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한예슬 배우의 변신
나라는 사람은 B에 가까운데 나라는 사람을 A에 가깝게 표현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사람들이 다 나를 A로 바라보니까 A로 행동해야 할까? 아니면 나는 B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계속 말하고 다녀야 할까? 연예인들 또는 셀럽이 이미지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과 이미지에 매몰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한 번 잘 나갔던 이미지가 있으니까 계속 그 이미지를 활용해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그 이미지를 깨서 보여주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설픈 변신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영화 '시동'을 봤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마동석 배우 때문에 실컷 웃기는 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그런 측면에서 돈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였다. 2012년 영화 '이웃사람'에서 살인범을 때리는 조폭으로 나왔을 때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함이란!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던 것 같다(아닐 수도 있다). 많은 영화 감독들은 그 때부터 마동석 배우를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마동석 배우의 피지컬을 대체할 수 있는 배우는 아직 없고 그렇기에 그 피지컬을 활용한 많은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마동석 배우의 이미지는 많은 영화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마동석 배우의 장점은 피지컬 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 코미디를 넘나드는 연기력이 뒷받침되기에 결국에는 시동에서의 그런 이미지로의 변신이 관객들에게 먹히는 것이다. 웹툰작가 이종범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적재적소에 그 패를 활용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잘 활용하는 법이라고.'(이해한대로 써서 100%똑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동석 배우는 시동에서 결국 조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핑꾸핑꾸한 단발머리의 신선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나는 빠져들었고 영화의 진부한 스토리는 메인 요리를 뒷받침하는 반찬처럼 느껴졌다. 메인 요리가 맛있으니 반찬 좀 맛없으면 어때.
배우들이나 방송인은 PD나 감독이 다른 역할로 써주지 않으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아닌 것이다. 적극적으로 내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인스타나, 팟캐스트,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원하는 대중들은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 대중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를 찾아 떠날 것이다. 나는 한예슬 배우의 변신이 능동적인 자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로코퀸으로 박제되는 사실이 싫었을 수도 있고, 원래의 자신의 모습은 스모키화장+피어싱이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기존의 이미지를 부수는 이러한 행위는 아이덴티티의 박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적극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 나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직장에서는 직업인으로서의 가면을 쓰고, 좀 더 편한 공간에서는 나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사적 공간에서조차 '그런 이미지'로 관리되어야 밥벌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여지는 이미지와 본래 이미지의 괴리가 있을 때 혼란은 커지는 거고, 그걸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사적 공간에서의 나를 적정히 분리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적정한 분리가 이루어졌을 때(내 아이덴티티에 대한 기준이 잡혔을 때)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사적 공간에서의 나는 어울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예슬 배우의 변신은 엄밀히 변신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모습을 공중파에 드러냈을 뿐. 배우라면 단연 그 직업으로서 인정받는 것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방법이겠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박제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B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세 또한 나는 응원하고 싶다. 코 피어싱이라니! 와우!
글쓴이: 이문연
<스타일, 인문학을 입다>, <주말엔 옷장 정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