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레를 좋아합니다!

by 채널나인

연차가 쌓이다 보니 여기저기 면접관으로 들어갈 기회가 많아진다. 계약직 아르바이트부터 정식 직원을 뽑는 면접도 있지만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뽑는 조금 부담이 덜한 면접도 있다. 각각의 면접이 대상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안에 어떤 사람인지 빠르게 캐치해 내야 한다는 점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의 만남으로 그걸 파악해낸다는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인상이 믿음직해서 뽑았는데 가면 갈수록 본색을 드러내는 인간들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처음엔 별로였지만 갈수록 진국인 사람도 있다.


단기로 해외봉사단을 파견하기 위해 사람을 뽑는 경우 봉사활동에 적극적이고 큰 사고를 안 칠만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안전하다. 인솔자 입장에선 1주일, 길어야 2주 활동하는데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갈 사람을 뽑아야 재미있게 활동을 하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관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간절함을 보는 편이다. 누가 얼마나 더 간절한지, 이 봉사단에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본다. 복붙한 것 마냥 생각없이 달달외운 답변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 예전에 어떤 학생은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파견 나갈 국가의 전통의상과 그 국가에 대해 자기가 공부한 것들, 그리고 봉사활동 기간 동안 어떤 마음으로 할지 열변을 토하며 발표한 적이 있었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너무나 잘 준비된 자세에 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져서 합격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 노력은 아니더라도 라오스로 파견나갈 봉사단 면접이라면 적어도 라오스 인사말 정도는 공부하고 와야 할 텐데 그런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오는 경우들이 많아서 아쉬운적이 많았다.


보통 방학 때 진행되는 단기간 해외봉사활동은 그 국가의 문화를 충분히 체험하기 위해 전 일정 현지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거나 아예 밥은 안 먹어 쓰러지는 학생들도 있다. 그래서 면접 볼 때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현지음식 적응 가능여부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인은 어떤 음식이든 다 잘먹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못 먹고 비실비실대는 경우가 한두명은 꼭 나온다. 강도 높은 노력봉사와 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건강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체 봉사단에도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 아주 중요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요소이다.


스리랑카로 파견하는 봉사단을 뽑는 면접이었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문화권이기 때문에 인도의 소울푸드인 커리가 주식인 국가다. 나도 커리를 좋아하지만 향신료와 다양한 재료로 만든 커리를 물릴 때까지 먹어본 건 처음이었기에 과연 학생들이 현지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날의 면접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이 커리였으므로 거의 모든 면접자들에게 공통질문을 던졌다.


“커리 좋아하나요?”

“네,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3분카레 말고 현지에서 먹는 커리는 향신료가 있어서 좀 다를텐데, 그래도 먹을 수 있겠어요? 2주 동안 커리만 먹어야 하는데.”

“네 저는 식성이 좋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 잘 먹습니다. 뽑아만 주신다면 걱정 끼치는 일 없이 열심히 봉사활동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자신있게 대답한 사람들 중에서 봉사단에 어울릴만한 사람을 뽑아 봉사단을 구성했고 우리는 적어도 식사만큼은 문제 없겠다는 생각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스리랑카는 생각보다 더웠고 커리의 종류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물론 끼니마다 뷔페식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거의 모든 음식이 커리 베이스로 조리한 요리였다. 무더운 날씨에 점점 지쳐가는 기운이 보일 때 쯤 일이 터지고 말았다.


“팀장님, A조의 여학생이 쓰러졌어요.”

우리는 그 학생에게 달려가 응급처치와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사병인줄 알았는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실은 커리를 잘 못 먹어서 둘째날부터 바나나만 먹었대요.”


이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현지식 적응에 문제없다고 외치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는구나. 이 학생은 셰프에게 죽을 끓여달라고 부탁했고 점차 회복해서 일정이 끝날 때 쯤엔 현지음식에도 적응해서 문제없이 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죽어도 현지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충분한 사전설명과 문화체험을 위해 진행하는 부분인데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무척 안타까웠다.

아직도 카레를 먹을 때면 그 생각이 나곤 한다. 평생 먹을 카레를 스리랑카에서 다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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