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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Nov 28.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33) 초(간단)능력

에피소드(1) 듣는 능력

대단한 능력이 없어서일거다. 내가 사소한 능력을 사랑하는 이유. 사소한 능력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에 대한 존재성을 입증하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사소한 능력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봐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과 나는 다르고,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지 않았대도 난 괜찮으니까. 어쩌면 이건 지금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탑재된 생존 마인드일 수도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피곤한 일이 차고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기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나처럼 내 한 몸 건사하는 일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자가면역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초(간단)능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초(간단)능력은 어떤 게 있을까.


에피소드(1) 듣는 능력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개인의 말하기 패턴이 있더라. 서술이 긴 유형, 포장이 수려한 유형, 핵심 전달에 강한 유형, 논리정연하게 설득하는 유형 등등. 나는 완벽히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말을 시키면 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말을 하다보면 처음에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놓쳐버린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머릿 속에 생각의 도형이나 흐름을 정리해놓고 혹은 정리하면서 그 정리와 함께 말이 나오는 거라 생각하는데 나는 머릿 속의 스케치북이 너무 흐릿하거나, 화선지처럼 얇디 얇아서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지를 찾으려 애쓰다보면 입술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말 수가 적어졌다. 입술(정확히는 성대일까?)에 뇌가 달린 것도 아닌데 뇌가 전달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인식'(물론 그 말들이 마음에 들었다면 괜찮았겠지만)하면서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편하다. 내가 이런 듣기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번 적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기소개서 첨삭이다.(사실 말이 첨삭이지 거의 내가 써줬다. 그래서 1년하고 그만뒀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커피숍이나 세미나룸 같은데서 만나서 취업 준비생의 인생을 쫙 훑었다.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그 경험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어떤 건지 등등 보통 개인의 인생사를 끌어내기 위한 질문을 총 동원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험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하고, 잘 듣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한 3시간 정도 이야기 나누면 자기소개서에 작성할 5가지 항목을 적절히 찾아 쓸 수 있는데 사실 본인이 이 과정을 할 수 있다면 자기소개서 쓰는 건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검열없이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고 풀어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그렇기에 자기소개서에는 쓸 만한 것들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그렇게 잘 듣는 능력으로 꽤 쏠쏠히 벌었었는데 밥벌이적 가치(나는 일을 통해 성장하길 원하는데)와 잘 맞지 않아 그만뒀다.


듣는 게 적성에 맞다. 자기 성향에 맞는 건 그걸 할 때 마음의 편안함이 있다고 보는데 난 그냥 듣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말이 없으니 상대방은 상대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잘 들어줘서 그런지 자기 이야기를 잘 털어놓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 만난 대부분의 사람의 50% 정도는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죠?'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썰은 많이 피곤하다. 자기 자랑하기 바쁜 사람, 세상의 모든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 자기가 필요한 것만 뽑아내려는 사람은 그걸 대화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듣는 것 자체가 수행일 때가 많다. 다행히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지는 않다. 그런 사람은 진짜 대화를 하고 싶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 니즈에 부응해 멀리한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녹음기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았다. 그런 사람들 말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친구들이 논쟁을 한다면 아 저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자기 논리를 잘 펼치는 언니와 동생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안 까먹고 논리적으로 잘 전달할까 감탄하게 된다.(그러고보니 난 어릴 때부터 동생과의 말싸움에 이겨본 적이 손에 꼽는다.) 어쩌면 듣는 능력이 좋아 말하는 능력을 계발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논리냐 하겠지만 말하는 능력이 좋아지면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어이없는 핑계를 대며 나의 말솜씨에 일말의 변호를 해본다. 


에피소드(2) 적은 더듬이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에 나름 또 애정하는 것은 '쿨하다'는 것이다. 이건 무신경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장점같은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최소한의 것이 아니라면 웬만한 것에는 다 OK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쿨함은 둔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기질이다. 평균적으로 적은 더듬이를 가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무신경할 수 있고, 무신경함은 덜 중요하다로 연결되며, 덜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는 의식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적은 더듬이가 많은 더듬이를 가진 이들에게는 둔하고 눈치없음으로 비출 때도 있는데 한 때 나는 많은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지내면서 나의 적은 더듬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냥 다른 건데, 많은 더듬이 속에서 적은 더듬이는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적은 더듬이는 나의 에너지를 내 바깥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힘이 되주었고, 덩달아 적당한 무신경함으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쿨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들의 유신경함과 배려 그리고 빠릿한 눈치가(자신은 좀 피곤할지언정) 생존에 훨씬 유리하고, 관계를 더욱 따뜻(잘 발현이 될 때)하게 하며, 챙김받고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적은 더듬이가 좋지만 많은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의 장점 또한 인정한다. 그들은 많은 더듬이를 가진 만큼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고, 박식하며, 높은 체감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섬세하면 예민할 수밖에 없다. 예민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반응하고 섬세하게 흡수한다. 우리는 모두 동전의 양면을 품고 살아간다.


에피소드(3) 누워있는 능력


이 능력은 나보다 훨 고수들이 많겠지만 써 본다. 멍 때리기와 비슷한 레벨이라 보면 쉽지 않을까 한다. 주말에 어떤 스케줄도 없을 때 누워있는 능력을 사용한다. 지금은 겨울이기 때문에 절대 이불을 개서는 안 된다. 하루 종일 누워 있을 거기 때문에 전기 장판은 제일 낮은 온도로 설정한다. 그런 다음 핸드폰 거치대에 핸드폰을 고정해두고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방송짤을 찾아본다. 정말 세상 좋아진 것이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방송과 채널을 손 까딱 하는 것으로 시청할 수 있는지. 요즘 내가 잘 보는 건 나의 최애 프로그램인 '맛있는 녀석들'과 '수리앤 노을' 냥이 방송이다. 맛있는 녀석들은 하도 돌려봐서 이제 안 본 짤방이 없을 정도다. 대사도 다 외워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같이 따라하고는 하는데 약간 덕후의 경지에 올라간 것 같아 뿌듯하다. 어떨 땐 제 5의 멤버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든다.(스타워즈 BGM 나올 때 따라부르는 사람 손 들엇!)


코천이(반려견)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난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산책을 정기적으로 시켜야 하는 강아지보다는 집에서 주로 활동하는 고양이가 귀차니즘 성향에 더 잘 맞고 고양이의 털과 식빵 자세, 똥글똥글한 얼굴과 발의 형태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수리앤 노을이라는 방송도 가끔 챙겨보는데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 엄청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가끔 선물 공개 생방송을 하는 걸 보면 저 선물들 다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기많은 유튜버들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방송과 넷플릭스만 있으면 하루 종일 누워있는 건 문제도 없다. 식사 때만 잘 일어나 밥을 먹고 또 누워주면 그만이다. 다행히 밥은 챙겨먹는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밥먹고 바로 눕는 것의 부작용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누워있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발적 쉼'을 하는 것이며, 나의 뇌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기름칠이 부족한 기계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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