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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06.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5) 기억(무능)력

에피소드(1)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 생일

에피소드(1)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 생일

나의 인간관계는 꽤나 협소하다. 많은 사람과 교류할만한 사교적 기질도 아니거니와 내 기준에 별로인 부분을 발견했을 때 포용력이 아닌 멀리력(멀리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굳이 분류하자면 고등학교 친구들 5명과 대학교 친구들 3명이 전부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친구의 생일을 어떻게 챙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들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 뚜렷한 상징성이 있을 경우는 예외다. 나의 생일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라 한 번 들었을 때 잃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친구 한 명은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그래서 기억한다. 또 다른 두 명의 친구는 1월 1일과 2월 2일이 생일이다. 월과 일이 같기 때문에 겨우 기억했다. 이 3명의 친구 외에 월과 일이 다른, 그것도 많으면 총 4자리의 다른 숫자를 기억해야 하는 친구들의 생일은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할 때 같이 축하할 뿐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기억한다면 나는 친구들의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가족의 생일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가족의 생일은 다 외운다. 우리 가족은 무려 5명(나 빼고)이다. 지역적 특성때문에 친구들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친구들의 생일은 매번 챙기는 편이다. 다들 바쁘기 때문에 생일 때문에라도 얼굴도 볼 겸 축하도 할 겸 생일을 챙겨준다. 하지만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것의 의미를 따지자면 잘 모르겠다. 그냥 의례적으로 부모님이 매번 축하해줬으니 생일은 기쁜 것이고 축하해 마땅한 것이라 생각해 축하하고 있다. 아, 이게 좀 옛날의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이런건가. 이번 생일까지 살아 있어서 고마워. 뭐 이런 거? 아가가 금방 죽을 수도 있어 출생신고도 1년 뒤에 했다던(물론 이건 나보다 윗 세대의 일이다) 어르신들의 말을 되새겨보면 생일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겠다. 


그건 축하할만한 일이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더 본질에 가깝다. 태어난 날보다 매번 올 한해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야지라고 미래를 위한 축하를 하는 것.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을 꺼려한다. 나이만 먹는 것을 티내는 것 같아서이다. 초에 불을 붙여 놓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초가 타 들어간다. 9로 끝나는 나이는 특히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자욱함을 선사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까페는 No케이크(초에 불을 붙여 축하하는 행위)Zone이 되었다. 이건 모두 생일이 '나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케이크에 나이를 꽂지 않아도 케이크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다 내 나이를 안다. 오히려 대왕 초 하나만 꽂아놓고 1년의 삶을 감사하며, 앞으로의 1년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감을 기원하는 것이 한 살 더 먹음을 제대로 축하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15년지기 친구들의 생일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것으로 기억력의 무능을 퉁쳐본다.


에피소드(2)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 이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름이다. 나는 이름을 잘 못 외운다. 그래서 의뢰인을 만날 때도 이름을 몇 번이나 상기시킨 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이름을 대체할 수 있는 어휘를 떠올리느라 힘든 적도 있다. 이런 일은 상대방은 나를 기억하는데 나는 상대방을 모를(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내적 혼란스러움을 당신은 아는가?) 때 엄청난 곤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름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아주 커다란 부분인데 그 사람은 알고, 나는 모르는 불균형성으로 내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사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미안하기는 하다) 그래서 내 전화번호부의 이름에는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2가지 이상의 것들이 적혀 있다. 나이와 하는 일,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름은 뜨는데 도저히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알 길이 없어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던 경험, 모르는 사람이 카톡으로 말을 걸어와 누구냐고 물었는데 몇 개월 전 교육을 진행한 수강생이었을 때의 당혹감, 친구들의 아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딸인지, 아들인지도 잘 까먹어 애를 먹는다) 예전 카톡 대화를 검색했던 기억 등등 이 모든 것이 나의 기억(무능)력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곤란한 상황들이다. 왜 나는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는 사소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심각하게 나의 해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관계'적 생활에서 곤란함을 유발하는 것일 뿐, (관계가 단절된)일상 생활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 그냥 살기로 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무능)력 혹은 기억 습관은 우리 나라처럼 관계 중심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나라에서는 치명적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나의 해마가 사람들의 이름을 저장하기보다는 나의 삶에 유익한 더 좋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기만의 설정값을 정해놓고 걸러내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이름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작은 저장 공간을 가지고 있다면 해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해마의 주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참, 나는 외국 이름이 사용된 소설을 못 읽는다. 소설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등장 인물을 구분하다 읽기를 포기해 버린다. 3글자짜리 우리 나라 사람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데 기본 3자 이상인 외쿡 사람 이름은 나에겐 무리다.(존, 스미스, 샐리 같은 짧거나 흔한 이름은 예외지만 그런 이름만 사용된 소설은 거의 못봤다)


에피소드(3) 내가 공부를 못했던 이유 - 암기

나는 암기 과목을 끔찍이 싫어했다. 내가 못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역사, 세계사, 한문 등등 밑바닥을 깔았고 대학생 때 좀 다르겠지 하던 전공 수업은 고등학교 암기 과목의 다름 아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마케팅 원론(이런! 전공 과목이 마케팅 원론밖에 기억이 안남)이었는데 수업 방식이 교수님의 스타일(무채색의 투피스를 주로 입으셨다)만큼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회계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업이 25줄로 된 갱지에 암기한 답을 가급적 많이 '서술'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그러한 수업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거니와 나의 최약점을 자꾸 확인할 수밖에 없는 시험 방식 때문에 자꾸 삐뚤어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의 글씨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악필에 가까워서 25줄의 갱지를 채우더라도 교수님의 안구를 걱정해야할 판이었다.(다행?히 25줄의 갱지를 채운 적은 손가락 안에 꼽는다)


수업 방식 핑계를 댔지만 난 기대와 다른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취업'이라는 아주 커다란 목표가 있었지만 20살의 나는 당장의 안락함과 즐거움이 더 컸기에 시험 전 날 인사동에서 공연보고 그랬다. 수업이 재미없었고, 암기력이 강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전공 과목은 매번 성적표에서 나를 보며 씨씨 (C)거리거나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D) 굴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던 건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되서다. 공식만 외우면 어떤 문제도 나만의 공식을 대입해 풀면 그만이었다. 답은 딱 떨어져 나왔고, 아주 간결한 답만큼 공부하는 방식도 명쾌해서 좋았다. 암기력은 아주 조금만 필요했다. 회계가 수학의 연장선인 줄 안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회계는 수학이 아닌 돈의 흐름이었다. 돈의 흐름은 명쾌하지도 않고, 장부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암기력을 핑계로 대학 수업에서 회피하고 있었다. 


회계 원리와 원가 회계 두 과목은 나에게 쌍F를 선물했고, 나는 학교에서 짤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재미는 없었지만 성적표에서 나를 푹푹(F) 찔렀던 두 과목 덕분에 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남은 계절학기를 모두 동원해 취업을 위한 최소한(내 기준)의 학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냥 공부하기 싫었던 것에 가까웠지만 난 확실히 암기에는 젬병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외웠던 그 모든 것들의 99.9%가 나의 해마에서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 있다. 중학교 때 배우는 아주 상식적인 것도 몰라 무식함에 제발 저리는 경우도 있긴(이게 다 교육의 폐해, 난 피해자라고 주장해볼까)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걸. 어쩌면 그래서 더 열심히 검색을 이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검색해본다. 잃어버린 것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잊어버린 것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기억할 것'을 선택한다는 측면에서 무능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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