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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Nov 14. 2023

S에게

82매거진 아카이빙01

프랑스에 있을 때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82매거진에 실었던 글을 생각날 때 아카이브 해둘까 합니다.


고양이는 천국에 못 올라간답니다. 여성은 셰익스피어 희곡을 쓸 수 없고요.


S 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전설적인 저작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의 새 번역판 제목을 프랑스어 역자는 Un lieu à soi 라고 옮겼습니다. 그 전의 번역에서는 방 A room 을 침실에 가까운 뉘앙스의 Chambre 로 옮기고는 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정교한 언어에 따르자면 여기서 Room 은 침실이나 공용 거실, 응접실, 혹은 식당이 아니라 서재나 안방에 가까운 독립이 보장된 ‘공간’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Un lieu 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비추었을 때 좋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잠시 우는 소리를 해야겠습니다. 집(home)에 관한 두번째 글의 주제를 고민할 때, <자기 만의 방>과 프랑스의 주택보조금 제도는 거의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프랑스 유학생들이 지내는 집이란 실질적으로 대개 5-6 평가량의 ‘방’에 가까운 공간이고 한국의 또래들의 자취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두드러지는 차이라면 직접 집세의 일부를 정부가 집주인에게 지불해주거나 매달 통장에 입금해주는 주택보조금 제도가 있으니 둘이 연속으로 떠오른 것이지요.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 역사, 사회,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통찰한 글입니다. 울프는 자신만의 공간뿐만 아니라 연 500 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내어주는 주택보조금 제도는 최소한의 생활 공간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울프의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물론 프랑스 정부는 일정 소득 이하의 인구가 모두 글을 쓰길 바라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보장하기 위해 돈을 주는 것이지만요. 또한 고백하건대,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당신을 향한 서간체를 고른 것 역시 충동적인 사고의 결과물입니다.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건과 돈이라는 경제적 요건에 대해 울프의 작품을 살피던 중 <3 기니>를 읽기 시작했거든요. <3 기니>는 전쟁을 예방하는 방법을 묻는 가상의 중산층 변호사 남성에 대해 울프가 편지로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울프는 여성이 처한 교육 환경과 경제 환경에 대해 <자기만의 방>에서와 같은 비판적 견지를 유지합니다.

  당신은 엄밀히 말해 가상의 인물은 아니고 나에게 직접 편지를 쓴 일도 없지만 나는 이 형식이 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편지만이 과거 여성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여자가 직접 쓴 몇 안되는 글의 장르라고 꼽습니다. 그런 전통을 빌려 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려고 합니다. 여성으로 존재함과 글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나는 S, 당신에 대해서 알지만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우연히 당신이 시집을 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간 소식과 더불어 당신이 쓴 글도 몇 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자의는 아니었으나 당신도 내가 당신 ‘글’의 가장 오래된 독자 중 한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 당신의 글쓰기는 아주 나아졌습니다. 읽기 괴로운 정도도 덜 했고 문장에서 뚝뚝 떨어지던 자의식도 정돈되었더군요. 꾸준한 연습이 글쓰기의 왕도라는 점만큼은 당신이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멸시하는 남성들을 향해 당신이 강한 어조로 쓴 비판글도 몇 개 읽었습니다. 또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글도 몇 개 읽었지요. 앞으로 내게 당신의 시집을 직접 읽을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빈약한 예시를 당신이 이해해주어야 겠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과 당신의 글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그 글을 읽고 당신이 내가 알던 그 남자가 아니게 되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 든 계속 변하기 마련이고 당신도 영영 최악의 인간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나는 이 가설을 금방 접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들은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진실되게 쓸 수 없는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최근 오랜 기간 내가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던 이유와 같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고상하고 유명한 비유를 빌리자면, 당신은 윌리엄이었고 나는 쥬디스였기 때문입니다.

  콜레트와 수전 손택과 조르주 상드와… 그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쓴 도시에서 당신은 방을 하나 빌렸습니다. 기억하나요? 그 방을 찾아갈 때면 당신이 지하철 역까지 나를 마중 나와야 했었다는 걸요. 그 방은 해가 잘 들고 옆 집의 고양이가 방문하는 가 하면 삼중으로 보안 장치가 갖춰진 깨끗한 건물인 데다 집세도 별로 비싸지 않았지만 나는 그 방에 살 수 없었습니다.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한 동네였거든요. 당신은 거기 살 수 있었지만 나는 거기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의 열쇠를 한동안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낮, 당신이 없던 시간에 혼자 시간을 보낸 적도 있지요. 그때 처음 나는 나만의 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분을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만의 집, 이겠지요.

  당신이 거기서 얼마나 많은 글을 썼다 거나 그 도시에서 얼만큼의 영감을 받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동양인 여성으로 살기 녹록치 않았던 유럽의 콧대 높은 그 나라에서 동양인 남성으로서 당신이 겪은 경험이 어쩌면 당신을 변화시켰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0 년대 후반의 파리는 버지니아 울프가 쥬디스와 윌리엄이 거닐었 노라 상상한 16 세기의 런던이나 그 자신이 살았던 20 세기의 런던과도 다를 것이고요. 그러나 쥬디스를 여자 이름으로, 윌리엄을 남자 이름으로 쓰게 하는 만큼의 그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천재적인 가상의 여동생으로 상상해낸 쥬디스는 영국의 대문호가 될 오빠가 받은 것과 같은 교육을 받지는 못합니다. 억지로 결혼시키려는 집에서 도망치기 위해 일생 일대의 용기를 내야 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지요. 16 세기 런던 어느 곳에서도 여자를 극작가나 배우로 채용하지 않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가난한 극작가로 전전한 선술집이나 더러운 여관에서 쥬디스는 밥을 먹거나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누이인 쥬디스는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단 한 줄도 쓰지 못했고 ‘엘리펀트 앤 캐슬 맞은편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 누워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 16 세기 런던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시인이자 극작가인 여성에게는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을 만큼 불안한 압박감과 딜레마를 의미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살아남았다면, 그녀가 쓴 작품은 무엇이든 간에 억지스럽고 병든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비틀린 불구의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작품은 서명이 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이라고요. »

