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의실에서(4) 할머니의 빤쓰

빤스에 담긴 슬픈? 이야기

by 이문연

탈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할머니가 사각팬티를 입고 돌아댕기신다.

'오- 할머니계의 트렌드세터인가.'

할머니가 사각팬티 입은 건 처음 본 거라
신기해서 주시하고 있는데

다른 할머니(할머니 A)가 한 마디 하신다.

'빤쓰 멋있네-'

사각팬티 할머니

'응 잘 지냈어?' <= 동문 서답. ㅋㅋㅋ

할머니 A

'아니, 빤쓰 멋있다고.'

사각팬티 할머니

'아~ 응. 편해'

저 쪽에서 다른 할머니(할머니 B)가 한 마디 거드신다.

할머니 B

'할아버지 빤쓰를 잔뜩 사다놨는데
할아버지가 가고 없으니 그거 입고 좋지 뭐'

헉! 할머니들이라 그런가.
죽음에 대해 이렇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들의 대화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라 재미있고
나이 든 분들의 초연함이 느껴져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보라색 바탕에 새끼 손톱만한 사각형 패턴이 있는 팬티
사각형 패턴은 하늘색, 노란색, 주황색으로 팬티에 발랄함(읭?)을 더해준다.

저거슨 할머니의 취향일까, 할아버지의 취향일까. 심히 궁금해지는 디자인.
B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 팬티인지 전혀 몰랐을 거다.

다른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든 말든
사각 빤스 한 장입고 거울 앞에서 유유히 드라이를 하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가 편해서 입는 사각팬티는
알고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빤쓰라네.

팬티 한 장에 담긴 한 편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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