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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리 Mar 25. 2021

새로운 계급투쟁 by 슬라보예 지젝

다시 시작하는 계급투쟁

어렵고 힘들수록 인간은 절대적 유토피아를 열망. 그러나 유토피아는 없다. 난민은 자신의 꿈을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 속에서 꿈을 좇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이주의 자유, 그리고 그곳에서 적정한 생활수준을 보장받을 권리의 선언. 이 자유의 실현은 다름 아닌 철저한 사회경제 혁명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글로벌 세상에서 자유롭게 순환되는 것은 상품이지 인간이 아니다.


서구적 가치를 보편적 인권으로 강요하는 것, 타문화에 대한 존중에서 이 문화의 일부인 잔혹 행위를 간과하는 것은 신비화된 이데올로기라는 한 동전의 양면.

보편적 인권의 보편성이 어떻게 왜곡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은밀하게 서구문화의 가치와 규범에 특혜를 주었는지 논한 글은 많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자와 반식민주의자의 생활방식의 다양성 옹호에도 잘못이 있음을 지적해야. 폭력적-성차별적-인종차별적 행동이 특수한 생활방식의 표현이며, 우리가 이를 낯선 서구적 가치로 평가할 권리는 없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각각의 특수한 생활방식에 내재된 적대를 은폐하는 것.


보편성은 곧 ‘타인’의 보편성이다. 속내는 알 수 없는 이웃만 섬뜩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소름 끼치는 존재라는, 알 수 없는 정체성의 심연과 직면한 개인들만이 이 보편성을 지닌다.


난민과 인도적 동정을 한데 묶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난민을 도우려는 자세는 그들이 겪는 아픔에 대한 동정에 뿌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돕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난민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지할 위인은 없다. 누가 테러로 이득을 보는가. 계급투쟁을 다시 의제로 삼아야. 아마도 이러한 세계적 연대는 유토피아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패배할 것.


- 슬라보예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 내용 중에서 - 



어줍지 않은 좌파의 윤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지젝의 글을 읽으며 평소 난민 문제에 대해 교묘히 입장을 유보해 왔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도덕과 다문화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옴짝달싹 하지 못하던 나에게 지젝은 내가 갇혀 있던 그 프레임이 허구적이며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 개인주의, 자유주의, 다문화주의, 근본주의, 이슬람, 기독교.... 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이 원래의 의미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사용된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난민과 관련하여 현실 정치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논의가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충격적이었다.   

   

결국 지젝은 서구가 난민을 수용하되 그들에게 서구적 가치, 그간 서구의 제국주의적 행보와 서구 중심주의적 태도와 묶여 한꺼번에 부정되던 자유, 평등의 가치가 제대로 제시되고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와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서구적 가치가 문제적이라고 인식하는 진보좌파의 편견이 얼마나 공고한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책 없는 온정주의와 다문화주의의 달콤함만으로는 현실 난민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지젝은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젝이 인용하고 있는 종교학자 ‘애덤 코츠코’의 논의는 매우 신선하다. ‘소름 끼치는 낯섦’이 오늘날 이웃의 기묘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문화와 난민 문제를 접할 때마다 자판기 누르듯 쉽게 이야기하는 ‘소통과 대화’가 오히려 ‘더 많은 소동’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적어도 ‘서로 비켜감’이 되어야 한다는 서술은 무릎을 치게 한다. 인위적 공동체성, 준비되지 않은 대화와 소통이 야기하는 인위적 친교의 허구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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