  물론 나는 이 글을 내 이름으로 발행할 생각입니다. 나는 마음껏 책을 읽도록 권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옥스브릿지에서 수학할 수도 있으며 수많은 위대한 여성이 쓴 다양한 글을 언제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인용하는 걸까요? 20 세기의 버지니아 울프가 이미, 이제 더 이상 여성 전반이 쥬디스와 같은 이유로 글을 쓸 수 없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선언했는데도요.

  당신이 처음 파리에 자기만의 집을 마련했을 때 나는 가족들의 눈을 피해 문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울음소리를 숨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인 오스틴은 거실의 문이 끼익거리는 소리에 얼른 <오만과 편견>의 원고를 숨기고는 했습니다. 내가 그때 숨겼던 울음소리는 어떤 대단한 작품도 남기지 못했지만 제인 오스틴이 -울프에 따르면- 시나 희곡보다 산만한 공간에서 쓰기 쉬웠던 산문과 픽션을 쓴 것과 같은 이유로 얇은 문 뒤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한 질씩을 쓸 종이도 모자랐던 브론테 자매의 열악한 상황에 비할 바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결국 같은 사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지요. 여자는 천재적인 작품을 당당하게 쓸 수도 없었고, 부당하고 가슴 아픈 일을 겪었 어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울프가 말했듯 계급은 언제나 문학의 재능을 가르는 벽이 되고 젠더는 여전히 말을 막는 벽이 되니까요.

  강경애는 원고료 이백원을 쓸 곳을 두고 남편과 설전을 벌였고, 나혜석은 비명횡사 했으며, 실비아 플라스는 오븐 속에 머리를 넣고 자살했습니다. 리베카 솔닛은 여전히 자기가 쓴 책에 대해 모르는 남자에게 가르침을 당하고요.

  울프의 글은 젠더에 관한 이야기이고, 계급에 관한 이야기이며, 문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재능있는 인간이 걸작을 쓰려면 일정한 삶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그 조건에는 공간과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교육받을 권리와 글을 쓰도록 격려 받는 신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할 말 있고 재능 넘치는 여자가 미쳐 오두막의 마녀로 외롭게 늙어 죽지 않을 수 있는 사회도 그 중 한가지이지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당신이 하루에도 몇 편씩 글들을 써올리던 시간 동안 나는 왜 글을 쓸 수 없었을까요? 나는 왜 어느 시점부터 낭만이나 사랑에 대해 노래하기를 멈추었을까요? 새까맣게 될 때까지 글줄을 동아줄처럼 붙잡으면서 나는 계속 글을 쓰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여전히 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가 노래되는 반면 역사에는 여자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울프 때의 프로이트가 더 이상 정신분석학의 주류가 아님에도 신경정신과가 여성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동양인 여성에게는 21 세기의 프랑스가 간혹 16 세기의 런던과 비슷할 때도 있기 때문일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백 년쯤 전에 스스로 너무 여성임을 의식한 글을 비판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성이 아니고서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일지도요.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허황된 말로 쌓은 한치의 진실도 없는 글들이 여전히 여자가 글을 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요. 외롭게 미쳐가는 여자들의 사회에 당신이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를요.

  나는 삭막한 세계를 헤쳐 나가던 울프의 삶을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합니다. 내가 필사적으로 여성들이 쓴 글과 그들이 쓴 글을 쓴 환경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당신이 거짓과 조롱으로 내 주변에 쌓아 올린 벽에 다시 버지니아 울프와 한강, 황정은과 정세랑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셜리,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을 한장 한장 덧발라 나는 나만의 방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걸작이 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작품은 수년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군의 집단이 생각해 낸 결과물이라고요. 그리하여 쥬디스나 이름 모를 여자들이 서명 없이 남긴 시와 희곡들이 현대의 여성들이 쓴 글에 이름을 입히는 것이라고요. 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는 공중에 홀로 떠 있는 거미줄처럼 보이지만 사회라는 방의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라고도 했지요.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시는 누구에게 빚을 내어줄까요? 당신의 시 끄트머리는 어디에 매달려 있나요?


  여러분은 집에서 자신만의 방을 얻어냈습니다. 방은 오직 남자만 독점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대단한 노동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해도, 집세를 치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1 년에 500 파운드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그 방은 여전히 텅 비어 있으니까요. 가구를 갖춰야 하고, 방을 꾸며야 하고 , 나누어 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구를 어떻게 들여놓고 어떻게 장식할 건가요? 여러분은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방을 나누어 쓸 것인가요? 이것은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분은 그런 질문을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여러분은 스스로 그 대답이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로선 기꺼이 이 자리에 남아 이 질문과 대답을 두고 논의를 계속하고 싶지만, 오늘 밤은 안 되겠군요. 시간이 다 했네요. 이만 마쳐야겠습니다.



참고문헌 : 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 버지니아 울프 <3 기니>, <자기만의 방>/ 슈테판 볼만 <여자와 책>

모든 인용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팽귄 클래식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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