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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May 15. 2020

보이지 않는 심연에 대한 해석

어비스(1989)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류의 갈망은 단순히 갈증 해소를 위해 물을 찾는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하나는 한계에 봉착한 인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이며, 또 하나는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의 해소와 연결된다고 하겠다. 사실 이 모든 이유는 지구가 닥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표면적 이유도 있지만, 우리 앞에 주어진 물음표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한 열망이 더 강한 게 사실이다. 그 만큼 우주에 대한 상상은 오랫동안 우리 모두를 열광하게 만들었고, 여기에 영화라는 매체 또한 한몫 거들었음은 물론이다. 현실 속 많은 일들이 과거에 우리가 꿈꿨던 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러한 상상이 모여 우리에게 그 방향성을 제시해줬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상상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이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꿈과 희망을 강조하는 이유가 된다. 


다른 측면에서 이를 얘기해보자.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이유들을 해소하고자 우주를 찾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 조그만 지구조차 여태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은 간과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지구 역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듯이 인류는 아직까지 지구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지구의 속을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 영화 또한 그런 시각에서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미래는 우리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통해 인류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걸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마도 이러한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 작품을 그려나간 게 아닐까 싶다. 감독의 초기작품에 속하지만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영화, <어비스>(1989)이다. 


어느 날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국의 핵잠수함 USS몬타나가 깊은 바다 어느 지역에서 침몰되는 사고가 발행한다. 미 해군은 침몰된 핵잠수함 구조를 위해 민간석유시추선 딥코어와 함께 공동수색작전에 돌입한다. 미 해군 특수부대를 이끄는 커피 중위(마이클 빈 분)와 딥코어의 책임자인 버드 브리그먼(에드 해리스 분)은 서로 상반된 성격 탓에 작전 도중에도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들은 해양장비 전문가인 린지(매리 스튜어트 매스트란토니아 분)와 협력해 계속해서 수색작전을 벌이지만 특별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힘들게 찾아낸 잠수함에서도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린지는 깊은 바다 속 심연에서 빛을 내며 지나가는 생명체를 목격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커피 중위가 정치적 소용돌이의 영향으로 핵폭탄을 설치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벌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고 만다. 버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핵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보다 깊은 심연 속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린지가 말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 속에서 빛을 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크게 조명 받는 역할이 아니다. 영화는 긴 러닝 타임 내내 주어진 스토리를 소화해내는데 급급할 뿐 인류가 이해하지 못하는 생명체에 많은 공간을 할당하지는 않는다. 이는 이러한 구성 요소가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인류가 갈망하는 미지와의 조우에 있어서 그 목적과 방법이 서로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듯하다. 오히려 생존 한계에 직면한 인류가 그 해결책을 찾고자 우주 또는 심연을 탐사하기 보다는, 인류의 자기성찰을 통해 인류가 가진 힘, 즉 사랑에 기반을 둔 인류애를 통해 스스로를 정화시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해석이 영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라고 무조건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하나의 요소로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영화가 스토리 전체를 훑어가며 그 짜임새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인간이 사회적 공존 과정에서 느끼고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자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냉전시대를 비추며 정치적인 불안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미시적으로는 다소 독단적이고 개성 있는 성격 간의 충돌이나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 인류가 가진 장점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기도 한다. 겉으로는 SF해양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오히려 감정의 세세한 면을 화면 속에 담고자 애쓰고 있는 모습이 다채롭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장점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영화는 그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답게 화면 속에서 많은 기술을 선보인다. 특히 영화 <터미네이터2>(1991)를 통해 시도했던 모션캡쳐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조금은 익지 않았지만 이전에 미리 선보이는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를 다시 보면 분명 부족한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당시에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감독만의 도전 정신과 특유의 화면 처리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류의 영역을 벗어난 생명체 또는 <터미네이터2>에서 접할 수 있었던 T-1000의 모습을 우리가 애써 구체화하기보다는 보다 손에 잡힐 듯이 눈에 익을 듯이 모호한 측면을 남겨둠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이의 해석에 미련을 남기지 않고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관객들이 이의 표현에 애써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영화 <어비스>는 80년대 특유의 영화 색깔을 갖추고 있지만, 그 스토리와 구성력, 연출력 등의 측면에서 현재의 다수 작품과 비추어 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짜임새를 갖췄다. 감독의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화면에서 표현하는 많은 기술들이 당시에 획기적인 시도가 다수 포함되어 관객들의 눈에도 신선함을 가미시키고 있기도 하다. 인류에게 미지의 공간을 드러내고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관객들의 볼거리를 충족시켜줄 재미있는 스토리까지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이 영화는 시대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영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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