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행동이나 언어에
'썰렁하다'거나 '4차원'이라는 얘기를 한다.
함께 웃고 공감하기엔 거리가 있을 때 하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다른 삶을 살면서 체득하게 된
환경과 경험으로 나도 모르게 좀 더 민감해지고
남들은 웃지 못할 일에 웃음이 나고 공감의 박장대소를 할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혹 내가 썰렁한 사람, 4차원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문득 내게 묻곤 한다.
장애자녀를 키우며 산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썰렁하고 충분히 4차원인 세상을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우리에겐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가능성이 조금씩 보일 때,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감성과 인식의 정도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 가끔은 나도 모르는 냉소를 보내는 나를 보곤 한다.
이전의 나는 한없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는데...
지금의 나는 독해 보이고 때론 눈물을 많이 쏟으면서도 냉정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상황일까?
5~6세가 되면 당연히 어린이집을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너무 일찍 아이를 떼어서 어린이집에 보낼 마음이 내겐 없었다.
어린이집을 가고 안 가고는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장애를 알기 전에는...
아이의 장애를 알고 나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내 아이는 내가 원하는 어린이집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당당한 선택이 아니라 구걸이 될 수밖에 없음을...
피눈물 나는 사회 속으로의 첫발이었다.
그 경험은 많은 부분에서 내 유머와 감수성을 엉켜놓았다.
남들이 웃을 때 나는 그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예를 들면 마라톤에서 초원이의 어투에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미친듯
눈물 콧물을 쏟아냈었다. 초원이는 내 아이였으니까...)
그게 장애자녀를 키우는 엄마인 내 삶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감성 99%의 아지매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보다 훨씬 냉정하고 강한 사람으로
인식을 한다. 처음엔 그 판단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작은 일에도 가슴이 콩닥여서 숨을 쉴 수 없는 내게 너무도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 수도 없이 울고, 수도 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될까?
생각해보면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약하고 눈물이 흔해 빠진 엄마는 어디에 가도 장애자녀와
당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장애를 훈장으로 생각한 적도 없는 내게 그들이 던지는 가혹한 시선과
척박한 사회적 현실에서 난 그렇게 독해지고 강해 보여야 했다.
얼마큼 참고 견디면 잘 견디었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얼마큼 독하게 장애자녀와 척박한 현실이 마치 나의 숙명인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며 살아야 세상이 바뀔까?
지금껏의 경험에 의하면 인내만큼 바보 같은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껏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 걸 제일 싫어해 적당히 손해를 보며 살아왔지만
자식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장애가 있으니 당연한 교육과 사회적응의 과정이 지원되지 않아도 참고 견디는 것이
사회 대신 나 스스로가 내 자식을 죽이는 상황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식을 품고 죽는 장애부모를 사회는 어찌 보고 있는가?
꼭 죽었어야만 하느냐고.....!!!
밀리고 밀려 벼랑 끝으로 몰려버린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며칠 전의 일이었다.
회의 때문에 만났던 엄마들...
점심을 먹으면서 여전히 척박한 울 아이들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엄마가,
"난 내가 심장이 있는 줄 몰랐어. 울 아이가 내 심장이 있음을 확인해줬잖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가도
시크하게 한 번 웃어주는 모습에 그만 살살 녹아버리는 상황...."
"그 마음 백배 공감. 나도 그래..."
"남편을 만날 때도 심장이 그렇게 콩닥이지 않았어...
근데 울 아이는 시시때때로 내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음을 확인해주잖아.
너무 힘이 든데 그 아이땜에 환하게 웃는 나를 발견하곤 해...
아이러니하게 내 아이 때문에 살아있음을 확인한다니까..."
그렇다. 백배공감을 하면서도 가슴이 시리고 아리다.
이것은 장애자녀를 키우는 엄마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4차원의 웃음이다.
예전에 아들을 잃어버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찾았고 내 엄청난 심장박동은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액션이 필요했다.
나를 미치도록 힘들게 했던 아들이 돌아왔고
내 평상심 유지를 위해 습관처럼 덤덤하게 글로 옮겨놓았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이 와중에 글이 써지냐고 댓글을 달아놓으셨었다.
그 댓글을 보고 그냥 웃음이 났다. 허탈한 웃음이 계속 났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서
글은 내게 어쩜 위로와 격려이기도 했는데...
난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 엄마의 말처럼 여전히 내 심장이 가장 격하게 뛸 땐
아들과 연관된 일들이 많다.
무언가를 표현하지 못해서 감정조절이 흩어져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뛸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표현할 수 없는 녀석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아플까?
바라보는 나도 이렇게 심장이 격하게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은데
녀석은 어떨까?
저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의 어려움이 아들의 어려움에 비견이나 될까?
그런데 바라보는 나는 숨이 멎을 것 같고, 터져버릴 것 같은데...
농담처럼 우린 가슴 찢어지는 현실을 웃음으로 넘기곤 한다.
"녀석은 우리에게 대접받으려고 온 것이 틀림없어....
그냥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도록 해줘야지..."
엄청난 고퀄리티의 교육과 직업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마련되길
바라는 것인데 그것이 그토록 어렵단다.
같은 사람인데 그냥 장애가 있을 뿐이다...
어느 것 하나도 장애로 인해 쉬웠던 적이 없는 내 아이의 인생.
부모로서 난 어떻게 해줘야 할까.
미련하게 그냥 누군가 해주겠지 견디는 것만은 아님을 안다.
지금껏 그렇게 기다리고, 현실을 알렸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데...
추석이 가까워오니 자연도 그 준비를 한다.
진한 향기로 머리를 온통 어지럽히던 밤꽃이 진 자리엔
이젠 툭 따서 발로 몇 번만 비비면 알밤이 툭 굴러 떨어질 것 같이
굵어진 밤송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벌어지는 밤송이, 그 자연의 세계...
여전히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삶을 큰 바윗돌을 등에 지고 가듯
허덕이는 나의 삶...
언제쯤이면 아들과 나는 이 무게를 내려놓고 웃을 수 있을까?
엄마인 나는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바짓가랑이 찢어지고 있는데
소셜맘인 국가와 사회는 멀뚱멀뚱 지켜만 보고 있으니...
난 이미 아들로 인해 충분히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이젠 그 살아있음을 즐겁게 확인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