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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Dec 10.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 n -

도깨비불

  잠정 유학 중단 상태로 한국에서 머문지 4개월 차에 들어섰다. 요즘은 동네 고양이 쉼터 자원봉사, 주 1회 심리상담, 주 2-3회에 한번씩 정신과 내담, 소설 읽기와 그 외 빈둥거리는 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여름부터 극심해졌던 우울증은 꽤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차근차근 체력을 올리면 한동안은 정신과 신체 건강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달, 지지난달까지만 해도 도대체 나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심리상담 초기, 복잡한 머릿 속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들을 상담 선생님과 분류했을 때, 내 자신에 대한 글쓰기는 가장 난이도가 어려워서 미뤄뒀던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그것도 우울증이 가장 극심해 자살사고에 시달렸던 때에 대한 글을 쓸 요량이니 그야말로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깨비불, 그건 사실 도깨비불이라기엔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어디로 봐도 초현실적인 느낌은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도깨비불에 홀린듯 나는 살 수 있었다. 도깨비불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가를 보자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지만, 나는 그것을 도깨비불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날은 아마 정신병동에서 퇴원해 짐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의 어떤 날이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끝나지 않는 자살사고에 몹시 고통스럽고 지쳐 있었다. 프랑스어로 유서 아닌 유서 같은 것을 얼기 설기 적었다. 타국에서의 죽음은 처리가 복잡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동거인에게 사과의 말과 어디에 연락하면 되는지를 적는 내용이었으니 유서라기 보다는 유언장에 좀 더 가까운 그런 편지를 적어두었다. 그리고 sns 계정을 전부 삭제한 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 새벽의 테라스에서 담배를 몇 대나 태우면서 다정하고 지친 이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몇 곡 들으며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을 음미했다. 곧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테라스 쪽은 건물 내부 정원 방향이었는데, 내 방 창가보다 더 바닥이 낮았고, 또 대로변으로 난 내 방 창문보다 발견될 때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앞을 서성이다가 테라스 난간에 다리를 걸치고 한참을 멍때리고 있었다. 무서움보다는 그냥 고민을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아랫층의 옆 테라스에서 불이 번쩍 들어왔다. 사람은 없었고, 테라스에 달린 전등 같은 것이 켜진 것 같았는데, 금방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얼른 내려와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한참을 내 방 창가에서 조금 더 고민하다가 일단 침대에 누웠다. 조금 이따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땐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죽어야겠다는, 죽는 게 맞다는 그 홀린 듯한 감정은 사라져 있었다. 나는 꾸역꾸역 짐을 싸고 옮기고 다 정리되지 않은 짐과 마음과 자질구레한 것들과 소중한 것들을 뒤로 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지금의 조금 안정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의 상태만 하더라도 그날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수준이고, 그래서, 그 모든 지지부진하고 슬펐던 시간들과 앞으로의 지지부진한 날들을 두고서도 그때의 병증에 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의 다음날, 그 날 있었던 일을 적은 글을 보고 친구가 그 이웃의 정체 모를 전등빛에 감사하다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내주었었다. 그건 뭐였을까? 거기엔 분명 아무도 없었고, 그 불빛은 프랑스에서 잘 쓰지 않는 형광등 같은 빛이었는데, 다른 날 그 테라스를 힐끗 바라봐도 그런 전등은 눈에 띠지 않았다. 여전히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 친척 어른이 정신차리라고 켜준 불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덕택에 죽지 않았고 오늘은 그 희한한 일에 대해서 적을 수 있고, 잠이 너무 일찍 깨버린 새벽 문득 도깨비불이라고 이름 붙여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 쓸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그 도깨비불에게 보답하는 게 되는 거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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