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적 기준은
변함없이 차별적이다
Edited by 희량
패션과 아름다움의 관계는 미묘하다. 패션은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아름다움에 반항하는가 하면, 그 누구보다 편협한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도 한다. 그 편협한 방식이란, 신체 사이즈, 나이, 인종 등의 여러 다양성을 제한하고 가장 협소한 이상향을 규정한다. 우리가 런웨이에서 워킹하는 모델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날씬하고 젊은 백인, 그 고정적인 모습이 바로 패션의 한계다.
현대 패션산업의 근간은 서양 복식이다. 티셔츠, 자켓, 바지 등 세계화의 영향으로 서양 복식이 많은 국가에 전파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가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획일적인 복식 양식을 공유한다. 그만큼 패션산업의 중심지는 유럽과 미국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도 이 국가들을 기반으로 한다. 즉, 패션산업의 기득권층은 언제나 서구 사회, 그리고 백인이었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백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단순히 서구 국가가 패션산업의 출발지이기 때문일까? 이와 관련해 일리노이주 대학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1957년 이후 60년 동안 미국보그(Vogue)와 지큐(GQ)의 표지에 등장한 모델의 인종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보그는 표지모델의 95%가 백인, 지큐는 89%가 백인이었다. 잡지의 표지모델은 당시 트렌드의 정점을 보여주고, 미적 우상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을 대부분 백인이 차지한다는 것은, 인종에 대한 차별적 기준이 패션의 미적 기준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패션업계에서 백인을 선호하는 경향은 단순히 인종에 대한 차별을 뜻하지 않는다. 인종차별(Racism)에서 더 나아간 컬러리즘(Colorism)이다. 컬러리즘은 인종보다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흑인이 흑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까맣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그 자체로 문제지만, 더 나아가 문화적으로, 개인의 취향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들러붙은 고정적인 잣대는 사회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패션업계에서 다른 유색인종보다 백인을 선호하는 것은 보편적 취향 근저에 깔려있는 차별적 시각의 영향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에서 백인 모델을 사용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키, 골격 등 동양인 체형과 전혀 달라서 소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그리고 글로벌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이 뿌리 깊은 사대주의적 취향이 여전히 실망스럽고 부끄럽다. 우리 스스로도 백인을 중심으로 한 패션계의 미적 기준에 벗어나지 못하고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백인은 어떻겠나.
그동안의 런웨이는 마르고 날씬한 모델만 등장하면서 몸매에 대한 강박적인 잣대를 형성했다. 마른 몸매만이 정답이라는 듯 강요했고, 모델은 정상체중이 아닌 저체중에 집착해야 했다. 모델은 패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홍보하는 주체다. 당시의 패션 트렌드를 가장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모델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 마르고 날씬한 모델만 등장하는 런웨이는 패션을 제시하는 주체의 기준을 매우 차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 이슈가 강조되면서 인종뿐만 아니라 신체적 기준에 대한 포용도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마른 모델만 등장하는 런웨이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오버사이즈 모델을 런웨이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2022년 SS 시즌, 세계 4대 패션위크에 등장한 오버사이즈 모델은 전체 모델 중 고작 1.81%를 차지했다. 과연 런웨이에 소수의 오버사이즈 모델을 포함시키는 것이 신체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모습일까?
한 브랜드의 런웨이에서 등장하는 오버사이즈 모델은 보통 두세 명이다. 과도하게 마른 모델 수십 명 사이에 두셋의 오버사이즈 모델이 걸어나오는 모습은 오히려 오버사이즈 모델의 소수성이 두드러진다. 신체 사이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극단적인 모습만 공존하는 모습은 다양성이라기보다 병리적이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개개인의 서로 다른 신체 모습을 포용하는 다양성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다양성이라는 이슈에 구색을 맞추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이다. 오히려 다수의 마른 모델을 보고 날씬함에 대한 미적 기준이 견고함을 도리어 깨닫는다.
나이와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나이대를 아우르기 위해 35세부터 50세까지의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Fashion Spot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SS 시즌 세계 4대 패션위크에서 등장한 시니어 모델은 0.78%에 불과하다. 심지어 런던 패션위크에서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Non-binary)¹의 비율은 0.91%다. 이래서는 소수자가 소수자로 위치한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단순히 런웨이에서 소수의 소수자를 포함시키는 것만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식일까?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었다. Chromat이라는 수영복 브랜드인데, 이 브랜드야말로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담으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진정으로 추구한다. 좁디좁은 정상성 안에 욱여넣을 수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이 브랜드는, 인종은 물론 다양한 신체 사이즈와 성소수자들을 아우른다. 백인 모델은 겨우 두 명뿐이었고, 흑인, 라틴계,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을 확인할 수 있다. 모델의 신체 사이즈도 스몰부터 미디움, 라지, 엑스라지, 투엑스라지 등등 사이즈 표를 갖다 놓은 듯 다양했다. 심지어, 여성 수영복 하의에 공간을 만들어서 트랜스젠더가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브랜드의 런웨이만 보면 누가 소수자인지 알 길이 없다. 여러 색의 물감을 함께 흩뿌려놓은 듯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가? 이게 다양성이다.
Chromat의 진정성은 대다수 패션 브랜드의 부족함을 들춘다. Chromat은 소수자를 위한 디자인을 고민했고,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런웨이를 구성했다. 단순히 런웨이에 다양한 인종의 모델과 소수자를 등장시키는 것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런웨이에 등장하는 모델의 다양성은 패션업계의 다양성 수준을 대변하지 못한다. 심지어 소수자를 등장시키는 방식도 소수자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이었다. 패션업계에는 아직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고, 소수자를 포용하는 노력이 미흡하다. 패션의 범위를 확장하고, 더 많은 소수자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여 진정한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
필자는 패션을 배우고 나서 패션을 수용하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의도적으로 괴상하게 표현하는 것마저 패션으로 인정하는 게 패션이니까.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떠올렸을 때, 패션은 가장 앞서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모델 중에서는 흑인이나 아시안도 심심찮게 보이고, 오버사이즈 모델도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뜯어보니 다양성은 이름뿐이었다. 패션은 세상의 차별적인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패션이 소수의 가치를 발견하는 역할을 줄곧 해왔다는 사실과, Chromat과 같은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것에 희망을 얻는다. 앞으로 패션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포용하는 데 앞장서는 분야가 되길 바란다.
[각주설명]
(1) 논바이너리(Non-binary):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을 벗어난 성 정체성
[참고문헌]
- Editorialist, Size inclusivity is just fashion's latest fad, says Spring 2022's plus-size models, 2022.01.18
- Fashionista, Why diversity on the runway matters, 2014.04.07
- The Fashion Spot, Report: Fashion Month Spring 2022 is officially the most racially diverse season ever as size, age, and gender representation see slight gains, 2021.10.28
- Thomas Werner, Preconceptions of the Ideal: Ethnic and Physical Diversity Fashio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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