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넘는
위령의 미술

제인 진 카이젠의 《이어도(바다 너머 섬)》

by ANTIEGG 안티에그

#그레이

문화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합니다.



Edited by 유진


글을 쓸 때면 항상 마주치는 걸림돌이 있다. 나를 얼마나 드러낼지(혹은 지워낼지)의 문제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때 언제나 뒷걸음질 치고 중립적인 목소리라는 환상에 몸을 숨기고는 하는데, 오늘만큼은 조금 더 나 자신의 내밀한 속을 꺼내 보일까 한다. 지금 내가 지면 위로 옮기고 있는 이야기는 도무지 내 자신을 숨겨서는 이어갈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최근 만난 어떤 예술가로부터 내 이야기를 할 용기를 얻어서이기도 하다.


제주가 고향인 나는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묘한 공익광고를 마주한다. 채혈을 독려하는 광고다. 우리나라의 부족한 혈액 보유량 때문에 제작된 광고일 것이라 유추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4.3 희생자 유골의 신원 확인을 위한 채혈 독려다. 그러니까 나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지연되고 지연된 안식을 위해 나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하기를 독려받는 사람이며, 내 피는 내 몸을 이루는 액체일 뿐 아니라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는 물질적 정보 저장소다.


543628_434341_922.jpg 이미지 출처: 제주4.3평화재단


나의 피는 국가의 폭력에 의해 흘린 수많은 피의 연장으로 내가 고통받은 이들의 혈족임을 증명한다. 동시에 이 피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진상을 조망하기 위해 다시 국가가 개인에게 흘리기를 요구하는 피다. 내 피, 내 신체에 얼마나 많은 통치와 힘의 줄다리기가 손을 뻗고 있는지, 내 심장이 아직도 멀쩡히 전신에 피를 순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야기는 다시 또 개인적인 경험으로 흘러간다.


4.3 미술제에 대한 학술 발표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에서 누군가가 제주에 갈 때마다 제주 사람들로부터 묘한 음울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묘한 음울함. 제주의 근현대 미술, 특히 4.3 미술에 대한 비평에서도 자주 마주치곤 한 단어다. 부정하진 않겠다. 나의 고향은 잔인하고, 강렬하고, 고통스럽고, 매서운 자연과 역사를 모두 지닌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향을 떠올릴 때 부정적인 감정만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수백 년간 타자화되고 특정한 이미지로 환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에도 제주의 것인 삶이 있다. 마치 내 혈액처럼 국가에 의해 유발된 고통은 정지하지 않고 흐르고, 제주의 많은 아이들이 같은 날에 제사를 가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어떤 빛이 있고 애정이 있으며 공통의 고통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공통의 인간성이 있다.


국가가 생명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고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밀려 나간 밖에서도 삶은 존재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이어진 생명은 살아있음에도 죽음과 손을 놓지 않는, 죽음과 삶 사이를 잇는 기묘한 존재를 창조한다.



이 아티클의 본문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링크를 클릭하면 바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아티클은 어때요?

더 많은 아티클은 ANTIEGG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하루에 한 번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

문화예술 커뮤니티 플랫폼 ANTIEGG가 궁금하다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