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줌바댄스 첫날
줌바댄스를 등록하고 세 번이나 가지 못했다. 모두 그놈의 야근 때문이었다. 하필 사보 편집 마감이 계속 겹쳐서 줌바댄스를 신청만 해 놓고 못 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갈 수 있는 날이 오늘이었다. 실내에서 신을 흰 운동화를 신발장에서 꺼내어 낡은 천 가방에 넣고, 얇은 츄리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체육센터로 향하는 마음 한켠에 기대가 되면서도, 다른 한켠에는 두려움이 스물거리며 올라왔다. 온통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만 와서 춤추는 거 아냐? 난 줌바에 지읏자도 모르는데다가 저질 체력이라 제대로 뛰지도 못할텐데.
게다가 몸치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5-6년 전에 요가를 배우러 갔다가, 선생님이 내 동작을 보고 너무 웃는 바람에 쪽팔려서 그만 둔 악몽이 떠올랐다. 나는 비만이 되기 전부터 몸은 딱딱한 통나무 같았다. 뭘 해도 잘 되지 않는 몸. 한 마디로 몸치다. 그래도 이제 비계 덩어리가 많아졌으니 좀 물러졌을 수도 있겠지. 나의 장점은 이처럼 어떤 순간에도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GX장에 들어가니 어머나 세상에. 한 서른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 나보다 날씬한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동네에서 비만인 사람들은 다 여기에 모인 건가? 거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대체로 나보다 많아 보였다. 그런데 다들 복장은 왜이리 화려한 건지… 65세는 될 법한 한 아줌마는 JUMBA라고 커다랗게 써진 꽃분홍색 티셔츠를 허리에 딱 붙게 묶었다. 그리고 하반신은 대개 달라붙는 레깅스에 쇼츠를 입었다. 어깨가 다 드러나도록 형형색깔의 스포츠 런닝을 입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운동화는 다 형광색이거나 적어도 반짝이가 붙어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니, 흰 운동화와 검은 긴 츄리닝에 낡은 티를 입은 나는 홀로 모내기하다 온 사람 같았다. 그래도 검은 장화가 아닌게 어딘가.
귀청이 터지도록 음악이 울려퍼지고, 선생님이 거울을 마주보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선생님 뒤에 모인 우리들도 전부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춤은 몸선이 결정하는 법이다. 뚱뚱하건 마르건 간에 몸선이 좋은 사람들은 모양새가 예쁘다. 나는 따라하느라 바빠서 거울에 비쳐볼 겨를도 없었지만, 잠깐 거울에 비친 나는 폭풍우에 어찌할 줄 모르는 고목 나무줄기 같았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조금 뛰었는데도, 배는 출렁거리지 다리는 근육이 땡기지, 도저히 견딜 수 없이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GX장 거울에 비친 내가 갑자기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게 아닌가. 그 눈빛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뒤뚱뒤뚱 흔들거리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손가락질하며 키득키득대는 무슨 악마의 눈빛 같았다. 아, 최소한 이건 내가 바라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쾌활하고 상쾌하게 몸놀림을 하지 못할 지언정, 한심하고 비참하다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조용히 대열을 빠져나와 신발을 갈아신었다. 시간을 보니, 정확히 15분 했다. 50분짜리 수업에 난 15분밖에 하지 못한 것이다.
치욕스럽고 좌절스러웠지만, 첫날이니 나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체육센터에 간 게 어딘가. 15분이 넘게 더 버티고 춤췄으면 아마 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거나. 그러면 부모님은 얼마나 황망했겠으며, 또 회사 직원들은 얼마나 놀라겠는가. 오늘 내가 만난 악마는 나의 착각이었겠거니 하며, 오늘 15분이니, 다음 번엔 20분을 꼭 하겠다고 다짐하고 체육센터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