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6

제6화 소개팅 앱 남자 희균씨

집에 와서 TV를 돌려봐도 딱히 재미있는 것도 없고, 뉴스는 온통 관심 없는 내용 뿐이다. 대통령부터 장관, 범죄자 할 것 없이 하나 같이 맘에 드는 사람이 없고, 이 나라에서 살려면 뉴스를 차라리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다. 전문가라고 나오는 사람들이란 정치인이든 교수든, 말하는 문장마다 도대체 주어 동사가 맞는 것도 없고 내 귀만 어지럽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많은 건지… 그런데도 나라가 이 모양인 걸 보면, 저 사람들이 유명세나 탈 줄 알 뿐 제대로 하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내가 저 사람들처럼 잘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TV를 끄고 뒹굴거리다가, 낮에 얻어 들은 소개팅 앱 생각이 나서 가입을 했다. 과정이 꽤 복잡하다. 사진도 두 장 이상 올려야 하고, 동네, 취미, 그리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지, 요리를 좋아하는지, 영어로 말할 것인지 한국어로 할 것인지, 별별 게 다 선택 항목이다. 취미가 뭐지? 하고 생각해보니 딱히 없다. 취미를 가져본 것이라곤, 학생 때 우표 수집밖에 없다. 그것도 내가 선택한 취미도 아니다. 그 당시에는 취미란 게 우표 수집이거나 독서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예니 주짓수니, 사진이니, 심지어 포도주 시음이니 다양한 취미가 있는 모양이지만, 체력이 약한 나로선 퇴근하면 집에서 쉬어야지 뭘 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최근에 줌바댄스를 등록했으니 댄스라고 할까? 하다가 그건 좀 과한 것 같아 ‘산책’을 선택했다. 


옆에 있던 보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취미가 산책이라고? 언제 날 데리고 산책을 한 적이 있다구”라고 투덜거리는 듯하다. 사실 최근 들어 피곤하답시고 보리 산책을 거의 못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끼리 만난다는 송희의 말도 있고 해서, 내 프로필에 “마포구 거주, 강아지 산책 같이 할 분!”이라고 적었다. 


가입하자 내 주변의 남정네 사진들이 우루루 등장한다. 맘에 들면 오른쪽, 안들면 왼쪽 클릭이다. 허허… 아주 대놓고 자기가 기혼인데 아내 몰래 만날 사람 찾는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이 이혼남이고 키우는 아이가 몇 살이라고 고백하는 케이스는 차라리 양반이다. 그런데 내 눈이 이렇게 높았나? 도대체 맘에 드는 사람이 없다. “정신 차려, 아줌마야. 49세 아줌마를 누가 만난다고 그렇게 따지고 그래? 대충 오른쪽 클릭하셔” 라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굳이 앱에서까지 억지로 만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 200명쯤 사진을 봤나. 톰크루즈와 디카프리오를 섞은 만큼 잘생긴 남자라 해도, 도저히 눈이 아파 더이상은 못 보겠다. 어쨌든 그 중 네 다섯 명은 오른쪽 클릭했으니 기다려 봐야지. 그렇게 결심을 하는 찰나, 알림이 왔다. 뭐지? 누군가 나와 매치가 되었다는 메시지다. 그러더니 바로 문자가 날아온다. 나와 매치가 된 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마포구 어디 사세요? 저는 마포구 합정동인데요.” 

“아, 네. 저는 마포구 성산동이에요.” 

“그러세요? 가깝네요.”

“네, 그러네요.”

“개를 키우신다고요?”

“네, 개를 키워요.”

“무슨 종인가요?”

“푸들하고 말티즈 혼종이요.”

“신기하네요. 저도 말티푸 키우는데요.”


내가 오른쪽 클릭한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그는 이름이 희균이었다. 앱에 적힌 이름인데, 가명을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실명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난 그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김새가 배우 이선균을 닮았기 때문이다. 선균이, 희균이. 외우기 쉽다. 문자 상으로는 나름 친절하고 매너가 있는 사람이었다. 문자로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눈 바에 따르면, 자기는 돌싱이란다. 나이는 45세.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 군대 가 있다고 했다. 엄청 일찍 결혼한 모양이었다. 내가 애인을 만들 생각은 없고, 그저 동네에서 강아지 산책이나 같이 할 사람을 찾는 중인데 괜찮냐고 했더니 다행히 그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마침 이번 주에 둘다 일이 바빠서 다음 주 토요일에 홍제천 근처에서 첫 만남을 갖기로 했다. 각자 강아지를 데리고. 일종의 애견주 모임이다. 핸드폰을 끄고 나니, 마음이 뒤죽박죽, 싱숭생숭하다. 괜히 쓸데 없는 짓을 한 건가?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나는 순수 싱글인데, 애 딸린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니지 않나? 도대체 뭔 소리야, 애인 만들 게 아니라 그저 강아지 산책만 같이 할 거라며! 으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그만 생각하고 자야겠다. 아무래도 괜히 막내 송희 말을 듣고 앱을 깐 게 잘못인 듯싶다. 

작가의 이전글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