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초입에 세워지다

프롤로그

by 개미애비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암인 것 같습니다.”


젊은 의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낡은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간밤에 병실이 떠나갈 듯 보채는 아이를 달랜다고 잠을 설친 상태였다.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입을 떼는 순간, 그는 모니터를 내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전날 찍었던 초음파 검사 결과로 보이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아들의 병은 신경모세포종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난생 들어 보지 못한 병명이었다. 심지어 의사는 분명하게 암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경모세포종이요? 암이면…… 그러면…… 이게 뭐 소아암이라는 말씀인가요?”


의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초음파 영상 소견이 전형적인 신경모세포종, 그러니까 소아암으로 보입니다. 물론 보다 정밀한 검사로 확실하게 확인해야겠지만요.”


며칠 전 요로 감염이 의심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원한 터였다. 신경모세포종은 영유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신경계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휑뎅그렁해졌다. 나는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은 놈이 암이라고?’


아들은 태어난 지 여섯 달이 채 되지 않은 갓난이였다. 사실 어지간한 성인도 본인이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어쨌든 암은 장성한 성인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한창 쑥쑥 자라날 아이들이 아니라. 물론 내가 ‘소아암’이라는 무시무시한 세 글자의 사전적 정의 따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내 아이란 말인가. 하늘이 막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의사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진료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그는 대화의 공백을 메웠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과는 연이 없고, 대구의 큰 병원으로는 연결해 줄 수 있으니 그쪽으로 빨리 가보세요.”


“…….”


의사가 아연실색한 나를 슬쩍 보고는, 소아암 중에서는 꽤 자주 발병하는 편이고 충분히 치료 가능하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들의 병을 처음 발견해 준 고마운 분이지만, 그 당시엔 고마움을 표현할 경황 따위는 없었다. 하나뿐인 내 아이가 암 선고를 받은 순간이었다. 그날 진료실 풍경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쌔근거리며 잠든 아들을 안고 검은 바둑알처럼 생긴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수많은 사람이 우리 부자 앞을 지나갔다. 내 세상이 무너진 것과는 반대로,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게 별일 없어 보이는 무던한 표정이었다. 잠이 부족해서 여전히 정신이 조금 몽롱한 상태였다. 내가 겪은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아무래도 현실 쪽일 것이었다. 끔찍한 악몽이라도 좋으니 제발 그 순간이 꿈이기를 바랐다.


나는 병원 복도 끝에 넋 놓고 서서 창밖의 푸른 나뭇잎들이 네모난 틀 안에서 넘실거리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선 채로 시간이 한참 지났고, 나는 곧 아내를 떠올렸다. 내게는 이 아이의 공동 양육자인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내는 나와 교대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뭐래?”


아내는 몇 번쯤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나는 담담한 척, 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의사가 그러는데 암인 것 같다고 하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곧 서로를 향한 위로 대신 몇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일단 소개받은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다. 아내가 당장 필요한 짐을 챙겨서 나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오기로 했다. 평소 눈물이 많아 나에게 자주 타박을 받던 아내는 그 순간에 울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달랐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제야 품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막 잠에서 깬 아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나를 보며 생긋 웃음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서러운 마음이 들어 한껏 울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무래도 아내가 울지 않은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 필시 아내가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긴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왔다. 잠기운이 밀려난 듯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전의 진료실 풍경을 곱씹어 떠올렸다. 조금 전 내 아들이 소아암 선고를 받았다. 커피 두어 잔을 연거푸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몇십 분 내로 아내가 이곳으로 올 것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아내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앞으로 안은 채로 묵묵히 캐리어에 짐을 쑤셔 넣었다.


이렇게 우리 세 가족은 길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긴 터널의 초입에 덩그러니 세워졌다. 까치발을 딛고 서서 슬쩍 들여다본 터널 안은 빛줄기 하나 없이 캄캄했다. 두려움이 일었다. 그야말로 냉혹한 현실이었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팔월의 평범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