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어느 날. 공허함으로 가득 찬 하루가 나를 서점으로 이끌었고, 책을 구매했고, 책을 읽게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독서라는 취미가 생겼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나는 365일 내내 생각한다. 독서는 그 수많은 생각의 질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나의 뇌는 생각보다 한계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하며 생각을 배출해 냈다.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하게 됐다. 게임만 하던 내가.
2시간 왕복으로 통학을 하며 대학교를 다녔다. 시간표는 나를 괴롭혔다. 안 그래도 통학버스를 타며 이동하는 게 힘든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뒤죽박죽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강제적으로 나를 '루틴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에너지도 충분치 않았기에 늘 혼자 다녔다. 사람들과의 교류는, 수업 중에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수업 듣고, 북카페 가고. 수업 듣고, 도서관으로 가고.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과제나 공부를 하며, 중간중간에 책을 읽고 생각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사실 과제나 공부보다 더 책을 읽고 글쓰기를 했다. 일단 무엇보다 그 순간이 행복했고, 그 순간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학교를 버티지 못하고 또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공부나 학점을 중심으로 중간중간 휴식 때 책 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버틴 게 아니다. 글자를 읽고 글을 쓰다 보니 공부나 학점이 따라온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 상상, 망상 속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글을 쓰던 일상이었다. 교양으로 글쓰기와 발표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나의 글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글을 쓰는 삶, 그리고 작가라는 꿈. 성인 이후 제대로 된 꿈 아니 목표조차 없던 나에게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꿈이 생겼다. 그 꿈의 시작이, 대학 교양 수업 과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찌어찌 한 학기 수업을 끝마치면서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1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도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하나다. "솔직한 글이라 좋아요." 난 그냥 내 생각을 문장구조, 맞춤법, 올바른 단어 등.. 여러 가지 요소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막 써 내려갔다. 거짓말 없이 막힘이 없었다.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인가, 내 생각을 쓰는데 힘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의 글이 솔직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이었다.
타고난 것인지 훈련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26년 동안 살면서 나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보질 못했다. 생각의 퀄리티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정말 양의 한정해서는 말이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깊고 충만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나도 생각이 많은 편인 것 같은데, 너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닌 것 같아."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눈치를 봐왔다. 늘 눈치를 봐서 나쁜 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눈치를 보니, 솔직함을 털어낸 적이 별로 없었다. 나도 징징거리고 싶었지만, 그것은 멋이 없었다. 이야기 안에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이끌리는 주인공이나 캐릭터들은 늘 답답한 만큼 혼자 버텼다. 그게 멋있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남들에 의해 힘듦을 알리게 되거나, 아니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그런 모습들이 멋있었다. 이것도 취향인가?
글쓰기에서는 달랐다. 버티는 것도 없고 묵묵한 것도 없다. 묵묵한 글은 없다. 현실에서 그렇게 살아와서일까, 그래서 글에서 솔직함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돈 벌고자 글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눈치 볼 것도 없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솔직하게 내 생각을 배설하나 보다.
좋아하는 게임조차도 1년 넘게 지속했던 적이 없다. 여러 가지 게임을, 그때그때마다 번갈아가면서 했었다. 1월에서 3월은 어떤 게임을 하다가, 질리면 다른 게임을 해보고 다시 돌아오고.. 무언가 1년 넘게 지속한 적이 없다. 그런 인생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질리지가 않는다. 정말,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하는 것일까.
작은 성과일지 모르겠지만, 웹소설 아카데미에 지원하기 위해서 5,000자씩 4화를 썼다. 그 짧은 순간에서 창작의 고통도 겪었다. 그리고, 서류 통과해서 면접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지원을 했고, 3번 신청 끝에 작가가 되었다. 별것 없지만, 작가가 되었다니.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것 같아 신기하고 재밌고 설렌다.
에세이 작가가 되어 책을 출간할지, 소설을 쓸지, 뉴스레터를 발행할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며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글 없이는 못 산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신념이 생겼다.
솔직하자.
글에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