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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May 08. 2024

각도기 없는 행동

숨겨진 각

각도기는 꼭 찾을때 없어진다.


보통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바로 그리는 경우가 드물다. 다짐을 하듯 단기적인 계획을 먼저 세우게 된다. 퇴근을 한 후. 밥먹고 난 뒤. 샤워를 하고. 내일 준비 부터 해놓은 다음.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한 뒤 시원한 마음으로 1시간~2시간 정도 그려보겠다는 각을 잡는 경우가 많다.

실행의 과정이 각을 잡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지 않은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각을 잡고 들어가는 경향은 타이밍을 계산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림 뿐만 아니라 마음에 부담이 되는 일을 진행하려고 할 때 컨디션을 좋게 만드는 작업을 먼저 하게된다. 어느정도의 루틴은 존재할 수 있지만, 최소한 즉흥적인 선작업은 피해야 한다. 

그림을 주업으로 하는 경우 대부분 그런 각을 잡지 않는다. 각을 잡지 않는다는 것은 컨디션에 상관없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림으로 일을 하게 되면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혼자 진행하지않는다. 항상 팀으로 묶여 있다. 장르에 따라서 의뢰인이나 구매자가 있을 수도 있다. 기간이 짧게 정해져 있는 일들이 많다.


일년 중 컨디션이 딱맞게 떨어지는 좋은 날은 거의 없다. 완벽한 컨디션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근사치로 만들어 놓고 그림을 그리려 하면, 원하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다음 날로 미루게 된다. 필요한 선작업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체되거나 또 다른 할일이 생겨서 그릴 시간이 줄어들곤 한다.

피곤함. 아픔. 배고픔. 춥고 더움. 집중이 안됨. 기분이 안좋음. 등등 불편한 상황을 열거 하면 끝이 없다. 이 중 하나의 상황만 발생해도 컨디션에 영향을 받아 그림에 손이 가지 않는다.


실행의 기준에서 컨디션을 제외시켜야 한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27.2x37.2cm, 도화지에 연필, 2019 




예전에 체육관을 다닐 때 반년 동안은 항상 근육통에 시달렸다. 팔을 올리고 있어야 가드를 할 수 있는데, 근육통이 심해서 팔을 올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스파링이 끝나고 링에서 내려오면서 항상 몸 상태를 탓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정도 흐르자 근육통은 당연한 현상이 되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않아도 예전에 컨디션이 좋았을때보다 운동능력은 더 좋았다. 초반 단계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운동을 쉬는 버릇을 만들었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23년도에 큰 사고를 당한 후에 당장 그림을 그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상태라 개인적인 실수로 다친 상황을 얘기하기 쉽지 않았다. 평소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결과물만 보게 될것이다. '아파서 못 그렸다.'는 상업 미술에서 허용되지 않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을때마다 AnT작업실 학생들에게 알려준 내용을 떠올렸다. 현 상태에서 근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론과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오랜만에 아주 매운맛을 경험한 후. 졸리고, 아프고, 배고픈 상황들은 그림을 그리는 일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안 좋은 상황을 극복한 기억과 경험이 쌓일수록 컨디션 영향을 덜 받게 되는 부분을 실감할 수 있게된다. 


여러가지를 고려해 각을 잡기보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앉아서 5분만 그려보는 습관을 만들면 좋다. 5분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을 넘기는 경험도 자주 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생각보다 그림 그리기전 선행작업이 크게 필요 없다는 것을 반복하며 느낄 수 있다.


집중력이 발휘되는중에는 컨디션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27.2x37.2cm, 도화지에 연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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