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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14.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6) 충돌감(을 느낄 때)

에피소드(1) 댓글을 대하는 3가지 방법

에피소드(1) 댓글을 대하는 3가지 방법


나는 매일 충돌한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 마음 속의 무뇽(무의식에 가까운 나)과 문연(의식에 가까운 나)은 매번 충돌한다.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충돌을 싫어한다. 그래서 싸움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아 생각해보니 후천적인 것 같다. 대학생 때까지 언니랑 여동생이랑 피터지게 싸운 것이 떠올랐다.(나의 무의식은 내 글쓰기에 참 도움이 된다) 그렇게 후천적으로 키워진 싸움회피 기질은 댓글을 달 때도 나타나는데 내 의견에 누군가가 반박의 글을 달 경우 속으로는 '욱'할지라도 일단 댓글러의 성향과 내용을 분석해본다. 이 댓글러가 진짜 어떤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는지 내용과 말투(완벽히 담을 수는 없지만 느껴지기는 한다)를 보면 어느 정도 가닥이 나온다.


첫번째 댓글러는 논리적이고 차분한 어투로 내가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번 생각해볼만한 댓글러다. 나의 의견에 반박은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추고 있으며 그렇기에 나 또한 무조건적으로 욱하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해서 수긍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반영한 댓글을 달게 된다.


두번째 댓글러는 감정적으로 반응해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댓글러다. 일단 감정이 상했다는 느낌이 내용 전체에 묻어나기 때문에 감정을 건드리는 반응을 하면 일을 더 키울 뿐이다.(난 싸움을 싫어하지만 댓글로 싸우는 것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이 들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댓글 싸움으로 번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짧은 문장에 담아 담백하게' 표현한다.


세번째 댓글러는 두번째 댓글러의 확장판이다. 내가 아무리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이미 상한 자기 감정을 나에게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게 표출되는 형이다. 내 블로그는 가끔 지인들이나 블로그 이웃만 댓글을 다는 아주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데 한 번 '강아지 전기 목줄'에 대한 포스팅으로 댓글이 폭주(그래봤자 20개?)한 적이 있다. 나는 내 마음의 평온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 감정적 비난이 끊임없이 달리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세번째 댓글러는 대부분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댓글을 원했다. 세상에는 자기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사람이 많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쓴 것이라 거기에 비난을 하는 건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그 비난에 대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 또한 나의 자유이다.


무조건적으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난 어떤 댓글도 지우지 않는 편이다. 이슈화가 많이 되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댓글로 달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댓글의 선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우지 않고 무시(세번째는 무시하면 무시한다고 또 난리를 친다. 아놔...)한다. 처음에는 두번째 댓글 정도도 다 무시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필요도 없지만 특히 익명의 온라인 사회에서 건강한 댓글 확장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댓글러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감정적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에게는 웬만해서는 솔직하게 반응하기보다는 '댓글 감사합니다 라던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는 답변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논리적인 생각에 약하고, 그래서 집요하게 파고들지 못한다. 그래서 싸움(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면)을 싫어하고 회피한다. 어쩌면 싸우지 않기 때문에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으며 논리적인 생각에 약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무시하거나 단답형 댓글보다는 좀 더 나의 생각에 대해서 정리해서 써보려고 한다. 어떤 댓글러는 무시하는 게 상책일 수도 있지만 댓글을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도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강아지 전기 목줄'은 여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덧, 지금도 그 포스팅에는 감정적 비난의 글이 달린다. <= 자신의 죄책감을 댓글에서나마 보상받으려는 감정적 호소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 마음 속에 묻는다. 불난 집에 기름 붓고 싶지 않다.)


에피소드(2) 충돌 회피형 인간의 고백


연애가 힘든 이유는 사고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연애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라면 다 그렇다고 본다. 관계가 편한 사람들은 내가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상대방도 비슷할 때라고 보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남자랑 여자가 길을 걸어가다 여자가 꽃집의 꽃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다. 여자는 진짜 꽃이 예뻐서 그런 말을 한 걸 수도 있고, 남자에게 사달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첫번째라면 남자가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을 것이며, 두번째라면 꽃을 사줬을 때 나(여자)의 소통 방식을 잘 이해하는 남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소통 방식(혹은 생각의 구조)이 비슷할 때 사람들은 공감받고 있다고 느끼며 편안함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좋아할까? 하는 고민(예측불가능하기에 설레기도 하는)의 시기가 있지만 평생 머리 굴리기를 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해야 한다면 예측가능성으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나의 의도를 상대방이 정확히 캐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걸 다르게 반응한다거나 내 의도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피곤해지는 거다. 나는 이러한 충돌을 엄마와 가장 많이 겪었다. 엄마가 나에게 어떤 걸 시켰을 때 '말=말과 똑같은 행동'이었던 나는 '말=말보다 구체적인 행동'이었던 엄마가 '시킨대로만 했다고' 엄청 잔소리를 들었다. 예전에는 엄청 악다구니를 써서 몇 날 몇 일동안 엄마랑 말도 안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이야기한다.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그런 반응을 한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엄마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는 이러한 마찰이 적으면 적을 수록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신혼'이야 말로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시키는 완충 시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고의 흐름이 비슷하다면 상대적으로 덜 싸우겠지만, 두 사람의 사고와 행동 패턴을 일정부분 조율하기 위한 충돌은 불가피하다.


어쩌면 나는 충돌을 잘 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배우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수긍하고 다시 논리를 펼치는 분위기에서 멀었다. 그래서 나의 의견은 비논리적 잔소리로 인해 악다구니(사실 여기서 헐크로 변하면 안 되었던 건데)로 변했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충돌회피형 인간으로 거듭(싸우는 거 너무 피곤해요)난 것이다. 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옷 좀 사입으라'고 말한다. 옷을 살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하고, 옷에 쓰고 싶은 돈보다 다른데 써야 할 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20대의 나였다면 '아 돈 없어!!!!!!!!!!!!!!!!!(사실 지금의 속마음이기도 하다)'라고 엄마한테 그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소리쳤겠지만 지금은 그냥 얼버무린다. 딸이 좀 예쁘게 하고 다녔으면 하는 엄마의 속마음을 알기에 참는? 것이지만 점점 귀에 딱지가 앉으려고 해 대책이 시급하다. 이렇게 겉으로는 조용히 다니니 내가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충돌하려는 무뇽과 회피하려는 문연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문연을 선택하는 것이 잘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모순이 생겼다. 속마음과 겉표현이 다른 나. 반대되는 의견을 잘 표현하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 나. 나서야 할 때조차 소극적이 되고 마는 나. 모순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해서 문연을 사용해왔지만 무뇽을 무시하는 것(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동굴에서 혼자 놀고 있는 무뇽을 데리고 나와야겠다. 무뇽과 문연이 손을 잡고 충돌지점을 바라보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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