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유 Sep 10. 2021

20년전 오늘, 9/11을 기억합니다.

평범한 날에 일어난 평범하지 않은 일


사고가 일어나기 전. 맨하탄 남부의 쌍둥이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 (출처:hbr.org)



적당히 선선하고 또 딱 적당히 따사한 초가을, 목요일 아침이었다. 


당시 난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전학 수속을 밟고 있었던 중이라 혼자 집에 남아 텔레비전을 켰었다. 높은 빌딩이 비춰지는 장면. 영어도 어차피 잘 들리지도 않을 때라 별 생각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느닷없이 날아와 빌딩에 꽂혔다.


"아, 영화인가보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갈 무렵,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다른 여러 괴담들이 합해져 여러 재난물들이 영화관 전광판을 가득 채웠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21세기로 넘어왔고 1년도 넘게 지내오고 있지만 어차피 재난물은 영화계에서 제법 먹히는 단골 장르니까, 그런 류의 영화인가보다 싶었다. 


그 영화는 굉장히 지루했다. 화면이 바뀔 타이밍이 한참 지났음에도 여전히 같은 장면이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끄려고 리모컨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매우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마침 울리는 엄마로부터의 전화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고 나서야 정말 알았다. 


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스를 라이브로 보고 있었다. 



출처: The Conversation



처절하고 치열한 102분의 기록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동안 모든 이슈는 백주대낮에 일어난 이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국에서, 그 미국의 가장 큰 도시인 뉴욕 맨하탄에서, 미국 경제의 상징이라는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속수무책없이 테러리스트로 인해 무너졌다고?


당시 알고 지내는 친구의 사촌은 그 날 약혼자를 잃었다고 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약혼자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주기 위해 잠깐 나온 순간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최악의 테러사고는 그만큼 느닷없었다.


오전 8시 46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 중 노스타워(north tower)에 아메리칸 에어라인 11편 (American Airline 11)이 충돌했다. 이로부터 약 16분 뒤, 오전 9시 02분에 사우스타워(south tower)에도 유니아티드 항공 175편 (United Flight 175)이 날아와 박혔다.  


국제적 분쟁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테러사건이었기에 미디어는 곧 사건 자체에 관한 내용보다 그 사건이 의미하는 정치와 외교적 시사들로 채워졌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각기 다른 해설과 예견을 내세웠고 "What if"에 "if"가 수만가지가 더해져 끝이 보이지 않는 회오리가 몰아쳤다. 피로도는 더더욱 높아졌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들을 제법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이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뿌리가 약한 부풀려진 버블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매년 돌아오는 9월 마다 미디어가 9/11을 이야기할 수록 나는 조금은 일부러 피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9/11에 관한. 그러니까 9월 11일에 일어난 사건에만 집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외교적 사안들은 커녕 오사마 빈라덴의 이름 조차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건물에 비행기가 날아와 꽂히고 건물이 무너지기까지, 102분의 시간동안 자신의 생명,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명을 위해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수많은 이들의 묵직한 기록으로만 글이 시작되고 마친다. 


비행기 충돌로 곧바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1천5백명의 사람들은 사고 당시 살아있었으나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충돌과 건물의 붕괴 사이의 시간동안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했는지에 관련한 내막을,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진중하면서도 절제된 어투로 서술한다. 테러리스트의 범죄는 조금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매우 악질적인 것이었지만 모든 피해의 이유를 테러, 이 하나에만 돌리는 것은 마치 그들에게 '위대한 전략가'라는 과도한 영광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충분히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빌딩 구조에서 드러난 치명적인 안전문제와 구조현장 내에서 벌어진 심각한 결점들 역시 작용했기 때문이다. 





방만의 값은 때로 처참하다. 출처: CNN



테러만이 스토리의 전부가 아니다


발전된 국가라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을 상시 대기시키며 준비한다. 천재지변, 범죄나 사고와 같은 인재,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부재된 사회라면 그야말로 유토피아이련만, 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기에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치들을 미리 예비해놓는 것이다. 경찰서와 소방서 구축은 기본 중의 기본. 유치원때부터 받는 안전교육, 건물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건축법 등등 여러 겹겹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안전망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유사시 이러한 시스템들은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공동체의 기저, 깊숙한 곳에 무언의 약속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안전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보다 더욱 큰 절망과 분노를 느낀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선박의 잘못된 운전으로 배가 기울게 되기 시작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면 선박내 모든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하는 의무, 그리고 그들을 최선의 방법으로 구조해야 하는 의무는 사회의 일원으로써 당연히 바라고 기대하는 안전망이었다. 할 수 있는 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그 안전망의 존재의 이유가 의심되어질 때, 우리 모두는 크게 낙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뉴욕 맨하탄을 넘어 미국의 상징적인 건축물로도 자리매김 했던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 (Twin Towers, World Trade Centre). 뉴욕 특유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던 위용을 자랑했던 것 만큼, 빌딩 완공 후 관계자들은 그 건물의 우수성을 널리 자랑했다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쌍둥이 빌딩은 애초부터 테러리스트의 비행기 공격을 감안하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모기장에 연필이 한자루 꽂힌대도 모기장이 무너지지 않는 것에 비유되어 비행기가 충돌한대도 끄덕없다는 특출난 안정성이 그 골자였다. 


