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함

휴식

by 김앤트

휴식이 연장되면 나태함으로 전환된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그렇게 많고 자유가 있었는데, 뭐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고 지금의 나다. 발전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계속해 온 것들은 남들이 봐도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알기 쉬운 시늉을 취하며 정당화하고 있었다.'

즐겨보는 콘텐츠에서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을 돌아보며 얘기한 내용이다. 이 부분을 보고 굉장히 공감되었고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봤을 때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이게끔 이미지를 꾸며 놓으면,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과 높은 가치로 보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사실은 알맹이가 쏙 빠진 채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얘기다.

이 내용에 영감을 얻은 이유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슨 행위이고 감정인지 뚜렷하게 정리가 잘 안된 부분이 있었는데, 우연히 콘텐츠를 접하며 확실하게 정리가 됐다. 내심 고민하고 있었기에 의외의 순간에 인식되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림 연습을 꾸준히 진행했지만, 잘 그려야겠다는 큰 목적에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을지, 세분화해서 정리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다. 관찰하고 연구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더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열심히 한다.'는 말을 종종 들을 정도로 실행하고 있었고, 그런 반응들에 위안받고 있었다.

그림을 그려오며 분명히 그런 시기가 존재했다. 지나고 나면 공허하고 껍데기만 남았던 시간이다.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어려워서, 상황이 안 좋아서라고 말하며 회피했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하기 싫고, 귀찮고, 미루게 된 복합적인 나태함이다.


시간이 없는 상황은 있어도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다.


회피의 변명 중 하나로 '시간이 없다.'를 꼽는다. 몇 년 동안 수업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메인 일이 서너 개, 서브로는 일곱 가지 정도 되는 상황에도 시간을 어떻게든 쓰려면 쓸 수 있었다. 일이 몰려 하루에 2~4시간 잘 때도 쥐어짜면 나오는 게 시간이었다. 다만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할지 투자할지에 대한 선택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도 성장기이지만, 한창 성장할 때는 왜 시간이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 회피했는지, 그 나태함에 반성한다. 개인 채널에 '만 시간을 그리면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찍은 영상이 있는데, 그 주제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집중이 없었던 만 시간은 카운터 되지 않으며, 보여주기식의 용도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만 시간을 채웠다는 것이 알기 쉬운 시늉으로 빠지며,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굳어지면 성장 방향이 좋게 설정된 것이 아니다.


김앤트, 자문자답, 23.2x28.2cm, 켄트지에 목탄, 2020



정리

나태함을 겪어 본 경험자 입장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지 크게 느낀다. 회피했던 기간 시늉만 해왔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쌓여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더 막막해진다. 낮은 지점부터 쌓아 올라가야 할 때, 이 부분에 대해 가장 실감이 나며 힘들어진다.

보여주기식 이거나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은 모래처럼 흩어지고 사라진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들 눈에도 조금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의 정확한 사실 여부는 자신만 알 수 있다.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넘어갔을 때 서 있는 곳은, 벼랑 끝처럼 아슬아슬하다. 다시 산을 올라가다 서 있던 곳을 바라본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태함을 정리해 나가길 반복할수록 휴식이 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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