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초등학생 시절 나의 별명은 반타작. 시험문제의 절반을 틀려서 얻은 별명이다. 정말 공부에는 1도 관심 없었다. 이때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집안에 돈은 없었지만, 학원을 7~8개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다니는 학원이 없어서 정말 혼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정말 구진 컴퓨터를 가지고, 수많은 게임을 했다. 게임에 정말 폐인처럼 푹 빠졌었고, 게임에서 야구로, 야구에서 블로그로.. 정말 8살~13살의 기억은 충만하다.
떠나보낸 인연들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시곗바늘이 돌아가며 새롭게 만난 인연들도 소중하기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그래도 굳이 돌아가야 한다면?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겠다. 과거 미화라고 하기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로는 딱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분명 나에게 소중한 시절이다.
중학교
중학교 때, 초등학생 때와 달리 무언가 잃은 느낌이었다. 여전히 노는 게 즐겁긴 했지만, 학교에서는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고 학교가 끝나고 놀거나 게임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 때처럼 막 설레진 않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방황도 많이 했다. 당연히 공부는 나와 멀었다. 수학이든 영어든 항상 기초반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꼴찌에 가까운 수준. 그나마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다니는 수학학원에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때쯤 다니게 된 게 공부와 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학업 수준이 높지 않은 동네였는데, 그중에서도 내 위치는 맨 아래쪽이었다. 그 결과 중학교 내신이 79%였나.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컷이 80%라고 기억이 되는데, 겨우겨우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공부를 하고자 간 게 아니라, 그냥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중학교 친구들이 가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서였다.
선생님들이 그곳에 가면 바닥에서 놀 거라고 말렸지만, 나는 바닥이든 뭐든 상관없이 그냥 친구들이 가니까 따라갔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중학교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방학 때 나는 미친 듯이 방구석에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놀았다. 그나마 다니는 수학학원을 가는 게 전부. 위에서 말했듯, 나는 공부와 연이 정말 정말 없다. 영어는 고등학생 2학년 때 겨우 주어와 동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다. 그 정도 수준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들어가니 야자자율학습이라는, 줄여 '야자'라는 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다. 공부에 연이 없는 내가, 강제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심지어 저녁을 먹고 밤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해야 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지옥이다. 근데, 내가 선택한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다른 학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우리 옆 반을 보더라도 부모님과 합의하고 선생님과 합의해서 야자를 빼는 애들이 많았다. 금요일 같은 경우에는 심화반이라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따로 공부하는 곳이 있어서, 불이 꺼져있는 경우도 보았다.
운이 좋았을까, 그때 당시 우리의 담임선생님은 조금 무서우셨다. 고등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은 선생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강제적으로 야자에 참여했다. 애들도 착했는데, 선생님도 무서웠으니. 옆 반은 어둡고, 우리 반은 밝았다. 나도 게임을 좋아했을 뿐, 막 나가는 학생은 아니었기에 굳이 야자를 빼진 않았다. 그래서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싶었다.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야자 관리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휴대폰을 하는 것 또한 그랬다. 눈치가 많은 나는, 에너지를 써가며 휴대폰을 하고 잠을 잘 필요를 못 느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그래서 야자 때만큼은, 유일하게 다니는 수학학원의 숙제를 했다. 그게 야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시험 기간에도, 주말에도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야자 시간에 해야 할 수학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다였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수학 수업 시간에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수학 수업 시간, 체육시간, 야자 시간이 나에게 충만한 시간이었다. 주말은 실컷 놀았다. 그런데, 야자 때 수학 문제집만 펴놓고 문제를 풀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에게 '수학만 하는 친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근데, 그런 별명에 비해서 성적이 좋진 않았다.
그런 조롱 아닌 조롱을 받으니 화가 났다. 증명하고 싶었다. 근데, 나의 관성은 어딜 가질 않았다. 딱히 열심히 하진 않았다. 방학 때 놀기만 하는 것 대신, 수학 숙제를 좀 더 열심히 한 거? 그게 전부다. 그러다가 1학년 2학기에 수학 성적이 올랐고 -자랑할 거리가 없어서 아직까지 사골로 우려먹고 있다.- 기말고사 때 끈기를 가지지 않고 말아먹긴 했지만, 수학 과목에서 전교 14등의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16등이었나?).
이 사건은 내가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공부 시간은 처참했다. 여전히 시험기간은 나에게, 학교가 일찍 끝나서 게임을 많이 할 수 있는 날이었다. 말 그대로 평일 5일. 야자 시간이 나의 공부 시간의 전부였다. 이 사건 덕에 공부에 욕심이 생겼고, 2학년 1학기가 되어서 메타인지가 박살 난 상태에서 최악의 결정을 했다. 공부습관에 있어서 야자 시간에 숙제를 한 것이 전부인 내가, 이 흐름대로 수시에서 성적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정시 파이터라는 길을 걷게 됐다. 99% 수시로 대학을 가는 우리 학교에서, 능동적인 공부습관 혹은 공부 경험은 없던 내가,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정시라니. 주변에서 말렸고, 나는 선택했다. 그렇게 시선 속에서 나는 무너졌다. 지극히 메타인지가 박살 난 이유였다. 그렇게 사람들의 우려를 그대로 실현했다. 수능은 박살 났다. 수시도 박살 났다.