결국 사고가 나서야 밝혀진 진짜 성적표는 이와 너무나도 달랐다. 건물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철근들은 열에 손상되지 않도록 내열제로 두껍게 쌓여졌어야 했는데 쌍둥이 빌딩에 들어간 내열제는 겨우 0.5인치 (약 1.3센티) 정도 두께의 분사식으로 도포된 마감재가 전부였다. 화재가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진압 (fire contaitment) 시스템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충돌로 인한 열은 삽시간에 빌딩 곳곳으로 퍼졌고 유해한 배기가스를 만들어내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숨통을 조였다.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치명적이었다. 건물 내 이익을 낼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 빌딩은 조금은 독특한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지상 외부로 이어지는 1층과 건물 꼭대기까지 통하는 엘레베이터가 아닌, 마치 조각 조각을 낸 것처럼 일부 층만 선택적으로 운행하는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었다. 이 때문에 사고 당시 엘레베이터에 갇혔던 사람들은 억지로 엘레베이터 문을 열었다 한들 벽을 마주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건물 내 계단은 총 3개였는데 이 역시 1층부터 끝층까지 연결된 것이 아닌, 중간에 끊어지는 형식의 통로였다. 계단 출구 자체도 매우 비좁았다. 처음부터 건물내의 모든 사람들이 단시간에 건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쌍둥이 빌딩은 매우 큰 만큼 안전하므로 어떤 사고가 나도 모든 사람들이 건물을 한꺼번에 빠져나와야 하는 일은 없다는 이유였다. 또한 사고시 비상 장치를 통해 건물의 옥상으로 향하는 문은 자동으로 열렸어야 했음에도 불구, 이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근방내 가동될 수 있는 모든 구조대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근무하는 날이 아닌데에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온 구조대원들도 줄을 이었다. 구조대원들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지만 구조현장에서도 큰 걸림돌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소방수들을 전두지휘하는 본부와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소방수들이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무전기는 쌍둥이빌딩과 같이 높은 빌딩에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강화기가 별도로 필요했는데 이를 가지고 있는 소방수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굉장히 많은 숫자의 소방수들은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채로 구조작업을 진행했어야 했다.


뉴욕의 경찰과 소방부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결여도 심각했다. 이 두 그룹은 사고가 나기 오래전부터 묘한 라이벌의식에 합동 커뮤니케이션에 난항을 겪어오던 중이었다. 시한폭탄같은 이 골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뉴욕의 시장들이 이런 저런 대안을 내놓았지만 결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구조활동을 위해서 두 그룹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이었지만 이 문제는 끝끝내 마무리되지 못한 채, 9/11의 구조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큰 차질이 일어났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이 책의 저자가 9/11 사건에서 드러난 '안전망'의 허술함과 부재를 집중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9/11이 터지기 전 이미 쌍둥이빌딩은 이러한 위험성을 드러낸 사건을 한 번 겪었기 때문이다. 1993년 2월 26일, 테러리스트들이 주차장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건물의 철근 내열제 문제는 뚜껑을 열기 직전까지 몰랐다 치더라도 여러 다른 심각한 이슈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들의 존재가 인식되었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들은 2001년 9월 1일이 되기 전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방심과 방만, 오만의 댓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들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9/11 Memorial, 쌍둥이 빌딩이 서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출처: Smithsonian Museum)



20년전 오늘, 9/11을 기억합니다.


9/11의 피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커다란 건물 두채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석면(asbestos)이 고이중에 날리게 되었고 이에 노출된 사람들이 '암'등과 같은 중병에 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전, 예전 쌍둥이빌딩이 있었던 자리에 설치된 9/11 메모리얼 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빌딩이 있었던 자리에 설치된 네모다란 인공 폭포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있었다. 그 테두리를 따라 걸어보았다. 그 큰 공간을 충분히 메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라니. 나중에는 알파벳이 그저 의미없는 무늬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럽게도 비현실적이었다. 


2001년 9월 11일날 발생한 9/11 사건이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다니, 역사 자료만을 통해서 '그렇다더라'고만 알게된 사람들도 그새 많이 생겼겠구나. 이 사건으로 인해 고층건물의 건축법이 대폭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했다. 


마치 정글처럼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망속의 작은 한 부분을 걸어가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성실하게 지어놓고 지키는 안전망을 통해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위험한 시간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지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거꾸로도 생각해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안전망이겠구나.     


뉴욕과 같은 시간대를 가지고 있는 이 곳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일이 일어났던 9월 11일 아침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겠지. 


여전히 그 그림자에 드리워진 아픔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게 새로운 회복과 희망의 한 줄기 빛이 더해지길 바라며, 침묵안에서 기도해야겠다.  






이 글에 나온 책: 102 Minutes by Kevin Flynn and Jim Dwyer (2005)

작가의 이전글 어쨌든 그 길은 당신이 정하는 것이라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