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에서(12) 머리끈과의 사투

by 이문연

남탕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 있는데
그건 여자 어린이들이 고무줄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정확히는 여자 어린이들이 사투를 벌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근처 어른들에게 부탁해
어른들이 고무줄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인데.

나도 몇 번 경험이 있기에
고무줄을 푸는 것이 얼마나 난제인지 알고 있다.

여자 어린이들의 머리카락은
방울이 있는 고무줄로 묶는데
이 방울과 고무줄과 머리카락이 잘못 엉키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블랙홀로 빠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수영 선생님이 아이들과 샤워를 같은 시간대에 해서
그 역할이 근처 어른이 아닌 수영 선생님으로 바뀐 것이다.

거울 앞에 앉아서 몸을 씻다 보면 자연스레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조망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9살쯤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수영 선생님한테
고무줄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알지. 얇디 얇은 머리카락과 더 이상의 탄력을 허용하지 않는 고무줄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머리카락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아프지 않게 고무줄을 풀 것인가 고민하다보면

대체 왜 이런 고무줄로 이렇게 세게 머리카락을 묶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학부모에 대한 원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벌써 10분째 사투 중.
선생님이 백기를 들었다.

선생님도 샤워를 하고, 아이도 샤워를 다시 시작했다.

5분 뒤. 선생님이 린스를 이용해보자고 한다.

'오 좋은 방법이군'

이번에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포기할 수는 없다.
정확히는 고무줄에 승복할 수 없다. 이거 하다보면 오기가 생긴다.
이번에도 10분 정도의 사투를 벌인 끝에 선생님은 아이들과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도합 20분이 걸린 고무줄과의 싸움.

어린이들의 머리를 안 묶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머리끈을 (어린이가) 혼자서 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사실 어린이들은 머리끈을 푼다기보다는 잡아당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긴 하다.
그러니 더 엉키고 마는 거지.)

기존에 나와 있는 머리 끈 중에 이런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한 큐에 풀러지는 머리끈이 있다면 아주 잘 팔리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고시에이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