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앤트 Dec 27. 2023

경성크리처 타이틀 오프닝 그림 작업

웰 메이드 드라마

제작 단계에서 보안이 철저했기 때문에 타이틀도 모르고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간단한 웹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다.

크리쳐와 인물 그림을 목탄화 시안으로 요청받았다. 늘 그리던 방식으로 15분~30분 정도 그려서 넘겼는데 수정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하기 싫었다.     


그동안 다른 외주작업을 해올 때 시안 단계에서 그림만 소모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심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포인트와 느낌 위주로만 운영해서 넘기는데, 그 이상을 원하는 것 같았다.

더 제대로 그릴 수 있었지만 아주 살짝씩만 수정해서 힘을 아꼈다. 그 결과 크리쳐 그림 부분을 맡게 되었다. 인물은 다른 작가에게 넘어간 듯싶었다. 역시나 여러 작가와 보이지 않는 오디션이 있었음을 느꼈고, 투명하지 않은 과정에서는 그다지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크리쳐만 그릴 수 있다면 ‘오히려 좋아.’


주어진 역할만 소일거리로 재밌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들어보니 빠른 작업과 수정 방식 덕분에 메리트가 있었다 한다.

초반 작업은 모델링이나 자료들이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여서 수월하게 진행 되었다.  그리고 사치모토라는 역할과 함께 편집된 쪽 대본을 받게 되었다.

‘응? 조금 규모가 있는 드라마인가 보네. 하긴 크리처가 나올 정도면 제작을 꽤 공들여야겠구나.’     


과소평가했다.     


김앤트, 22년 AnT작업실의 새벽, 23.2x28.2cm 외, Charcoal, 2022


작업물이 꽤 괜찮았는지 추가 그림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점점 자료 없이 상황을 구성해야 하는 주문이 들어오며, 점점 컨셉아트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해부도를 추가로 맡게 되었고 처음에 넘어갔던 인물 작업도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사실 목탄화는 전체적인 분위기, 포인트를 잡아 연상되게 그리기 최적화된 재료다. 컨셉아트, 디테일한 해부도와는 호환이 잘 안된다.

바꿔서 생각해 보면 목탄을 사용해 수작업으로 컨셉아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하다는 것이다.

     

-목탄과 디지털 재료를 동시에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회화와 컨셉아트 장르를 해본 경험이 많다.

-그림을 편견 없이 조합할 수 있는 이해도가 높다.

-협업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빠른 소통과 이견조율이 가능하다.     


운 좋게도 까다로운 조건에 충족되었고, 나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도전이 되었다. 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진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

조감독님과 제작 pd님이 개인 작업실에 오고 가며 회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품에 참여하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평소에 명작이라 생각해 오던 스토브리그를 연출한 감독님의 차기작이며, 인지도 높은 연기파 배우들이 섭외되어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성덕 일지도.

     

경성크리처      


손 대역 촬영도 다녀오며 일상을 벗어난 경험을 했다. 화면에 담기는 그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며 촬영 장비에 담겼을 때의 톤과 집중도를 관찰했다. 촬영장에 다녀와서야, 어떤 작업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 상세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작업에 참고가 되었지만, 촬영장 세트 규모와 인원에 비례하며 마음의 중압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경성크리처 그림 작업량이 증폭하면서 일상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일정이 꽤 타이트 하게 잡혔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재밌었기 때문에 작품에 애착도 생기며 몰입도가 크게 올라갔다. 경험해 본 바 촬영, 제작팀이 훨씬 더 힘들고 바쁜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타이틀 그림     


촬영 때 목탄 그림 스타일이 경성 크리처와 꽤 잘 묻어났는가 보다. 기존작업과 추가 작업들이 마무리될 때쯤 타이틀 그림 제안을 받았다.

경성 크리처가 시작할 때 오프닝 크레딧과 나오는 화면으로 매 화마다 노출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극의 전체 방향과 분위기를 잡아주는 길잡이가 될수도 있기에, 맡게 된 이상 쉽게 스킵 되지 않게 작업하는 것이 목표였다.      

DMC를 오가며 여러 팀과 아이디어 회의를 마치고 장기간 작업을 했다. 목탄의 무드를 살리면서 전체가 한 장면으로 쭉 이어져야 하는 꽤 큰 규모의 작업이었다. 수작업으로 장면을 어떻게 끊어서 그린 후 이어 붙일지. 디지털 작업으로 어떻게 수작업 느낌을 살리며 편집해 나갈지. 초반 컨셉과 무드를 지키기 위해 많은 변형을 거쳤다. 장면마다 쉽게 흘려보낸 곳이 없지만 특히 마지막 크리처로 변형되는 부분에서 많은 회의를 하고 공을 들였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생략하며, 총 1년 3개월의 그림 참여를 잘 마무리 지었다.     


12월 22일     


작업이 끝난 지 8개월이 흘러 넷플릭스에 경성 크리처가 오픈되었다. 확실히 경험한 만큼 보인다. 제작 과정을 일부 체험했기에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수많은 인원의 노력이 느껴졌고, 집중하며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타이틀 그림 작업은 대체적인 평이 좋아 드라마에 누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전체 내용의 흐름과 별개로 그렸던 그림이 나오는 장면마다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들이 갖고 다니는 초상화, 사치모토의 작업실 옹성 병원 군데군데 붙어있는 크리처와 해부도, 보고서에 담겨 있는 그림들이다.  

‘이건 이렇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저건 저렇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개선 방향들이 수없이 교차했다.

초반에 상황을 파악 못 해서 즐겁게 그리기만 했던 가벼운 그림들이 계속 마음에 걸려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마무리 못 한 그림들은 제대로 마주하기가 힘들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을 것     


결과물에 부연 설명은 크게 의미 없을 것이다. 이미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기 때문에, 촬영과 제작팀. 그리고 드라마에 대한 시청 평가는 각자 견뎌야 할 무게일 것이다.  

보통 팀 단위로 움직이는 작업에서 이례적으로 개인 작가를 선별하여 기회를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감사드린다. 이 작업을 토대로 미술에 대한 관념과 작업영역이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하는 내내 좋은 꿈을 꾼 것 같다.

경성크리처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24년 새해에 1월 5일 공개되는 경성크리처 파트2. 시즌1의 8.9.10편을 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묵묵히  





작가의 이전글 네이버 인물정보에 등록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