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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02.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4) 어른(이 된다는 건)

에피소드(1) 철이 든다는 건 뭘까요.

몸은 성장이 끝났다. 아니 늙고 있다. 어른은 언제부터 되는 걸까.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할까?'라는 질문을 한 적 있다. 물론 넌센스다. 여기서 30살! 이렇게 답해버리면 곤란하다. 그 때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 잘 하는 훈련을 하고 싶어 그런 모임에 찾아간 터였다. 그 모임에서는 '결혼 한 후' '아기를 낳으면' '노화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등등 물리적인 시점을 이야기하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답은 어느 책에서 벤치마킹한 것이었는데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답이었다. '꿈'이라는 단어를 '기대'로 바꾼다면 이 답은 지금도 어느정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기대되는 삶과 후회되는 삶의 무게가 어느 쪽에 실리느냐에 따라 노화의 시기는 결정된다고 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노화와 무관하지 않다. 나이를 드는 것, 늙어가는 것 그러면서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정의에 일부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만의 어른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른이 되다는 건 뭘까.

에피소드(1) 철이 든다는 건 뭘까요.
진심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자. 이 글을 쓰기 위해 철의 의미를 찾아봤다. 당연히 금속 철이라 생각(제가 좀 그렇습니다)했는데 당연히 그 철은 아니었다. 계절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철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현상에 따라서 일 년을 구분한 것.(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한다. 봄철, 김장철, 이사철 등에 사용하는 그 철이다. 그래서 철이 든다는 건 1년이 들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철이 드는 게(철이 드는 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는 금속 철을 대입했을 때가 더 이해가 잘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금속 철을 대입해 생각해봤다.

(찾아보니) 우리의 몸에는 평균적으로 약 4.5g(약 0.004%)의 철이 존재한단다.(네이버 두산 백과) 그래서 철이 든다고 했을 때 철은 금속이고 분명히 무거울테니 좀 더 철을 먹고 어른처럼 진중해지는 건 어떠겠니? 혹은 어른처럼 무게있게 행동하지 않으련? 하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예전에 분명 이런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철의 65%는 헤모글로빈 조직에 있어 폐에서 신체 각 부위로 산소분자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철이 부족해지면 빈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네이버 두산 백과) 가끔 철이 덜 들어(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멘붕을 시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역시 기를 빨리는 것(철분을 뺏기는 것)으로 빈혈을 초래해 순간적인 멘붕이 오는 것은 아닌가 짐작해본다.

철은 다른 금속과 합금이 잘 되므로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금속 중 사용량이 가장 많다.(네이버 두산 백과) 어른이 된다는 건 사회에 잘 속해야 한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서 잘 어울려 살아가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금속의 상태로 산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네이버 두산 백과)다고 하는데 어쩌면 좀 슬픈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사교성이 좋은 금속 같기도 하고 그렇다. 오롯이 나 하나로 존재하기가 어려워서 합금이 잘 되는 형질인 건지, 합금이 잘 되다 보니 오롯이 나 하나로 존재할 필요성이 적어진 건지 금속이 뭐 그렇게 복잡한 금속사를 가지고 있겠느냐마는 철과 어른을 섞어 글을 쓰려다보니 이 지경이다.

하여간 없으면 빈혈을 일으켜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필수 금속이므로 우리의 몸에는 꼭 철이 들어야 한다. 일상 생활을 잘 해 나가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면 내 몸에 철을 들이는 것 또한 어른이 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무식함으로 시작했지만 네이버 두산 백과의 도움으로 하나의 글을 잘 마무리하는 것 또한 어른이 가질 수 있는 뻔뻔함이라면 나의 몸에는 철이 잘 들어 있는 것 같다. 철은 살코기, 노른자위, 당근, 과일, 전맥분, 엽채류(네이버 두산 백과)에 들어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 당신의 몸이 특급 멘붕(빈혈)으로 휘청했다면 저녁에는 철철 넘치는 밥상을 선사해보자.

에피소드(2) 어린이와의 신경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 시간에는 초딩 수영이 끝나는 시간과 맞물린다. 그래서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초딩들이 우루루 나온다. 그들은 늘 샤워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놓고는 하는데 비어 있는 시간동안 엄마 나이를 뛰어넘는 아줌마들이 씻기도 하므로 엄청난 세대를 초월하는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신경전이기보다는 어린이들의 항복에 가깝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린이들은 자기가 맡아놓은 자리라는 것을 주장하기에 어른으로서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애매하기 그지없다.(난 한 번도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은 없지만 이상하게 자꾸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하면 어른스럽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직 만족스러운 솔루션을 내놓지 못했다.)

목욕탕은 공공 시설이고 자리를 맡아놓을 순 있어도 빈 시간에 사용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인 권리가 있다. 이런 걸 목욕탕에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 자못 진지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어린이들은 그들의 순수?함 때문인지 자신이 선택한 자리를 뺏기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있어 보이는데 나도 그 억울한 눈빛을 발견한 적이 있다. 서서 샤워할 수 있는 샤워기는 벽 쪽에 대략 5개쯤 있다. 사우나를 이용하는 누구나 자기가 선호하는 자기만의 고정석이 있기 마련인데 나 또한 수압이 좋은 위치의 샤워기(편의상 3번 샤워기라 불러보자)를 고정석(물론 내 건 아니다)으로 사용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열심히 샤워를 하고 있는데 한 4학년쯤으로 추정되는 어린이(영화 '집으로'에 나온 유승호를 연상시키는, 예쁜 유승호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ㅡㅡ)가 나를 한 번 쓱 쳐다보더니 내 옆의 샤워기(편의상 2번 샤워기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어린이는 뒤 타임의 수영에 참여하는 모양이었는데 자꾸 나를 쳐다봤다. 내가 뭘 어쨌다고.

