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우리 삶에 필요한 이유
Editied by 수연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안토니 곰리의 "지평선". 예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작품들일 것이다. 이 두 작품의 거리 위에 놓였던 야외 조형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작품들을 관람하기 어려운 걸까?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네 일상 곳곳엔 조형 작품들이 들어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1995년부터 시행됐던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덕분이다. 소통을 의미하는 상암 MBC의 대표 조형물인 "스퀘어-M", 을지로에 위치한 롯데시티호텔 앞 인사하는 사람의 형태를 띤 "Greeting Man" 역시 이 제도 덕분에 만들어진 조형물 중 하나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따라 일정규모(1만㎡)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 또는 증축하려는 건축주에게 건축비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게 하거나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72년에 등장했는데, 그 당시에는 미술'장식'으로 명명되어 있었으며 설치를 권장하는 정도의 성격이었지만 1995년 의무조항으로 바뀌게 된다. 1만㎥ 이상의 건축물을 신·증축할 때는 건축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하기 때문에 일명 '퍼센트법'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2011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건축물 미술장식제도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기존 미술장식에서 미술'작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공공미술로 그 범위를 넓혔고, 설치를 반려하고 문화예술발전기금에 출연할 수 있도록 선택 기금제 또한 도입했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에 대한 조항도 추가하며 설치된 작품의 관리를 시, 도지사에게 명확히 위임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진흥법이 탄생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는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해 태어났다. 따라서 해당 제도 역시 예술, 즉 작가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는 향유의 기회를 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정리할 수 있다. 작품 전시의 기회를 조금 더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부여하고, 그로 인해 대중들은 일상의 곳곳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도의 탄생 목적만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길거리가 미술관인 것 같은 낭만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못했다. 법의 실효성을 넘어 존재 의미까지 의심받고 있는 이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었다. 해당 제도가 현실에서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크게 브로커의 개입, 불평등한 기회, 관리 부족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제작 과정에서의 비리 문제다. 우리나라 건축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 비리, 즉 리베이트는 퍼센트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미술작품의 선정 및 제작 과정에서 브로커들의 개입으로 금품수수 혹은 비리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미술작품을 설치하지 않고서는 건물 준공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에 건축사는 준공 날짜를 앞당기기 위해 화랑과 유착해 미술작품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내놓기도 하는 실정이라고 한 매체에서는 전하고 있다.
해당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창작자들에게 정당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정당한 창작료를 지급하지 않고 금액의 일부가 건축주와 브로커(대행사)에 리베이트 형식으로 넘어가게 되면, 미술 작품은 질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을뿐더러 공공미술이 지니는 가치 역시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태어난 이 제도는 그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있지 않다는 역설적인 문제도 떠안고 있다. 즉, 다양한 아티스트의 기회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19년 10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의원이 한국문화예술 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회 이상의 작품 의뢰를 받은 작가가 전체 작품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제도를 만든 본래 목적 중 하나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창작자들 보호하기 위험이었지만, 전문 대행 업체들과 소수의 작가들이 이 기회를 독점하며 정작 대다수의 작가들은 하청업자에 가까운 수준에 놓인 셈이다.
마지막으로는 관리 부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예술 진흥을 위해 탄생한 법안이지만 정작 예술에 대한 안위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관심을 받지 못한 조형물들이 방치되어 건물의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 하에 철거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때문에 이러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건물 관계자들은 작품을 설치하는 것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무려 20,000건이 넘는 미술작품들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시할 수 없는 비용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퍼센트법의 존재 목적을 위해 힘쓰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경기도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를 자체적으로 시행하며 출품작가 편중 현상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치구에서 작가 선정 시 공모제를 도입하는 등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전개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를 누리는 집단, 즉 관람자인 우리가 작품을 인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 예술의 존재 의미는 바로 우리로부터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센트법이 올바르게 시행되지 못하고 각종 사회적 문제에 휘말리게 됐던 이유는, 그리고 그 문제가 고질적인 성격으로 변모하게 된 이유로는 향유자인 우리들의 책임도 존재한다.
정부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 작품의 제목이 무엇인지, 언제 제작됐는지, 그리고 작가는 누구인지를 명확히 담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우리 역시 예술가의 노고가 담긴 작품에 관심을 두고 법의 존재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인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처럼, 누군가가 작품을 인지하고 감상하고자 할 때 하나의 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 퍼센트법이 건축주와 브로커들의 배만 불려주는 제도가 될지, 설립 목적 그대로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대형 건물들 앞을 쓸쓸히 지키고 있을 조형물에 따스한 손을 건네야 할 때다.
[참고문헌]
- 국회입법조사처,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현황 및 개선 과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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