수험생
성인이 되어서도 메타인지는 그대로 박살 나있었다. 성과도 못 냈고, 과정 속에서도 무언가 꾸준히 보여준 것이 없던 내가 재수를 결심했다. 수능 직후 알바를 구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었는데,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때 모은 돈과 친척이 대학교를 간다며 준 돈을 재수학원에 쏟아부었다. 식비제외 한달에 100만 원이라는 금액의 부담과 그리고 공부 습관도 없는 내가 뭔가 고등학교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자각을 통해 독학재수학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버지와 작은누나에게 식비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작은누나에게 돈을 빌려 수험생활을 했다. 한 달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 이후 한 달은 학원에서 잠만 자기를 반복했다.
공부 총량의 법칙이라고, 초, 중, 고 때 했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습관도 없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요인. '완벽한 계획' 그러니까 완벽주의였다. 그것을 패시브로 가지고 청기백기처럼 한 달은 열심히, 한 달은 무기력하게 보내길 반복했다. 열심히 공부한 달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좋았고, 무기력하게 보낸 달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바닥을 쳤다.
그렇게 또 메타인지는 박살 난 채로 공부를 진행했고, 수능 치기 전 마지막 한 달을 무기력하게 보내며 아주 크게 말아먹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의 결핍과 자존감 바닥,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아갔다. 지원한 가군, 나군, 다군의 학교에서 '가군'는 상향으로 썼기에 당연하게 떨어졌고, '나군'에서는 붙긴 했지만 유명한 대학교의 분교 캠퍼스이기도 했고, 최초 합격이 아니라면 기숙사가 불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생활비를 내가 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구석에서 구할만한 알바도 없었고, 거기에 원룸 생활은 사치였다. 그나마 '다군'이 나의 희망이었다.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의 대학 중에서도 야간학과. 공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입결을 보유한 학과였다.
재수가 끝나고 바로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도 심각해지기 직전, 미리 계획해두었던 친구들과 괌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 속에서 나는 계속 '다군'의 대학의 추가 합격을 기다렸다. 이전의 기록에서 추합 번호가 10번대까지 돌았기에, 2번을 부여받은 나에게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근데 웬걸, 1차, 2차, 3차.. 8차까지 단 한 개의 번호도 빠지지 않았다. 추가 합격 번호인 1번이 더 불쌍하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여행 내내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야간학과가 다음 해에 사라지기에, 자연스레 주간 학과로 합쳐진다는 이슈가 있었다. 그래서 원래 같으면 빠졌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에 머무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었고, 이 학교의 다른 과들도 전체적으로 추합이 돌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전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군수생
코로나 학년으로 전문대 1학년을 이래저래 보냈다. 그러고는 군대에 가기 전, 친척 집에서 일을 하다가 입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메타인지가 박살 난 상태로 수능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살아갔다. 부대에 수능을 준비하는 선임들과 대화를 나누다 설득이 되었고, '그래도 내가 1인분 이상을 하게 될 때 공부를 시작하자'는 마음에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 7월이 되었고,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했다.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리고 변명이 맞다. 그때 당시 나는 가장 운전병 실세였고, 그에 따라 부대 밖으로 운전을 많이 했다. 전역 당시 20,000km 운행을 완료했다. 우리 부대 운전병 중에서 10,000km 이상을 운행해도 많이 한 것이다. 20,000km 운행은, 매일 통근 버스를 운행하는 운전병 말고 일반 운전병은 달성할 수 없는 키로수다. 운전병들에게 다양하게 배차를 보내는 이전 수송관과 달리, 운전에 익숙하고 잘하는 운전병만 배차를 내보내는 수송관으로 바뀌었고, 후방 부대였기 때문에 병사 수 자체가 부족했다. 그래서 근무를 많이 섰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매일 6시간 정도가 최대 수면시간이었고, 나는 매일 논산, 서울, 부산 등.. 정말 다양한 곳으로 다양한 차량을 끌고 밖을 나돌아 다녔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 일과시간 동안 했어야 할 근무를 내 개인정비 시간(휴식시간)에 서게 되는 일이 많았고, 그렇게 체력도 없어졌다. 그래도 마음먹은 7월부터, 22시 ~ 24시라는 야간 연등 시간을 활용하여 2시간은 무조건 확보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주말에는 의지도 부족했다. 평일에 부족했던 잠을 자기에 바빴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며 수능을 치게 되었다. 7월부터 11월 수능까지, 나의 공부시간은 평일 5일에 2시간이 전부인 상황. 근데 웬걸, 시간이 많았던 재수 때보다 성적이 좋았다. 그러고는 지금 다니는 대학에 오게 되었다.
