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패션이 우아한 삶을 말하진 않는다."
영화 재키를 보고 나서
“우아한 패션이 우아한 삶을 말하진 않는다.“
영화 재키는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암살 직후를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의 시점에서 그려낸 영화다. 그녀는 진실보다는 가십에 가깝게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 여러 언론에 맞서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오나시스’라는 사람의 생각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이버 영화 ‘재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내가 적은 영화 속 한 줄 대사는 ‘잊히지 않게 하라’이다. 사람의 이목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과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춰야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 기대가 사라질 경우 자신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반대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 독선적 행보는 미미한 영향력만 행사하다 끝날지 모른다. 미디어에 노출 되는 사람들에게 대중의 지지는 곧 문화 권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재키는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마케터가 아니었나 싶다. 적극적인 여성 인권 활동을 펼쳐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엘리노어 루즈벨트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한 두 번째 퍼스트 레이디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패셔니스타들이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감각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다. 뛰어난 패셔니스타들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강점을 어필하기 위해 패션을 활용함으로써 감각이 연마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내가 보기엔 재키의 미모도 빠지지 않으나 약점은 늘 자신에게 유독 커 보이는 법. 예쁜 미모의 여동생 리 라지윌과의 비교는 패션 감각을 연마하게 만든 강력한 동기부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로서 자기만의 패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임과 동시에 예술과 문화, 역사를 중시하는 행보를 통해 돈을 마음껏 써댄다. 배우나 가수 등 셀럽에게서만 느꼈던 ‘패션’이라는 분야를 백악관에 들여온 것이다. 혁명에는 뒷말이 나오는 법.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험담과 기사는 많았겠지만 그만큼 그녀의 과감함과 결단력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패션은 그녀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 퍼스트 레이디들이 입지 않았던 색깔의 옷을 입었고 옷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우아함을 담을 것. 색깔로는 과감함을, 옷의 라인으로는 우아함을 표현했다. 지방시와 샤넬에서 온 청구서가 어마무시했다지만 그러한 노력으로 그녀는 백악관에 패션 혁명을 이뤄낸 셈이다.
@네이버 영화 ‘재키’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조금 더 행복했을까? 실제로 케네디의 바람기 때문에 그녀의 사치가 더 심해졌다고도 하는데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날 그녀의 분홍색 수트에 튄 핏자국이 뉴스로 보도되었고, 그 선명한 대비로 인해 재키의 충격과 상실감이 국민들에게 조금 더 각인되지 않았을까 하는. 영화에서는 암살당한 직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부통령인 린든 B. 존슨에게 대통력 직을 위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옆에서 혼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재키의 표정이 화사하기 그지없는 분홍색 수트와의 대비로 인해 더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네이버 영화 ‘재키’
국민들에겐 대통령이었지만 그녀에겐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였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로서 대통령에게 걸맞을 장례식’을 제안한다. 그녀의 백악관 입성의 절대 미션인 ‘잊히지 않게 하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운구 행렬을 추진한다. 암살의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검은색 베일을 쓰고 당당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꾸며진 모습이든, 진짜 그녀의 모습이든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그녀의 절제된 슬픔에 기품 있고 세련된 상복이 더해져 ‘잊히지 않기 위한 완벽한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본다.
영화는 그녀의 패션을 따라한 옷이 입혀진 마네킹들이 부띠끄 앞에서 내려지는 것을 재키가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의 패션은 그녀에게 명성을 주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그녀를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만들었지만 그녀의 결핍을 패션이 채워주었는지는 의문이다. 개인의 결핍과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삶 사이에서 그녀는 좋아했던 패션을 통해 인정받는 느낌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우아한 패션은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사랑받겠지만 그녀의 삶이 우아했는지는 글쎄, 관심 갖는 사람이나 있을까? 영화 속 그녀의 대사로 대신해본다.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실제로 어땠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여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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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지인의 부탁으로 영화 동호회 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