샤워기를 다 사용하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는데 자기 샤워 도구를 내가 사용했던 3번 샤워기에 걸어놓고 수영장에 들어가더라. 자기가 매일 쓰던 샤워기를 어느 날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잘 맞물려 돌아가던 하루의 톱니바퀴 하나가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꼬맹아 인생은 그런 거란다.(어른으로서의 아량이 1도 없음) 사실 나는 그 꼬맹이가 쓰던 3번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정확히는 그 옆 2번 샤워기를 썼었는데 3번 샤워기의 수압이 더 마음에 들어 고정석을 바꾼 것이다. 그렇게 늘 비슷한 시간대에 그 꼬맹이랑 부딪히고는 했는데 서로 선호하는 어떤 것을 가운데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사이라 그런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더라. 그리고 어떨 땐 샤워 시간이 좀 늦어져 그 꼬맹이가 수영을 끝내고 나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어느 순간 움직임이 빨라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혹시라도 시간이 겹쳐 그 꼬맹이가 나와서는 똥그란 눈을 뜨고 나에게 '거기 제 자린데요?'라고 하면 뭐라고 할지 아직 어른스러우면서 슬기?로운 답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번 샤워기에 그 꼬맹이의 샤워 가방이 걸려 있는 날이면 시간 배분을 참 잘해야 한다. 멍 때리기 딱 좋은 사우나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솔로몬한테 상담이라도 받아야 할까보다.

에피소드(3) 어른의 조건
성장할 때는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어떤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나이가 차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어른이란, 부모님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호프집에서 당당히 민증을 까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그리고 부모님 허락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것 등이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랬다. 20대 중반의 나는 취업을 하는 것이 어른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2년 3개월동안 직장인으로 적응했다. 30대가 되고나니 어른은 좀 다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가 되고 나니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어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는 사회적 기대감에 비추어 볼 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어른은 '나이'보다는 '성숙함'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내가 보는 어른의 조건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의 첫번째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 '큰 소리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젠틀함'이다. 얼마 전 마을 버스에서 내 또래의 남성이 내릴 때를 놓치고 헐레벌떡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괘씸했는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꽤 많은 승객 사이에서 그는 반말로 '문 열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문이 열리지 않자 '미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그제서야 문이 열림) 얼굴이 벌개져서는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본인이 내릴 타이밍을 놓친건데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문 열어달라고 한다면 둘 다 해피할텐데 왜 굳이 얼굴이 벌개질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험한 말을 내뱉는건지. 마을 버스의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어쩌면 본인도 의식하고 창피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성숙하지 못한 대응이군'

두번째는 사람에 대한 상식적 배려다. 1살 차이나는 동생이 멋지다고 생각한 일화가 있어 소개해본다. 그녀가 외국 출장을 가기 위해 인천 공항 핸드폰 대리점에 들렀을 때였단다. 앞의 할아버지가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앞의 여직원에게 험한 말과 고성을 내뱉고 있었는데 동생이 참다 못해 그만 하시라고 소리쳤단다.(그녀는 43kg 정도 되는 마른 몸매의 소유자인데 아빠의 카리스마와 엄마의 욱하는 성격을 닮아서 집에서 세번째(엄빠 다음으로)로 무섭다)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 직원은 심지어 임산부였는데 여동생은 데스크 앞의 임산부 표시를 보고 폭발한 것이었다. 아마 (동생보다 좀 더 개인적인)나는 그렇게 행동하진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앞으로 사람에 대한 상식적 배려가 필요한 상황일 때 내가 어떻게 '개입'하면 좋을지 '선한 오지랖'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세번째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조건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책임'이다. 책임을 본인이 지느냐, 남이 지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가 갈린다고 본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혹은 나에게 어떤 돈이 필요할 때 그걸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난 아직 어른이 아닌거다. 결혼을 하고서도, 아기를 낳고서도 본인의 삶에 있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덜 된 것이기도 하다. 자식의 잘못을 사과하는 부모(의 자식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과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지원과 도움을 바라는 자식(모든 삶은 기브 앤 테이크다. 주기만 하고 자식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쿨한 부모는 거의 못 봤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남탓만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본인이 선택한 상황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감수할 수 있다면 선택할 수 있다. 감수하기 싫기 때문에, 감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은 선택하고 감수하는 것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선택만 하고 감수하지 않으면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 주변 사람들에게 '어른은 뭘까요?' 질문해봤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

이*승: 인생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처신할 준비가 된 사람
구*란: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지는 자유를 누리는 독립된 존재
김*라: 스스로의밥벌이를 최소한 하는 사람
황*석: 계절이 바뀌는것을 스스로 알 수 있는 시기
홍*영: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지는 사람, 남을 배려하는 사람
하***넷: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 외로운 사람 그러면서 강해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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