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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by 안테나맨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성가 하나쯤 품고 지낸다.


「기대」라는 곡은 열명 중에 한명은 꼭 꼽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희망적이고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주는 가사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하느님 한 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귀로 듣고 입이 알고 있는 가사를 이렇게 손으로 써내려가니 새삼 낯설고 한 단어 한 단어 곱씹게 된다. 참 따스한 말들이다. 그저 멜로디가 좋아서, 같이 부르던 그 분위기가 좋아서 이 성가를 기억했을 뿐 정작 의미를 짚은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가사를 곱씹어보고 있자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아내건 따뜻한 사람으로 머물 수 있을 것만 같다. 확신이 든다.



나는 가톨릭이라는 이 종교를 믿고 있다. 믿으려 하고 있다. 1990년에 태어나 21세기 이 현실을 살며 마치 판타지 소설의 일부 같은 이 성경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일 것인가 많이 고민했던 적이 있다. 알면 알수록 신, 하느님, 예수라는 존재는 어렵다. 2000년 전에 현신해서 그 옛날 인류애 또는 도덕, 도리, 순리,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되는거야~ 이런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온 인류에 사랑을 전한 대단한 존재인 것은 100% 인정하고 있다. 정말 치밀한 철학자였든, 정말 말도 안되는 운이 따라 주었던 것이든 정말 존경하고 멋진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평화와 안전을 마련해준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마주하면 세상에는 악인들이 너무너무 많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아주 불행한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순리대로라면 그렇게 되면 안되는 거잖아. 납득이 안된다. 내가 아는 선에서 얄팍하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보자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내가 가톨릭인인 것은, 온집안이 성당에 다니는 성가정에서 태어나 그냥 그게 당연한 듯이 자라왔고, 그 안에서 큰 기쁨과 큰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지낸 나는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인지부조화가 온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차원의 신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겠지. 아득히 먼 곳에, 절대 인간이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차원의 모습으로 신이란 것이 존재하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신이냐 과학이냐 하는 컨텐츠를 접하곤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넓은 우주에 어떻게 이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기, 온도, 태양과 바람. 입을 수 있는 갖가지 옷. 먹을 수 있는 것들. 생명의 순환.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아쉬워하는 마음. 계절이 바뀌며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단순한 생각들. 이런걸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든 그 모든 조건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생활하고 사랑하고 있다. 인간이 온 우주를 관찰하며 찾고자 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생명의 신비. 사람과 사랑의 신비다.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마련해주었겠지. 그게 우리가 말하는 신인거야. 나는 이 촘촘히 짜여진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정리하고 나니 좀더 가톨릭에 열심하게 된다.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는 평생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나와 우리가 해오고 떠올리는 비슷한 모습으로 있길 바랄 뿐이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따스함과 즐거움이 아닐까.




25년 5월 말 작성.

이제야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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