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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20.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7) 자유(감당력)

에피소드(1) 자유는 어떻게 자유가 되는가

에피소드(1) 자유는 어떻게 자유가 되는가


요즘 고수외전이라는 프로를 보고 있다. 예전부터 좀 느끼던 거였지만 나는 움직임은 적고, 말은 많은 프로를 좋아하더라. 알쓸신잡, 라디오스타, 맛있는 녀석들, 썰전 등등 자주 보는 프로를 모아보니 야외 버라이어티 등 게임이나 몸으로 하는 프로그램보다 그냥 앉아서 어떤 주제에 대해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듣는 것과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누워서 듣기만 하면 되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아져 심심하지 않게 사는 중이다. 패널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패널은 단연 탁석산인데 철학자다.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는데 탁석산만 대본이 없더라. 철학자가 대본을 보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도 어울리진 않지만 그래도 다들 A4용지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데 빈 책상의 자유로움에서 철학자다운 면모가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대본은 자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본은 구속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대략적으로 대본에 적어 놓고 슬쩍슬쩍 보면서 대화에 참여하게 되면 나라는 사람을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게 더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다. 사전 미팅을 통해 이야기해놓은 부분을 작가들이 정리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어떻게보면 각 패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아예 무대본으로 진행하게 되면 안 그래도 말이 많은 김태훈같은 패널이 더욱 활개를 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5명의 패널에게 적절한 발언의 기회가 가고 가능하면 그 순서가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행자 신동엽의 역할이다. 어떤 회차에서 누군가가 신동엽이 술을 좋아하고 그렇게 많은 스케줄을 가지고 있음에도 건강하고 멀쩡?하게 소화하는 건 '자기가 잘 하는 것만 하기'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잘 하는 것만 하는 신동엽은 앉아서 여러 패널 사이에서 유머를 섞어 분위기를 전환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것을 잘한다. 같은 걸 해도 에너지를 많이 비축하기 때문에 회식할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말이 무척이나 이해가 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은 나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다. 신동엽은 여러 경험을 통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자기에게 잘 맞는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진행자 타입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이 좋아하는 술을 놓지 못하기에 두 가지를 체력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스튜디오 진행자로 안착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신동엽의 선택은 신동엽의 삶에 자유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자기 삶에 자유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타인과 결을 다르게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스스로가 내공이 안 되었다면 대본 없이 진행하지도 않았겠지만 철학자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외모(백발이 신의 한 수)만큼 무대본 참여라는 상황은 탁석산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자유란, 결국 나다움을 잘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상황조절능력같기도 하다. 어떤 걸 해야 가장 나답게 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자유를 부여할 수 있다. 


에피소드(2) 당신에게 자유는 무엇입니까?

자유라는 주제를 잡고 글을 쓰려다 무지하게 후회를 했다. 이렇게 어려운 주제라니! 쓰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나에게는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며 그냥 막연하게 [자유]라는 단어의 중요성만이 머릿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또 주변 사람들(가입한 까페와 SNS를 동원했으므로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한테 SOS를 쳤다.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람들은 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 단어에 대한 어려움이 나만의 것일까. 


홍** 사회가 정해놓은 룰 안에서 내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여기저기 댓글을 다는 것 같지만 한마디 더 하자면 시대에 따라 비합리적이 된 사회의 룰을 바꿀 수 있는 권리도 자유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결국 자유는 다함께 만들어가는 것? ^^;

얼만큼의 자유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유비용'의 규모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돈 대신 자유를 선택하면 그만큼의 자유비용이 지불되어야 하죠. 갖고 싶은 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등의 비용이요.

지*** 자유라는 말 자체가 뭔가 쉽게 정의내려지지 않네요. 그래서 쉽게 생각해보기로 하고 처음 '자유'라는 단어를 보고 드는 생각은 '내 마음가는대로'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방종'이 되겠죠? 다른이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가는 대로 하는 태도, 행위, 생각 등이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Hey **** 힘든 월요일 하루를 보내고 난 제게는 자유가 월급을 포기하면 가질 수 있는거라고 마음에서 떠오르네요. 

결국 댓가를 치루어야만 가질 수 있는거라는거라는 거라구 말하고 싶어요. 


민** 제게 자유는, 확신을 가지고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벼* 자유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Chao**** 느낌이 좋은 사람과 가까이 하고, 느낌이 더러운 사람과 떨어질 수 있는 것.

아이디얼**** 말 그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거죠.

포커*** 그 무엇도 구속받지 않은 상태를 자유라고생각합니다.

일상*** 현실을 알고 대처할때 비로소 찾을수 있는것.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Tim ******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자유 아닐까요?

프리****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주는 것?

호이**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몫

이*** 구속이나 속박당하지 않고, 스스로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음이 자유라고 생각해요 ㅎ


알**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것이요~

니* 누구 눈치 안보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것. 단, 법에 위배되지 않는 조건으로.

인***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ㅎㅎ

고*** 자유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는거요! 그래서 자유롭다는 거는 겉으로 봤을때는 얽매여 살수 있겠는데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서 그걸 실천하는 사람을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많은 결핍과 구속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해방되는 것

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모든 무의식과 의식을 포함한 생각과 행위들.


* 답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사실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자유감당력이 떠올랐다. 자유란, 감당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9년 전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나에게 넘쳐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출근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낮술의 일탈을 처음 느꼈고, 새벽 시간의 깨어있음이 남다른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선물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는 한 가지 자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금전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시간은 오히려 스트레스다.(살아있는 것 자체가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 후 가지고 있는 돈을 다 까먹었을 때 금전적 자유(라고 쓰고, 정신적+신체적 자유라고 읽어보자)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9시부터 6시까지 풀 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너무 많은 부분을 지출해야 했기에 내가 선택한 것은 대부분 주 3일 근무거나 시간제 근무였다.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풀 타임 잡을 찾지 않았다. 돈보다 시간이 필요했고, 정신적 자유로움을 지킬 수 있는 단순 업무의 퀄리티와 느슨한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한 분위기의 조직이 필요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자유는 소비를 줄이면 된다. 이게 생존 본능인 건지 아니면 나이 들어서 줄어든 건지 모르겠지만 수입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옷 욕심이 줄어들었다. 꾸미는 건 원래도 크게 관심없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정기적으로 나갔던 외모유지?비용은 상당히 줄어든 편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친구들과 사람을 만나면서 지출을 했었다면 지금은 혼자서 시간을 감당하는 법을 익혀 나가는 중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든다. 9시에서 3시까지 하는 시간제 직장 덕분에 아직은 금전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부족함없이(오해 금지. 똔똔일 뿐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 사용 중이지만 지속성이 담보되어있지 않으므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금전적 부자유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친구들과 모일 때마다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의 통장의 잔고와 그들의 삶의 차이를 생각하며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자생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진행하는 코칭과 교육을 통해 월 150만원을 벌며 그 외에 내가 도움이 되는 콘텐츠로 강의를 하며 사는 삶. 하루에 4시간은 돈을 버는데 사용하고, 4시간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사용하며, 나머지는 듣거나 누워있거나 웃으며 살고 싶다. 사실 150만원은 사회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돈은 아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내 첫 월급이 150만원이었다. 퇴사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150만원의 월급을 꿈꾼다. 세상의 흐름에 비추어봤을 때 나 같은 기질의 사람이 1인기업으로 자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꼭 10년째 되는 내년에 코칭과 교육으로만 통장에 150만원이 찍힐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 쓰고 싶다. 나에게 자유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나다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나에게 주어진 1년의 자유를 잘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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