1학년 1학기
대학교 1학년 1학기. 나는 전역 후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했기 때문에 내 또래에 비해서 정말 늦은 출발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또 대학 생활에는 딱히 관심도 없었다. 술도 좋아하지 않았고, 재수부터 여러 경험으로 혼자 보내는 게 나쁘지 않았다. 팀플이 많은 과 특성상, 자연스레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나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북카페로 달려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도 열심히 공부만 하진 않았다. 공부 반, 휴식 반이었다. 군대에서의 수험생활의 경험이 무의식에 발동된 것인지,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점차 메타인지가 조금이나마 향상되고 있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중간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푹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죄책감이 조금 들면, 공부를 하고 이것의 반복이었다.
결국 4점대로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그 또한 필요할 수 있겠지만, 좀 더 복잡했다. 일단 나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했다. 그니까, '실행'에 초점을 두어야 하고 가장 많은 비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학년 1학기의 생활은 증거가 되기 충분했다. 사실 공부시간은 많진 않았다. 1시간으로 생각하면, 20분이 공부고 40분이 독서나 글쓰기였다. 그럼에도 그게 그나마 최소한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루틴이었기에, 작지만 성과를 낸 게 아닐까.
영어공부
2026년 1월 11일에 토익 시험을 잡아두었다. 나는 25년 10월부터 약 3개월간, 중간에 몇 번 빼먹기도 했지만 '매일 30분 영어 공부'를 잘 해내고 있다. 욕심은 계속 생겼었다. 정말 나도 영어 성적을 만들어 내보고 싶었다. 현재 영문법 책을 4회독 진행 중인데, 진짜 공부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욕심이 그득그득 생겼었다. 웃긴 건, 점차가 아니라 갑작스레 공부시간을 2시간으로 늘렸을 때 잘 이어오고 있던 이 습관이 3일 이상 중단되었다. 그러다 '30분만 하자 제발..'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면, 또 이어졌다.
공부를 하게 된 건, 그냥 계속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제일 못했고, 그에 무언가 결핍이 있었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만 가지고 살아오다가, 두 번의 해외여행에서 멋있게 회화하는 친구와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점차 강해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올해 10월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토익, 토스 등 어학 점수가 목표가 아니었다. 매일 영어를 공부하는 정체성을 가지자는 게 목적이었다. 근데 공부를 하면서 중간에 이 목적을 자꾸만 놓쳤다. 그럴 때마다 공부는 멈췄다. 나는 그냥 매일 영어가 하고 싶고, 본질적으로 영어를 잘 읽고 싶고, 정보를 접하고 싶고, 말을 잘 하고 싶은 게 목표고 꿈이다. 어학이나 이런 것은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근데, 계속 본질을 제쳐두자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냥 매일 하면서, 내 세계관을 넓히고 싶은 게 내 마음인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속삭임과 싸우고 있었다. 일도 그만뒀겠다, 알바도 26년 1월 말에 구해보겠다, 시간도 많아졌겠다,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 많으면 4시간 이상 그냥 하루 종일 영어에 집중하고 싶었다. 근데, 마음을 접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쓴 글에서, 나는 이제 메타인지가 되기 때문이다.
1월 11일까지, 누군가는 영어 공부만을 해도 부족한 시간이라 말할 것이다. 특히 토익 점수를 잘 내려면 말이다. 그에 반박한다. 나는 그냥 영어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고, 즐겁게 공부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당장 시간을 억지로 늘린다면, 영어와 멀어지는 길을 걷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냥 토익으로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경험해 보고 싶어서 시험 접수를 한 거다. 합리화가 아니다. 진짜다. 그래서 오늘도 이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역시 만족스럽고 즐겁다.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바로 그 욕심을 접었다.
1월 11일까지 나는 매일, 30분의 문법 공부와 10분의 듣기 공부를 할 거다. 그리고 토익 시험을 쳐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뭐가 됐든 그건 그 이후에 생각할 일이고, 나는 그냥 매일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임을 알린다.
분명 올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써보려 했었다. 근데 그냥 아무 주제의 글이나 쓰자고 마음 먹었고, 그렇게 영어공부를 마치고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정말 쓸데없이 TMI이고, 쓸데없이 글이 길다.
그래도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어떤 깨달음이나 해석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또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재밌다. 2026년에는 좀 더, 노션에만 나의 글을 묵혀두지 않고 편안하게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겠다. 때론 짧기도 하겠고, 때론 길기도 하겠으며, 때론 오글거리기도 할거고, 때론 딱딱하기도 할거다. 근데 그냥 글을 쓰고, 외부 세계에 던진다는 것만 생각할런다. 나 같은 사람은, 단순해져야한다. 생각을 없앨 순 없기에, 단순해질려고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로가 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다들 26년, 복 많이 받으시고 각자의 행복함에 가까워 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