비비빅(이름이 기억 안나 팥 아이스크림으로 검색해서 찾음)을 좋아했고, 엄마는 스크류바(빙빙 꼬였네~ 라는 로고송과 그림CF로 유명)를 좋아했다. 나는 그 때 그 때 달랐지만 반으로 쪼개먹기 좋은 더위사냥(이것도 기억이 안나 커피맛 아이스크림으로 검색 ㅋㅋㅋ)이나 누가바를 골랐다. 언니랑 여동생은 무엇을 골랐는지 기억에 없다. 그렇게 각자 선호도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10개 정도 냉동실에 쟁여 놓으면 늦은밤 가족들이 모여 앉아 TV를 보며 하나씩 꺼내먹기 좋았다. 아이스크림은 게임의 상품이 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모이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으며, 부모님이 좋아하는 걸 사드리는 기쁨이 되기도 했다. 


남동생이 초딩 고학년이 되었을 즈음, 베스킨 라빈스 31이 나왔다. 냉동실은 자연스럽게 베스킨 라빈스의 쿼터(4가지 맛) 사이즈나 패밀리(5가지 맛) 사이즈로 채워졌다. 나머지 가족의 입맛은 베스킨 라빈스로 옮겨왔으나 아빠한테는 여전히 비비빅을 사드렸다. 가끔씩 같이 베스킨 라빈스를 먹었지만 아빠 입맛에 베스킨 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거나, 너무 시었다. 베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은 무려 31가지나 된다. 이름도 가지각색에다 다 영어이름이라 부모님이 입맛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외우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엄마는 레인보우 샤베트를 주문할 때면 과일맛 신 거 라는 뉘앙스로 우리에게 요청을 했고, 아빠와는 함께 먹기 좋은 무난한 자모카 아몬드훠지나 월넛을 주문했다. 레인보우 샤베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자모카 아몬드 훠지 등 기본 7자에서 9글자나 되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부모님이 어떻게 외우랴. 아마 가장 짧은 이름이 월넛이지 않을까 싶다.


베스킨 라빈스의 등장으로 아이스크림을 대하는 우리의 입맛은 좀 더 외쿡스러워졌지만 각자 입맛대로 주문하고 포장지를 까먹는 정취는 이제 없다. 우라나라 아이스크림은 비비빅, 스크류바, 누가바 등 이름도 짧기 그지 없다. 그래서 기억하기도 쉽다. 나는 지금도 간식을 고를라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과자만 고른다. 어렸을 때 충분히 못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과자들이 맛있다는 생각이 잘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자주먹고 좋아하는 간식들의 나이를 찾아봤다. 


오징어땅콩 76년생

꼬깔콘 83년생

누가바 74년생

비비빅 75년생

바밤바 76년생

스크류바 85년생

쌕쌕 오렌지 80년생

* 출처: 나무위키


누가바가 제일 연장자다. 얼마 전에도 장을 보고 나오는데 막대 아이스크림을 세일(365일 하는 듯)하길래 겨울 바람을 맞으며 먹었다. 부피는 옛날보다 많이 줄었지만 맛은 그대로더라. 외쿡 아이스크림이 들어오고, 입맛도 점점 그렇게 변하는 것 같지만 각자 취향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었던 기억만큼은 우리 것으로 남겨두고 싶다. 6명의 가족이 함께 살다가 이제는 다 흩어져 살고 있지만 아이스크림 하나로 따뜻했던 옛날을 떠올리니 겨울 바람이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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